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전도서7:5-14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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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6. 우매한 자들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7.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11. 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12. 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1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가치있는 삶의 지혜는 하나님의 선물
전도자는 세상 삶의 덧없음을 다양한 영역의 예를 들어 설명하며 그 말에 동의를 하고 수긍을 하도록 지속적으로 ‘헛됨’을 강조합니다. 사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우리의 인생이 그렇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인생의 기한은 바람처럼 수이수이 날아가서, “먼저 열심히 벌어서 준비하고 그리고 나중에 여유롭게 쉬며 즐기자!” 생각했었는데 그 사이 몸은 늙어버립니다. 인생의 종착역이 다가오니 언뜻언뜻 이 세상 건너편 저 세상이 보입니다.
성실하게 열심히 살면 기회가 찾아오고, 땀을 흘리는 대로 좋은 열매를 거두며, 그러면 노후가 편할 줄 알았는데...., 15절에 뭐라고 했어요.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전7:15) 세상은 한없이 불공평해 보입니다. 어떻게 악인이 더 잘되고 장수할 수 있는가? 이해가 안돼요.
그런가 하면 처음부터 출발점이 불공평해서 금수저를 물고 타고 나는 자가 있는가 하면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가 다 잘되는가? 그렇지 않은 모습도 많습니다. 그러니 참 알 수가 없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 라는 격언이 있어요. 인생에서 행복과 불행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이죠.
새옹지마라는 말의 뜻은 ‘변방에 사는 노인 새옹의 말’ 이란 뜻인데요.
중국 변경의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새옹이라는 한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훌륭한 말 한 필을 길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말이 그만 국경 밖으로 달아나고 말았어요. 이웃들은 그 일을 애석하게 생각했지만, 새옹 자신은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으로 이웃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말 한 필을 잃었다고 해서 걱정할 일이 있겠습니까? 어쩌면 좋은 일일지도 모르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말이 다시 돌아왔는데, 혼자가 아니라 다른 말 한 마리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이웃들은 새옹을 찾아와서 새로운 말을 얻은 걸 축하했지만, 새옹은 역시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이웃들에게 말했습니다. “반드시 좋은 일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 말(馬)로 인해 화를 당할지 누가 안다는 말입니까?” 아닌 게 아니라 얼마 후에 새옹의 아들이 이 말을 타고 놀다가 떨어져서 불구가 되었어요.
새옹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들의 액운을 불행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라에 이웃 이민족들이 대거 침입해오자, 변방의 청장년들은 모두 징병이 되어 나가서 대부분 전선에서 전사하였습니다. 하지만 새옹의 아들은 다리가 불구였기에 전선에 나가지 않았고, 그로 인해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새옹의 일화는 인간 세상의 길흉과 화복은 변화무쌍해서 인간이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고, 함부로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라!” 지금 행복한 순간을 자만하지 말고, 힘든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올 거라고 기대하면서,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결과만을 가지고 흥분하지 말아라!” 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이 구절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현대인의 성경 번역본으로 보면 이러합니다. “일이 잘되어 갈 때는 기뻐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는 생각하라. 하나님은 행복도 주시고 고난도 주시므로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사람은 알 수가 없다.”(전7:14) 참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지 말라고 해도 다들 기뻐해요. 사람의 성정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라고 했어요. 그런 지경이 되었다고 해서 좌절하고 절망가운데 주저앉아 있지 말고,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가지라는 거에요. 그러면 경험을 통해 체득할 수 있는 어떤 교훈을 얻겠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신다고 했어요.