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전도서1:1-11 개역개정
-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모든 것이 헛되다고 느낄 때
전도서는 12장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짧은 책입니다. 내용의 장르로 보면 ‘시가서’에 속합니다. 시가서 장르에 속한 책은 다섯 권이 있어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그리고 아가서입니다. 시가란 ‘시와 노래’라는 뜻인데요. 실제로 시와 노래로 쓰인 책은 시편과 아가서에요. 그래서 욥기나 잠언 전도서는 ‘지혜문학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 지혜란 먼저 창조주에 관하여, 다음은 피조물인 사람에 관하여, 그리고 사람의 인생에 관한 지혜에요.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배우고 깨달으면 큰 유익이 되는 지혜를 시가서를 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전도서는 언제 누가 기록했을까요? 전도서의 기록자는 오늘 본문에 소개되고 있어요. 1장 1절에 보시면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전1:1) 누구겠어요? 네, 솔로몬입니다. 별명이 ‘지혜의 왕’이에요. 솔로몬은 지혜로운 왕으로 사람이라면 갖기를 바라는 부와 명예과 권세를 다 가졌던 왕이에요. 더 이상 더 바랄 것이 없이, 모든 것을 다 가졌어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18세 정도에 왕으로 즉위하여 4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60세가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으니 단명한 것입니다.
그 처럼 남부럽지 않은 부귀공명의 호화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너무 일찍 찾아온 죽음으로 인해 그랬을까요? 자신의 인생을 회고할 때 그는 그렇게 해피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인생 말년에 인생을 해석하고 인생에 꼭 필요한 지혜를 전도서를 통해 제공하고 있지만 그 분위기는 음울합니다. 전도서 전체를 통하여 흐르는 주제가 있으니 그것은 “모든 것이 헛되다!” 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해 아래 새것이 없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다. 즐거움도 헛되고 수고도 헛되다. 어떻게 보면 비관적인 인생관으로 비쳐질 수 있어요.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과 표현은, 있다가 없어질 눈에 보이는 세상의 물질과 또한 생명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갈 육체를 생각할 때 그렇다는 것이에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나 여러분이나 나이가 90이 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니 그 이전에라도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아 내 맘대로 수족을 움직일 수 없고, 스스로 거동을 못해서, 누군가가 일으켜 주고 부축을 해 주어야만 출입이 가능한 모습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인생이 일장춘몽이었구나!” “인생은 그저 한 봄밤에 꾸는 꿈과 같은 것이구나!” 그럴 것 같습니까? 안 그럴 것 같습니까?
그 나이가 돼보지 않아서 잘 몰라유?
지혜자인 솔로몬은 인생을 아주 냉철하게 직시하고 냉엄하게 해석하고 그리고 결론을 내리는데 그래서 “헛되고 헛되며, 허무하고 허무하다! 그러니 어떤 기대도 말고 포기하거라!”가 아니에요. 마지막 장 12장 마지막 두절에 결론을 담아 보여줍니다. 12장 13절과 14절 말씀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3~14) 무슨 뜻이겠어요?
세상적 가치관 인생관에 마음을 쏟고 추구하며 그것에 얽매여 살면, 결국 허무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후회와 슬픔과 아쉬움으로 인생의 마침점을 찍게 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서 전체를 지배하고 뿜어내는 일관된 주제입니다. 그러니까 주의해야 해요. 전도서를 읽으면서 한 구절, 구절에 액면 그대로 얽매이게 되면, 자칫, 인생 비관론자가 될 수 있어요. 주의해야 합니다. 항상 그 귀결은, “그래서 구원이 필요하지!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야지! 그래서 천국을 소망하며 오늘을 살아야지!” 이러한 마음으로 읽어가시면 됩니다.
그러면 이제 전도서 본문 말씀으로 들어가겠습니다. 3절과 4절을 읽겠습니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전1:3~4) 무슨 뜻이겠어요? 자연과 비교하여 더 짧은 인생의 수명에 관한 한탄이에요. 짧게 말하자면, “사람은 죽지만 땅은 영원하도다!” 많은 수고로도 수명을 늘리지는 못한다는 말씀이에요. 사실 아닙니까?
비교를 하기로 한다면 땅뿐만이 아니죠. 척추동물 중에 가장 오래사는 동물은 대서양의 그린란드 상어로 알려져 있어요. 그 수명이 최소 400년 이상이에요. 그런가하면 북극고래의 수명은 200년 이상입니다. 갯벌에 살고 있는 대합은 평균 수명이 300년 이상이라고 해요.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사는가? 그러지는 못해요.
사람이 300년을 살면 행복할까요? 건강하게 300년을 살면 행복할까요? 그런데 아들은 250살인데 골골하고, 손주는 200살인데 콜록 콜록해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의 삶은 어느 곳에서 얼만큼을 살든지, 나그네의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의 본체는 영혼이에요. 몸은 흙으로 만들어졌으니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영혼의 본향으로 돌아가게 되니 바로 하나님의 품입니다. 저 천국, 하늘나라로 돌아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좁은 시야를 가지고 멀리 보지 못하니 이 땅에서의 삶을 끝이라고 여기면 허무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땅에서의 삶을 대충 대충 살아도 되는가?
그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생명으로 보내시는 이유가 있어요. 주의 선하신 뜻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신 것처럼 여러분을 통하여 주의 영광이 드러나고, 주의 사랑이 증거되고, 주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저 하늘나라에서 상급으로 이어집니다.
이 땅에서의 삶의 모습이 죽음 이후에 저 하늘나라에서 결과로 나타난다는 말씀이 요한계시록 14장 13절에 있어요.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3)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그러니까 잘 살아야 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지혜의 헛됨에 관한 것입니다. 16절과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전1:16~17)
앞서 말씀드린대로 솔로몬은 누구보다 지혜로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심판을 하며 정사를 잘 돌봤습니다. 또한 그를 방문하는 이웃나라의 현인들을 통해 많은 지식을 얻기도 했어요. 그런데 여전히 알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그렇죠? 세상을 살다 보면 보는 것들과 경험하는 것들, 왜 저런지? 왜 그래야 했는지? 알 수가 없어,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고 다 알 수 있나요? 다 알 수 없어요.
소위 사람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학문이 있으니 이를 가리켜 ‘인문학’이라고 해요. 그 연구분야가 문화인류학, 철학, 심리학, 교육학, 고전학, 문학, 음악, 언어학, 사회학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분야가 다양합니다.
오늘 전도자는 알고 싶어요. 본문에 뭐라고 했습니까?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라고 했어요. 미친 것은 비정상적인 모습이고 미련한 것은 비상식적인 것 아니겠습니까? 왜 그럴까 알고자 했지만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 전도자의 고백이에요.
이 21세기 초를 살아가는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은데 그때에는 더욱 그러했겠지요.
그러면 전도자가 지혜가 부족해서 “알 수가 없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잠언을 통해 강조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성도 여러분!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성품으로 지어진 피조물인 사람이 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거역하여 죄에 떨어진 존재, 죄성을 갖고 태어나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 가련한 인생의 실체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지혜는 창조주시며, 심판주시며, 구원주이신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같은 전도서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참 지혜에 대하여 전도자는 강조합니다. 2장 26절이에요.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전2:26)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어 말씀하기를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원하시거든 가르쳐 주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혜의 근원이 하나님이시오,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께서는 지혜를 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로마서 12장 2절에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이 새벽에도 기도하실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시대를 제대로 읽으시고, 상황을 제대로 대처해 나가셔서 승리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