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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강해 02] 내 눈이 원하는 것의 헛됨
운영자 2025-02-05 추천 1 댓글 0 조회 106

내 눈이 원하는 것의 헛됨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전도서는 쉽게 이해되는 책이 아닙니다. 인생의 깊은 경지에 들어간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에요. 전도서에서 전도자로 등장하여 인생이 무엇인지를 해석하고 그 정의를 제공하는 솔로몬은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남보다 뛰어난 지혜도 얻었으며, 온갖 인생의 즐거움을 다 누렸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의 말년에 그가 깨닫게 된 인생이란 한마디로 헛되고 헛된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게 쉽게 이해가 됩니까?

 

사람들은 보통 행복의 조건이라 여겨 수고하며 추구하는 것들이 있다고 전도자는 오늘 말씀에 열거하며 소개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여 마침내 그 상태가 이루어졌을 때 행복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정작 그 정상에 섰을 때, 그 실체를 알게 되니, 아아! 헛되고 헛된 것이로구나!”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전도자는 소개합니다. 사람들이 행복할 것이라고 여겨 추구하는 것 중에는 즐거움또는 이라는 것이 있다고 했어요. 2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2:1)

 

육신의 즐거움을 얻기 위하여 3절에는 술을 언급합니다. 4절에는 사업을 크게 하는 것을 언급합니다. 그래서 집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수목을 기르고, 물을 얻기 위한 연못을 만들고, 즐거움을 위하여 7절에 보니, 남녀노비들을 사기도 하고, 더 많은 소와 양떼를 가지며 8절에는 은과 금과 보배와 노래하는 악단을 두고, 처와 첩들을 많이 둡니다.

 

사실 솔로몬 자신이 그러했어요. 솔로몬은 후비가 700이요, 비빈이 30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니 천명의 부인이 있는 거에요. 대단하지요? 이유가 있었어요. 이웃 나라들과 부족들의 침략을 막으려는 방편으로 그 나라들의 왕과 족장들의 딸들과 정략결혼을 했던 것이었어요. 이 일로 어려움이 임했습니다. 그들이 믿고 섬기던 이방신상들이 예루살렘에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에요. 솔로몬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말이 천명이지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 의자왕은 삼천궁녀가 있었다고 해요. 더 대단하지요? 그런데 그래서 과연 행복했을까요?

 

오래 전에 크로스웨이의 저자이신 해리 웬트 목사님이 지도자반 강의를 할 때 저도 수업을 들었어요. 목사님이 솔로몬의 많은 부인들에 대하여 유우머스럽게 물었어요. 솔로몬 가족이 피크닠을 갈려면 몇 대의 버스를 준비해야 할까요? 부인만 천명이니 그들의 자녀까지 포함하면 대형 버스가 수십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다 같이 웃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그래서 과연 행복했는가? 그것이 감사와 기쁨과 보람이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10절에 기록된 솔로몬의 고백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2:10)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었어요. 그의 수고로 인하여 얻은 몫이라고 했어요. 목표한 바를 이루어갈 때마다 성취감이 대단했겠지요?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다고 했어요.

 

그러나 그 즐거움은 얼마 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다음 절, 11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2:11) 그 즐거움이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은 자신이 이룬 일이 새로운 것이라 여겼는데, 두고 보니, 해 아래 새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거예요. 20절에 그의 고백을 보겠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에서 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내가 내 마음에 실망하였도다(2:20) 완전히 가라앉아 있어요.

 

22절과 23절에 기록된 그의 고백을 보겠습니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2:22~23)

 

세상을 원망하는 염세주의자같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도서에 이렇게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이를 읽는 자들의 입장에 선 것이에요. 세상에 고된 삶으로 인해 지친 인생, 많은 일을 이루고도 보람을 찾지 못한 불쌍한 인생에게 솔로몬의 이와같은 고백은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될 것입니다.

 

~! 그렇다면 어쩌라는 것입니까? 다 헛되고 헛되니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겠지요.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먹을 것을 마련하고 생계를 유지하고 살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밥상에 먹을 것이 올라오고, 밥을 먹고나면 밥값을 해야하고, 밥상에 오순도순 모여 맛있게 밥을 먹는 자녀들을 보는 가장으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보람과 기쁨이 있어요. 참으로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의 내용이 그것입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2:24)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것, 수고를 하니까 먹고 마실 수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노동은 숭고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도 일하셨어요. 엿새 동안 온 세상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어요.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십니다.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주의 자녀들의 출입을 지키시고, 영혼까지 지키시고 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도 일감을 주셨어요. 낙원인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노동이 없이 먹고 놀고 자기만 했던 것이 아니었어요.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로 동산을 지키게 하시고, 피조물들을 돌보라고 일하게 하셨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에요. 이러한 노동을 통한 댓가로, 먹고 마실 수 있는 기쁨을 갖는 것, 그것이 누구로 인해 가능하다는 것입니까? , 24절 말씀 후반부에 있는 대로,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함께 하실 때, 수고를 통한 기쁨도 즐거움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앞에서 그처럼 부정적으로 비관적으로 염세적으로 평가했던 삶의 수고들과 결과들이 왜 그런 것인지 그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왜 그처럼 헛되고 헛된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에요. 하나님 없이 행하는, 즐거움을 위한 인간의 모든 수고는 그 저변에 인본주의가 깔려 있어요. 마치 바벨탑을 쌓는 형국이에요. 그 많은 수고가 헛됩니다. 결과는 뿔뿔이 흩어지고 마는 거예요.

 

성도 여러분! 잘 알아야 합니다. 즐겁기를 바라며 추구하는 수고!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먼저 잘 알아야 해요. 즐거움을 통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

 

그것은 바로 죄로 오염된 자신의 마음을 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죄로 인하여 슬픔에 잠긴 영혼을 위로할 수 없어요. 사망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 있어요. 수시로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고와 질병도 있어요.

 

이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를 사람이 추구하는 즐거움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즐거움이란 직면하고 있는 고통에 대한 일시적인 진통제는 될지언정 근본적인 치료약이 되지 못합니다. 또한 그렇게 즐거움을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되면, 거꾸로 인생에 해악이 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 모습을 망령됨과 어리석음이라고 표현했어요.

 

오늘의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욕구가 있습니다. 행복해지고자 합니다. 행복을 위하여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거처와 운행수단, 이를 위해 목표를 세우고, 수고하고 땀을 흘리며 삶의 을 얻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즐거움, 또는 낙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인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고 했어요. 죄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추구하는 즐거움이란 너무너무 불완전합니다. 얼마든지 도가 지나칠 수 있어요. 지나치면 방종이 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이 추구하는 인간의 행복은 전도자의 고백처럼 그 결과가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매사에, 행하는 일에, 계획하고 추구하는 일에도 인도하심을 받아야 해요.

 

그럴 때 24절의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가슴에 담기 위하여 다시 한번 천천히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2:24) 아멘!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수고도 하시고, 하나님 안에서 행복도 추구하시고, 하나님 안에서 복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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