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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강해 02] 이름은 있으나 땅에 없는 자들을 생각하며
운영자 2025-02-26 추천 2 댓글 0 조회 57
[성경본문] 역대상2:1-17 개역개정

1. 이스라엘의 아들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2. 단과 요셉과 베냐민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더라

3. 유다의 아들은 에르와 오난과 셀라니 이 세 사람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이 유다에게 낳아 준 자요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여호와

4.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에게 베레스와 세라를 낳아 주었으니 유다의 아들이 모두 다섯이더라

5. 베레스의 아들은 헤스론과 하물이요

6. 세라의 아들은 시므리와 에단과 헤만과 갈골과 다라니 모두 다섯 사람이요

7. 갈미의 아들은 아갈이니 그는 진멸시킬 물건을 범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이며

8. 에단의 아들은 아사랴더라

9. 헤스론이 낳은 아들은 여라므엘과 람과 글루배라

10.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으니 나손은 유다 자손의 방백이며

11. 나손은 살마를 낳고 살마는 보아스를 낳고

12. 보아스는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13. 이새는 맏아들 엘리압과 둘째로 아비나답과 셋째로 시므아와

14. 넷째로 느다넬과 다섯째로 랏대와

15. 여섯째로 오셈과 일곱째로 다윗을 낳았으며

16. 그들의 자매는 스루야와 아비가일이라 스루야의 아들은 아비새와 요압과 아사헬 삼형제요

17. 아비가일은 아마사를 낳았으니 아마사의 아버지는 이스마엘 사람 예델이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이름은 있으나 땅에 없는 자들을 생각하며

 

오늘 우리가 대하는 역대상 2장에는 이 땅에 살다가 세상을 떠난 자들의 이름을 주욱 열거하고 있습니다. 족보라고 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이루어 가셨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그들의 혈통적 뿌리를 설명하기 위해 선조들의 족보를 소개합니다.

 

그중에 어떤 이름들은 우리에게 중요해 보이지가 않아요. 오늘 21세기 초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전혀 무관해 보입니다. 3절부터 8절까지 보여주는 유다의 자손들은 그래도 좀 나요. 왜냐하면, 그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었지만 그의 후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셨기 때문이에요.

 

그런가하면 9절부터 17절까지는 다윗의 가계가 소개됩니다. 이 또한 우리에게 친숙하지요. 이방 여인 룻의 남편인 보아스가 나오고 그의 손주인 이새가 등장합니다.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에요. 그런데 18절부터 시작되는 헤스론의 자손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의미없어 보여요. 그런데 성경에 이렇게 빼곡하게 그 이름들을 기록하고 있어요.

 

그러나 성도 여러분, 이 무의미하게 보이는 이름들이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그것은 성경이 신비한 신화가 아니라, 지어낸 스토리가 아니라, 역사 속에 실제로 일어난 사실에 근거하여 쓰였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족보는 가식적일 수가 없어요. 없는 선조의 이름이나 없는 자녀의 이름을 넣을 리가 없어요. 그러므로 족보를 통해 사람들은 알게 돼요. 성경은 참된 책이요, 진실한 증거들로 가득한 책이구나 하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족보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발견하는 중요한 요소 세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성경 속의 족보는 선택적인 족보라는 것이에요.

 

1절에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들의 이름이 언급된 후에, 첫째 둘째, 셋째아들의 족보는 어디 가고 넷째 아들인 유다의 족보가 나옵니다. 그와 같은 선택적인 족보소개는 12절과 13절에서 소개하는 이새의 족보에서도 나타나고 또 다음 장인 3장에서는 다윗으로 이어집니다. 이 선택적인 족보의 모습은 궁극적으로 한 인물을 향해 지향하고 있으니, 그는 곧 메시아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로 초점을 맞추고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신약성경 마태복음 11절에서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를 누구로 표현하는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를 해요. 무엇을 보여주는 것이겠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에 약속된 그 메시아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를 내릴 수 있어요. 성경의 저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성경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런가하면 둘째로, 성경의 족보를 통해 배우고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은 은혜의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역대상 2장은 유다의 족보를 소개하면서 그들 중에 일어난 부끄러운 실수와 범죄와 연약한 모습들을 숨김없이 다 증거하고 있습니다. 감추어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않습니다. 3절 후반부에 보시면 “....유다의 맏아들 에르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죽이셨다(대상2:3) 유다의 맏아들 에르가 악을 행하므로 죽임을 당한 가슴 아픈 사건을 숨김없이 기록으로 남겼어요.

