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역대상3:1-9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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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둘째는 다니엘이라 갈멜 여인
2. 셋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넷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3.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소생이요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4. 이 여섯은 헤브론에서 낳았더라 다윗이 거기서 칠 년 육 개월 다스렸고 또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다스렸으며
5. 예루살렘에서 그가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네 사람은 다 암미엘의 딸 밧수아의 소생이요
6. 또 입할과 엘리사마와 엘리벨렛과
7. 노가와 네벡과 야비아와
8. 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 아홉 사람은
9. 다 다윗의 아들이요 그들의 누이는 다말이며 이 외에 또 소실의 아들이 있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믿음의 가문으로 서기 위하여
역대기 3장에는 성군이라 일컫는 다윗왕의 아들과 딸 그리고 지혜의 왕이라 일컫는 솔로몬왕의 자녀와 그들의 후손들의 이름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오늘 역대기 3장에 그 이름을 올린 다윗의 아들들은 열아홉 명이에요. 딸은 하나로 그 이름이 다말입니다. 그 외에 또 소실의 아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다윗에게는 최소한 20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자녀를 낳은 정실로 소개되는 다윗의 부인은 일곱 명이에요. 그리고 소실은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그 열아홉 명의 아들들로 인하여 행복했을까요? 불행하게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7명의 아내를 통해 얻은 19명의 아들들입니다. 과거 고려와 조선시대 사화를 통해 우리는 그런 말에 익숙합니다. ‘왕자의 난’이라는 표현이죠. 권력을 얻기 위해, 형제끼리 전쟁을 치룹니다. 모친을 통해 아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경우도 있었고, 아내를 통해 미치기도 했습니다. 그 뒤편에는 처가 쪽의 야욕이 도사리고 있기도 했으며, 당파에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왕자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다윗의 장남인 암논은 정욕을 못 이겨, 배가 다른 동생 압살롬의 누이인 다말을 억지로 취하였고, 쫓겨온 다말의 억울한 사실을 알게 된 압살롬은 아버지인 다윗이 암논을 심판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왕의 후계자 후보는 셋째 아들인 자신이 될 것이라고 여겼어요. 왜냐하면 둘째 아들인 다니엘은 어렸을 때 죽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나 부왕인 다윗이 암논의 죄악을 벌하지 않게 되자, 압살롬은 2년 동안 복수의 칼날을 갈았어요. 그리고 어느 한날 모든 형제를 초대한 자리에서 부하를 통해 암논을 죽입니다.
그러면 압살롬이 다윗을 이어 후계자가 되었는가? 그러지 못했어요. 그는 다윗을 배반한 다윗의 친구이자 책사인 아히도벨의 지략에 넘어가고, 스스로 자신을 헤브론의 왕으로 선포하고, 자기편에 선 유다 지파와 함께 거국적인 반란을 꾀합니다.
사실 장남 암논을 잃은 후 다윗은 용감한 기질과 훨출한 외모를 갖고 있는 압살롬을 총애하였지만, 그러나 암살롬은 자신의 때를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전쟁에서 결국 다윗편의 장수인 요압장군에 의해 압살롬마저 잃게 된 다윗은 깊은 슬픔에 잠깁니다. 그때 그의 마음에는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아니했어요. “내 죗값이구나!” “내 죗값이로다!” 그의 신하 우리아 장수의 아내인 밧세바를 취하고, 그의 죄를 감추기 위해, 그 신실한 장수인 우리아 마저 전쟁터에서 죽게한 자신의 죗값임을 스스로 고백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다윗이 그처럼 침상을 눈물로 적시며 자신의 죄를 통회자복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셨습니다. 사울처럼 생명을 거두어가시지는 않으셨어요. 계속해서 왕의 자리에 계속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받아야 할 징계는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 첫 징계는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출생한 첫 아들이 아기 때 죽게 된 것이요, 둘째는 장남 암논을 압살롬 때문에 잃은 것이요, 셋째는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고 부자간에 전쟁이 일어난 것이요, 넷째는 그 총애하던 압살롬마저 죽게 된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공의의 하나님은 징계를 통하여, 다윗이 자신이 지은 죄를 늘 기억하게 하시고, 그러기에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들을 신실하게 잘 다스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죄를 범하여도, 철저히 회개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함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나 여전히 징계는 남아 있습니다. 이 징계는 연단과 다를 바가 없어요. 특별히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 할 사명이 있는 자는, 그 성품와 인격이 성숙하고 거룩해지도록, 불같은 징계를 통해, 완전히 새롭게 만드시고 나서야, 다시금 주께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3장 10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솔로몬 왕의 23대손까지 그 이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하게 되는 것은 솔로몬의 아들의 숫자입니다. 아버지 다윗왕은 아들이 19명에 딸이 하나인데 반하여 솔로몬은 아들이 하나뿐이에요. 그의 이름이 오늘 10절에 소개되는 르호보암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에게는 아내가 700명이요, 수청궁녀가 300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단 하나요, 딸 둘뿐 이었어요.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단초가 있어요. 그것은 솔로몬의 유일한 아들, 르호보암의 모친 나아마는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방 여인으로 암몬족속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아니하셨어요.
