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느헤미야13:28-31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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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29. 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30. 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하고
31.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제공: 대한성서공회
온전한 개혁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성벽재건을 성공리에 마친 느헤미야는 관직으로 있었던 페르시아의 수도인 수산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그를 총애하는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의 재가로 유대 총독으로 임명되어 12년간의 행정 업무를 관장했던 것이었어요. 예루살렘을 떠나면서 그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은 평화 가운데 하나님 기뻐하시는 성읍이요, 이스라엘의 영적 센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러지를 못했어요. 멀리 예루살렘에서 전해져 온 소식은 그 훌륭했던 믿음의 열기가 식었고, 평안과 안정 속에서 유다 사회는 부패하였으며 타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픈 마음으로 고뇌하던 느헤미야는 다시금 1천 킬로나 되는 그 먼 거리를 마다치 않고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와 더불어 병든 사회를 정화합니다. 이를 가리켜 느헤미야의 개혁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다시금 바른 모습으로 서기를 바라며 개혁했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 모습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오늘날 주를 섬기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습니다. 개혁되어지는 모습과 비교하여 연약하고 부족한 점이 있다면 우리도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첫째, 거룩히 지켜야 할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와 더불어 성벽을 재건하고 주를 기쁘시게 하고자 굳은 다짐을 한 이후로 율법에 충실하여 안식일을 성수하였으나,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정신이 해이해져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15절부터 17절까지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도 유다 자손에게 팔기로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느13:15~17)
안식일을 범하는 모습은 첫째 그 날에도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요, 둘째는 장사하여 이윤을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짐을 나르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포도주와 포도 무화과 열매, 또는 물고기와 물건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팔았습니다.
그런데 이 안식일의 지키는 모습이 신약시대에 와서는 바뀝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후 율법을 완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에도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히라 하시며, 안식일에도 병자를 고치셨어요.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기독교인을 통해 안식일은 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귀히 여겨, 안식일 후 첫날을 성일로 정하여 주일, 즉 주님의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신약시대에 이 주일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받으시고 예배하는 자의 영혼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고 지치고 상한 심령이 새로워지는 날이 주일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떡을 떼며 교제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에 주일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20:7) 그 주간의 첫날이란 안식일 후 첫날이에요. 주일입니다. 모두가 모여 예배를 드리고 주의 말씀으로 새로워지고, 함께 떡을 떼며 믿음 안에 교제하는 날입니다.
우리 교회는 오전에 예배를 마치고 함께 공동식사를 하며 교제를 나누고 오후에 또 예배를 드려, 구약시대 성전에서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으로 드렸던 제사의 모습을 따르며, 오후 예배를 마치면 가족 간에든지 성도 간에든지 저녁 식사를 하며 교제를 할때는 매식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안식일에 금했던 병자를 고치시는 일을 하신 것처럼 우리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전도하며, 어렵고 힘든 자를 구제하는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주일을 성수하는 모습이겠습니다. 잘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잡혼을 금하게 하였습니다.
2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느13:27) 왜 이처럼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을 금하게 했을까요? 섬기는 신이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가르침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믿음의 자녀들끼리 결혼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릴 적부터 잘 가르쳐서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혹자는 생각하기를 “일단 결혼하고 그 다음 믿게 하면 되지~!” 그러나 여러분, 이 일이 절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미 불신자와 결혼을 한 경우에는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그 가정에서 어떠한 어려움을 무릅쓰고서라도 기독교 신앙을 지켜야 하며, 나아가서 배우자와 자녀들이 예수 믿을 수 있도록, 거의 선교사 수준으로, 가정선교사의 모습으로, 정말 많은 수고를 해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그러는 중에 시댁이 모두가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경우도 있으니, 소망을 저버려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셋째, 제사장 직분을 정화하여 예배를 재건하였습니다.
잡혼은 당시 유다 사회의 일반 백성들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대제사장의 가문에도 있었습니다. 28절과 29절을 보시겠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느13:28~29)
산발랏이 누구입니까? 그는 예루살렘의 재건과 성전 재건 당시 가장 심한 방해 공작을 자행해 오던 자에요. 그런데 그의 딸과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가 결혼을 했던 것이었어요. 어떤 이해타산이 엮여 있었겠지요.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
제사장의 혈통에 속한 자는 더욱 특별한 윤리적 성결의 책임이 있었습니다. 레위기 21장 7절에 말씀하기를, 제사장의 혈통은 이방 여인을 말할 것도 없고, 몸을 파는 여인이나, 이혼 당한 여인과도 결혼할 수 없었고, 심지어 일반 과부와도 결혼이 금지되었습니다. (참조:겔 44:22) 그런데 대제사장의 가문에서 유다를 대적하는 권력자인 이방인의 딸을 며느리로 삼았으니 그를 추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주의 종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신약시대에 그 자격에 대해 디모데전서 3장 1절 이하 7절까지 그 기준을 정하고 있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딤전3:2~7)
주의 종 자신은 늘 깨어 이와 같은 덕목을 지키고 함양하며, 또한 성도님들도 주의 종을 위해 많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사탄은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주의 종을 무너뜨리려고, 늘 공격해 오기 때문입니다.
넷째, 성전에 드러야 할 첫 수확의 십일조를 잘 드리지 아니하였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9절에 하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너희 토지에서 처음 익은 첫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출23:19). 그러나 잘 지키지 않았어요. 본문 말씀, 10절,11절,12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느13:10~12)
느헤미야는 첫 열매로 드려야 할 십일조에 대하여 이미 많이 강조하여 가르쳤어요. 그런데 느헤미야가 떠난 뒤로 제대로 지키지 않았어요.
우리가 왜 십일조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감사의 표현이에요. 농사에 꼭 필요한 햇볕과 비를 주시고 또한 건강을 주셔서 추수를 하고 수확을 거두었으면, 당연히 이를 주관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지요.
그리고 그렇게 드려진 십일조는 성전에서 수종드는 주의 종들의 생계를 위해서, 성전 관리와 보수를 위해서, 그리고 어려운 자들의 구제를 위하여, 또한 명절과 같은 특별행사 때 함께 모여 식사하며 교제하는 일에 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키지 아니하니 느헤미야는 그 모습을 꾸짖으며 다시 시작하도록 강조하였습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누구나 십일조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릴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의무를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어요.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고 말씀하시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이와 같은 느헤미야의 개혁 운동으로 유다는 점차로 신앙을 회복하고,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자신을 돌이켜보아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잘 지켜 행하시므로 주께서 예비하시고 약속하신 복된 삶으로 살아가시는 천국백성이 다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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