 

4절에는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유다로 말미암아 쌍둥이 아들을 낳은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유다의 부끄러운 실수였어요. 유다는 아내가 죽은 후 한 창녀에게 들어갔는데 그를 맞이한 자는 그의 며느리이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당시 풍습대로 남편이 죽으면, 죽은 남편의 남동생이 형수의 생계를 책임져요. 그런데 다말은 그렇게 명령한 시아버지를 향하여, 죽은 남편의 집을 세우게 하시지 않은 것에 대해, 일종의 항의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며느리의 행위는 용납할 수 없는 심히 악한 행위요, 또한 유다로서도 말할 수 없이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솔직하게 숨김없이 그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다 기록했어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족보를 보셨나요? 그 족보에 잘못하고 실수한 부분들이 기록되어 있나요? 없어요. 후손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은 가리고, 벼슬 받은 것과 같은 좋은 일만 기록해서 남기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수치스러운 것을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왜 이와 같은 어둡고 악하고 실수한, 본이 되지 않는 내용들까지 다 기록하여 성경으로 보관하게 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의 선택은 은혜의 선택이심을 나타내 보여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악됨과 부족함에 반하여, 은혜와 긍휼하심이 크고도 크신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인정함을 받을 의로운 자는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러므로 성경은 로마서 310절에 말씀하기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3: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부족과 죄악이 있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시사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자들을 어떻게 사용하셨는가? 죄를 깨닫게 하시고, 겸손하여 과오를 뉘우치게 하시고, 징계를 통해 그 성품과 믿음을 성숙하게 하신 다음에 사용하셨습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우리의 의는 오직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악하고 추한 죄인임을 깨닫고, 구원하실 이는 예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마음에 주님으로 영접할 때, 골고다 언덕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악은 용서함 받고, 새사람 되어,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하고 늘 감사해야 합니다. 날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놀라우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다시금 힘을 낼 수가 있는 거에요. 그 사랑이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족보의 수 많은 이름들을 보며 깨닫고 배우는 것, 세 번째,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한번 죽은 것은 정해진 것이요, 이후에는 심판이 따르는 유한한 인생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에 보내신 사명을 감당하고, 주님 부르시면 다 놓고 떠나야 하는 유한한 인생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어릴 적 동무들과 함께 땅따먹기 놀이를 할 때의 모습과 흡사해요, 아주 진지하지요. 놀이니까 진짜 내 땅도 아닌데, 내가 더 많이 차지하려고 정말 기를 쓰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면 집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연정아~! 밥먹어라!” 어머니의 부르는 소리~! 때로는 누님의 부르는 소리~! 들리면, 땅따먹기하던 것, 미련도 없어요. 아쉬움에 뒤돌아보지도 않아요. 하나같이 자신들이 사용하던 돌을 내려놓고, 미련도 없이, 자신들의 집으로 뛰어갑니다.

 

우리에게 땅따먹기하던 곳은 경쟁이 난무하는 이 세상이요, 날이 저물면 미련없이 다 놓고 가야 할 곳은 바로 저 하늘나라, 하나님의 품입니다.

 

오늘 역대기 2장에 등장하는 인물만 자그마치 161명입니다. 그중에는 하나님의 품에 안긴 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자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의 삶이 죽음 이후에 어디로 갈지를 결정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떠날 때를 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천국에서 만나자고 이별 인사라도 제대로 하고 가지 않겠어요?

 

어제도 사고가 있었습니다. 어제 오전,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산평리 서울세종고속도로 천안~안성구간 9공구 천용천교 건설 현장에서, 교각이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해 4명이 숨지고 5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그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아침에 출근하면서 다녀오겠다고 그래서 배웅을 한 사랑하는 남편이요, 가장이요, 아빠가 아니겠어요? 죽은 자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 가족들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그들의 마음은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처럼 무너져 내리지 않겠습니까?

 

그 현장에서 사고 바로 직전, 무너져 내린 다리 밑을 지나간 운전자는, “몇 초라도 늦게 교량 아래를 지나왔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차량 운전자 백용해(32)씨는 인터뷰에서 우르르 쾅쾅 대포 터지는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봤는데, 교각에 올려진 상판이 무너지며 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굉음에 차를 세우고 사고 현장을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간밤에도 이 땅에서 세상을 떠난 자가 340명입니다. 하루에는 그 세배인 평균 1,022명이 매일 세상을 떠납니다. 이 한국 땅에서만 그래요. 질병으로 사고로 극단적인 선택으로 그렇게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새벽을 깨우며 또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감사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 숨을 쉬는 동안 내 영혼의 창조주시오, 생명의 소유주가 되신 여호와를 경외하며, 하루하루 주가 허락하신 생명으로 살아가시되, 천국에 들어갈 때 뒤돌아보아 후회함이 없는 보람찬 날들, 이 한날도 그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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