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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칼럼, 4월] 더불어 살아야 할 믿음의 공동체: 교회
운영자 2018-03-31 추천 9 댓글 0 조회 839

 

더불어 살아야 할 믿음의 공동체: 교회

 

사람들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부릅니다. 그 구절의 시작은 시인이자 작가였던 T.S. Eliot의 작품 중 1992년에 발표한 서사시 황무지중 제1죽은 자의 매장이란 부분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 흔든다겨울은 따뜻했었다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뿌리들로 먹여 살려주었다.

4월이면 만물이 생동하는 생명의 봄이 되어야 하는데 그래서 얼었던 땅은 그 몸 내주어 씨앗을 발아시키는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작품 속에서 저들이 살고 있는 땅은 황무지였습니다. 그 살아 있지 못한 땅에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간 사랑하는 사람들을 묻어야 하는 주인공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저장했었던 마른 감자와 고구마를 먹었던 겨울이 차라리 더 행복했었다고 슬픔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작가의 시 속에서 보는 황무지는 비유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20세기 전쟁 후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9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한 그 참혹한 전쟁을 경험하면서 깊은 절망을 체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절망의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냉정하고 황폐한 정신세계를 볼 때에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이 현대의 모습도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 밖에 모르는 지독한 개인주의는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삶의 미덕을 잃었습니다. “군중 속에 고독이라는 말이 더 실감나는 21세기 초를 살아갑니다. 살아있으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독거노인들의 모습이 점 점 더 늘어가고 있는 오늘의 사회적 현실이 그 모습을 반영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에 교회의 역할은 더 소중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신앙은 출발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의 나라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창조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그러기에 성도의 교제는 세상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혈연과 지연과 학연을 초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혈연을 초월하여 그리스도와 신비한 연합을 이룹니다. 태어난 지연이 아닌 영혼의 고향인 천국이 모두의 본향이 됩니다. 학교로 이루어진 학연이 아닌 교회가 배움의 터전이기에 성도들 간에 영적 학연을 이룹니다. 이 더불어 살아가는 교회의 모습이 각박한 이 시대 잔인한 달 4을 이기게 합니다. 이 진정한 성도의 교제가 새싹으로 터져 나오는 4월이기를 바랍니다.

 

- 산돌의 목양실에서 담임목사 김연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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