만약 기뻐하셨다면, 그 700명의 아내를 통하여 그야말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많은 자녀를 선물로 주셨을 거예요. 그러나 솔로몬 자신에게 하나님은 냉정하셨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수많은 이방 족속 여인들이 자신들의 신인 우상을 섬기면서, 솔로몬의 후사를 갖게 되었다면, 과연 성전 제사는 제대로 드려졌을까요? 또한 있을 법한 왕자의 난으로 인해 유다 왕국은 유지될 수 있었을까요? 상상만 해도 아찔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이러한 신체적 결점을 알게 된 지혜의 왕이요, 부귀공명을 다 가진 솔로몬 왕은 자녀 복에 있어서만큼은 불행한 왕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녀가 많은 모습이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솔로몬은 시편 127편에서 고백합니다. 자식은 장사의 수중에 있는 화살과 같다고 하며 그 화살이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라고 했습니다.
어제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은 은혜로 되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인가가 탁월하고, 자격이 되고, 남들보다 훨씬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셨다는 것이에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은 연단의 과정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서 주의 나라 위한 일꾼으로, 지도자로, 사명자로 만들어가시므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 라고 했던 사도바울의 고백은 틀림이 없습니다. 다윗도 그러하며 솔로몬도 그러합니다. 솔로몬 이후로 등장하는 여러 유다 왕국의 왕들의 모습도 다를 바가 없어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한 다윗의 가문은 비록 그의 자손 중에 악한 자들이 있었음에도, 끝까지 존속되었고 번창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에요. 그의 아들 솔로몬은 말년에 우상을 갖고 들어온 부인들에 의해 성전에 우상이 자리를 잡게 되었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함 왕의 대를 이은 아비얌은 그 부친의 이미 행한 모든 죄를 행하였고(왕상15:3), 아하시야는 아합의 길로 행하여 악을 행하였으며(왕하8:27), 또 아하스는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였고(왕하16:3), 므낫세는 심히 악한 우상숭배자였고(왕하21장), 또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도 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왕하23-25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사 다윗의 집을 보존하시고, 마침내 그 가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3장을 통해 배우는 또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대의 신앙이 자손에게 혈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에요.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회개와 용서 이후로 일평생 경건했으나, 그 아들 솔로몬은 말년에 믿음을 잃었습니다. 아비야는 악했으나 그 아들 아사는 비교적 경건하였고, 또 아하시야는 악했으나 그 아들 요아스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따르며 경건했습니다. 또 아하스는 악했으나 그 아들 히스기야는 매우 경건하고 의로웠어요. 그러나 히스기야의 아들인 므낫세는 심히 악했습니다. 므낫세와 그 아들 아몬은 심히 악했으나, 아몬의 아들 요시야는 매우 경건하였습니다. .
무엇을 보여주는 것이겠습니까? 믿음과 경건이 늘 혈통으로 잘 이어지는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어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 부모가 잘 믿는다고 해서 자녀들이 자동으로 믿음이 있는 자가 되느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부모가 악하다고 하여 자녀들이 반드시 악한 자가 되는 것도 아니에요. 사람의 믿음과 경건은 주님과의 인격적이고 실존적인 만남을 통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자녀들에게 믿음과 경건의 유산을 남겨주어야 합니다. 신명기 6장 6절과 7절에 말씀합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또한 잠언 22장 6절에 권면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에베소서 6장4절에 말씀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여러분 중에는 믿음의 가문에서 신앙을 이어받으신 성도가 있을 것이며, 신앙의 첫 대로 주를 섬기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내 대입니다.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신앙의 바통을 물려주고 있는가? 간절히 기도하옵기는 여러분은 아브라함과 같이 다윗과 같이 대대손손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러 떠나지 않는 가문을 세우는 일에, 중요한 중심역할을 잘 감당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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