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전도서6:1-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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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해 아래에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2.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3.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4.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의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5. 햇빛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하나 이가 그보다 더 평안함이라
6.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제공: 대한성서공회
자족하지 못하면 헛된 것이로다
전도자는 6장에서도 계속해서 사람이 사는 동안 행복을 얻기 위하여 추구하는 것이 하나같이 헛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이 그러하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떠난 부요와 행복은 존재할 수 없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깨달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절 말씀에 보니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얻었어도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것을 누릴 수 없다고 했어요. 다른 사람이 누린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그렇게 되겠지요.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 중에 한 부자의 얘기가 있어요. 한 부자가 있었는데 밭에 소출이 많으니 생각하기를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자”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내 영혼아 이제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 말씀의 교훈이 무엇이겠어요? 주께서 말씀하셨어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21)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 가 이와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없는 부자의 비극이에요. 탐심으로 인하여 물질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재물과 부요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런가하면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만족이 없는 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합니다. 함께 3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전6:3)
이 사람의 경우는 자녀가 많아요, 거기에 장수까지 합니다. 자녀가 많고 장수를 한다는 것은 풍요로운 삶의 모습이에요. 그런데 그러한 그가 불행한 이유는 무엇이에요.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3절에 말씀하기를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이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안장된다” 라는 말은, ‘땅에 묻히면’ 그런 뜻입니다. 즉 ‘죽으면’ 그런 뜻이에요. 물질과 부와 여러 자녀와 심지어 장수를 누린다고 해도 “그것들로 만족하지 못하고 죽으면” 그는 “낙태된 자보다 못하다” 라고 말씀합니다.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낫다.” 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것을 갖고도 더 갖고자 합니다. 만족이 안 되기 때문이에요. 이를 탐심이요, 욕심이라고 합니다. 이 만족, 또는 자족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어떠한 형편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어요. 그러므로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영적 능력을 갖는 것이 믿는 자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능력이 어디에서 올 수 있겠습니까? 그가 이어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그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빈에 처하든 부에 처하든, 감옥에 있든, 밖에 있든, 유라굴로의 광풍 속에서도 그가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은 주께서 그러한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경우를 통해서도 이 만족에 대한 영적 교훈을 얻습니다. 시편 23편의 내용이에요. 그가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부족함이 없다고 했어요. 부족함이 없다는 라는 표현은 만족하다는 것이에요. 그가 고백합니다.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 했어요. 이는 만족함의 아름다운 시적 표현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이에요? .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윈하시나이다”(시23:4) 아멘!
많은 것을 가지고, 장수를 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해요. 만족함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도 알지를 못해요. 자신의 실체를 알아야 하는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를 못해요.
사람은 누구나 다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해결 받아야만 할 죄의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누구나 다 유한한 인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결국 다 죽습니다. 내가 그러한 존재임을 자각할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어요. “그렇구나! 인생은 유한하구나! 다 놓고 떠나야 할 존재구나!” 장례식장에서 깨닫는 자들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떠날 때!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같은 나이 또래인데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날 때!
“그런데 그러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 다음에는 뭐지?” 비로소 저편 세상이 언뜻언뜻 보이고, 막연했던 죽음이라는 삶의 현실이 갑자기 내 가까이에 다가와 있음을 느낍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어요. 그러므로 오늘 하루의 삶도, 한해의 삶도,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구나!”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살 수가 없구나!” 생명의 주가 하나님이심을 압니다. 그러기에 하루하루가 감사한 거에요. “내가 지금 살아 숨 쉬는 것이 주의 은혜로구나!” 한 복음성가의 노랫말처럼,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참된 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주의 은혜를 깨닫는 자! 주로 인하여 만족함을 얻는 것입니다. 세상 부귀공명이 아무리 크고 많아도, 그 심령에 주가 계시지 아니하면, 만족은 없어요. 채움은 없습니다. 행복은 너무나 먼 것입니다. 늘 부족하다 여겨 뭔가를 더 얻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 심령의 허전함을 어떻게 채울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만족이 없는 모습은 어떤 모습이라고 했어요? 본문 6절과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비록 천 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행복을 보지 못하면 마침내 다 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전6:6~7)
만족하지 못하여 많이 가지고서도 행복을 누리지 못하니, 장수가 소용이 없으며, 그 식욕은 산해진미로 아무리 먹어도 채울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식욕이란 상징으로 쓰였어요. 더 많이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여겨, 끊임없이 수고하고 애쓰며 모으지만, 여전히 그 영혼은 만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는 자는 만족함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감사하며 살아가요. 인생관이 다르고 물질관이 달라요. 지난달 21일에 신문에 올라온 내용입니다. “연세대에 200억대 기부한 할머니!” 그가 말했어요. “재산을 죽을 때까지 붙들고 있으면 뭘 하겠어요. 다 나누고 가야지요.” 신실한 기독교인인 현영숙(85)씨입니다. 85세의 나이신데 4년 전에 남편을 여위었어요. 남편인 고 이재운(1935~2021) 변호사와 함께 모은 전 재산 200억원가량을 연세대에 기부한 것입니다.
남편 이씨는 1935년 황해도 연백에서 장남으로 태어났고, 1951년 1·4 후퇴 때 월남했습니다. 16세 소년은 중학교 중퇴 후 신문 배달, 구두닦이를 하며 독학으로 1958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어요. 대구·제주지검 차장검사 등을 역임하며 10여 년 동안 검사 생활을 했습니다. 1972년 변호사 개업을 했고, 1975년 한국노동법률상담소장에 취임해 가난한 노동자들을 보살폈습니다.
이제 고인이 된 남편의 뜻을 받들어, 현영숙 씨는 전 재산을, 특별히 나라의 경제적 기초를 세울 이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고 기부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함께 하고자 하는 자는 물질관이 다릅니다. 만족과 감사로 삽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어요. 그리고 그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인생은 그렇지 못해요. 전도자는 계속해서 알리고자 합니다. 마지막 절 12절을 함께 읽고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전6:12)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나의 호흡도 주님의 것입니다. 살아있음이 주의 은혜요, 일터로 갈 수 있음도 주의 은혜요, 수고하므로 주시는 결과도 주의 은혜인 것입니다. 감사하며 만족하며 살아가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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