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이 있고, 비가 내리는 날이 있으면 개일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지혜있는 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작금에 어떤 어려운 일로 힘들어 하십니까?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그럴 때 지혜자의 태도는 성찰하고 반성합니다. 그리고 바라며 구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고난과 기쁨을 병행하여 주신다고 했으니, 이제는 기쁨의 날 올 것을 소망하며, 오늘을 씩씩하게 이겨나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 지혜있는 자의 모습에 대하여 전도자는 7장에 지면을 많이 할애하고 있습니다. 5절에는 뭐라고 말씀합니까?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칭찬을 듣는 것보다 낫다”(전7:5) 문제는 사람들은 칭찬을 더 좋아해요. 연하여 정말 큰 문제는 높은 자리에 큰 책임을 갖고 있는 사람 곁에 직언을 하는 사람은 없고 칭찬하는 사람만 있으면 정말 큰 문제죠. 자신이 하는 일 중에 잘못은 모르고 다 잘한 것으로 착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7절은 뭐라고 말씀하나요? “탐욕은 지혜로운 사람을 어리석게 만들고 뇌물은 사람의 마음을 부패하게 한다”(전7:7) 이런 경우를 많이 대합니다. 소위 최고학부를 나온 사람 중에,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고, 결국 구속당하는 모습은, 그들이 아둔하고 미련해서가 아니쟎아요? 탐욕 때문이에요. 말씀 그대로예요. 탐욕은 지혜로운 사람을 어리석게 만듭니다. 다음, “뇌물은 사람의 마음을 부패하게 한다.” 같은 맥락의 말씀이죠. 탐욕이 있으니 뇌물을 받을 것이요, 그는 도덕성을 잃게 됩니다.
8절에는 말씀하기를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인내가 교만보다 낫다”(전7:8)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죠. 용두사미(龍頭蛇尾)의 모습이 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 말씀하기를 “인내가 교만보다 낫다”고 했어요. 당연하지요. 교만은 패망의 선봉장이라고 했어요. 인내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로 견디며 때가 차서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성경의 가르침대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또한 야고보서 1장 4절에 말씀대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 아멘!
9절에는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자가 아니라 우매한 자라고 했어요. 이 말씀의 뜻은 경거망동하지 말고, 온유하라는 말씀이에요. 예수께서 말씀하셨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마5:5)
‘온유’란 급하고 모난 성품이 길들여진 상태인 것입니다. 마치 잘 길들여진 맹수와 같아요. 누구 앞에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예요. 길들여지지 않아, 화가 많은 나의 성품과 인격의 조련사이신 하나님 앞에서! 노를 발하지 않습니다. 온유합니다.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10절에는 뭐라고 했습니까?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전7:10) 오늘날 어르신들이 자꾸 옛날얘기를 반복하면 뭐라고 불러요? ‘꼰대’라고 불러요. 문명은 발전해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넣어주신 지혜는 무궁무진해요. 과학도 의학도 인문학도 점점 더 발전해 가야지요. 하나님께서 사람 창조 시에 그 코에 불어 넣어주신 생기, 즉 하나님의 숨, 생명력이라 할 수 있어요. 그 안에 담겨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계속해서 발견하고 적용하여, 모든 인류에게 유익한 새로운 문명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과거에 머물면 안 되겠지요.
그러므로 11절에 지혜는 유산과 같이 아름답다고 했어요. 유산은 좋고 아름다운 것이죠?
왜 그렇겠습니까? 유산은 내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거저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받을 자격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 때문이에요. 그 관계가 아니면 줄 리가 없어요. 그렇습니다. 참 지혜는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녀에게 거저 주시는 유산이요, 그러기에 선물이요,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감사해야지요.
이 지혜를 어떻게 얻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받아요. 그런데 더 많이 받을 수도 있고 적게 받을 수도 있어요. 우리 하나님은 알아서도 주시지만 사모하며 구하는 자에게 더 주십니다. 그 지혜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유익한 곳에 쓰기를 원하여 구한다면 기쁨으로 더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성경은 그 구하는 방법을 말씀합니다. 따라서 하시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아멘!
이 새벽에도 기도하실 때, 더 크고, 깊고, 넓은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하는 그의 자녀에게 더 많이 주실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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