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에베소서5:15-18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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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하라
어느 한 집사님이 몸이 이상하여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검사를 받고 병실에 누워있는데, 병실 밖에서 그의 가족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렸어요. 검사결과를 놓고 하는 그들의 말이, “병명은 암이고, 몇 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습니다. 집사님은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허나 신앙인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집사님은 자기의 삶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심지어는 자신의 재산을 털어 불우한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유서까지 써 놓았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암을 선고한지 여섯 달이 지났는데도 집사님의 몸이 멀쩡한 것입니다. 너무나 이상해 다른 큰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해보았더니 놀랍게도 암이 없었어요. 그 전 병원에서 했던 암진단은 오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황당합니까?
주변 사람들은 그가 병원의 오진을 모르고,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을 거의 다 써버린 것에 대하여 아까워하며 집사님의 심정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집사님은 오히려 이렇게 고백했어요. “6개월 동안의 시한부 인생이, 저의 삶 전체 중에서, 가장 진지하고 보람 있게 살았던 순간이었습니다.”
자기 인생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6개월, 마지막 시간이다 라고 생각하니, 그처럼 값지고 보람있게, 후회하지 않을 시간으로, 아깝지 아니할 시간으로, 보낼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보통 세상 사람들이 흘러가는 세월이 아깝다고 느껴지기 시작하면...., 그때가 언제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이미 그때는 죽음 저편의 세상이 어렴풋이 보일 듯할 때, 인생의 느지막한 나이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아~! 세월이 참 빠르구나!” 그때가 돼서야 깨달아 알게 됩니다.
연령에 따라, 세월의 속도가 다르게 느껴진다고 했어요. 10대는 시속 10㎞로, 20대는 20㎞로, 30대는 30㎞로, 60대는 60㎞로, 70대는 70㎞로, 자동차가 달리는 것처럼 세월의 속도가 느껴진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정말 그렇게 느끼십니까?
여러분은 김형석 교수님을 아실 것입니다. 지난 4월에 104살을 넘기신, 그러나 놀랍게도 여전히 활동을 하고 계신 어르신이죠,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님이신, 김형석 교수님! 제가 고등학교 때에도 그분의 수필집인 “영원과 사랑의 대화”을 읽고 큰 영향을 받았는데, 지금도 그분의 책을 읽어요. 참 장수하십니다.
그분의 저서인 “100살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읽었어요. 100살까지 살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저도 미리 알고 싶어서 그 책을 보게 되었는데요. 그 책을 통한 그분의 지론은 이러합니다.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에는 늙지 않는다.” 다른 말로 “사람은 배우고, 깨닫고, 공부하고자 하는 동안에는, 늙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어르신은 100년을 살아보고 이렇게 말씀하세요.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일찍, 성장을 포기하는 ‘젊은 늙은이들’이 많다. 아무리 40대라고 해도, 공부하지 않고 일을 포기하면, 녹스는 기계와 같아서 노쇠하게 된다. 차라리 60대가 되어서도, 진지하게 공부하며 일하는 사람은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굉장히 소망적인 말씀이죠?
오늘 말씀에,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때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때가 악한 것 하고, 세월을 아끼라는 것하고 어떤 상관이 있겠습니까? 세상 풍조에 휩쓸려, 덧없이 흘려보내고, 보람없이 날려보내는 세월이 너무 많다 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민족은 정말 대단해요. 부지런함과 열심에 있어서는, 세상의 그 어느 민족보다 더 뛰어납니다. 그야말로 타 민족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성취를 위한, 밤샘, 야근, 잔업, 목적달성...., OECD 38개 국가들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1,746시간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근로시간이 2,024시간이에요. 이제는 토요일에 쉬면서도 그래요. 그러니 그 전에는 어마어마하게 일을 하며 살아온 거에요.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년간 278시간을 더 일하는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이를 하루 법정 노동 시간인 8시간으로 나누면, 35일을 더 일하는 셈이 됩니다.
그런데 관건은 “그래서 그마만큼 행복하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땀 흘리고 수고하고 일해서, 과거보다 돈은 더 잘 버는 것 사실이에요. 국민 개인당 평균 소득이 2018년 이후로 3만불 시대에 들어섰고 작년에 36,200불이었습니다. 이제는 잘 사는 것이 일본보다 근소하게 앞섰어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예요. 문제는 세월이 갈수록, 행복지수는 떨어지고, 불만지수는 높아가며, 우울증과 자살율은 계속해서 고공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OECD 국가 중에 최악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오늘 성경본문은 이에 대하여 이렇게 그 답을 제시합니다. “지혜없는 자의 모습으로 살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살면서 세월을 보내고는 있지만, 그 모습은 지혜없이 시간을 사용하고, 세월은 덧없이 흘러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함께 1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이어 같은 맥락에서 17절에 말씀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지혜없는 자! 어리석은 자! 어떤 자겠습니까? 악한 세상의 풍조에 휩싸이고, 떠밀려 내려가면서, 세월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자,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주시는 말씀이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권면합니다.
일찍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든지, 파우스트 라는 소설로 잘 알려진, 독일의 문호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인생의 시간과 연관하여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Life is a matter of direction, not speed.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같은 맥락에서 마하트마 간디도 말했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잘못되면 속도는 의미가 없다.”
방향이 잘못되면, 즉 '삶의 비젼'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수고하고 열심히 살아도, 불안합니다. 허전합니다. 만일 그 모습으로 살다가 느지막한 때, 인생을 뒤 돌아 보면, 후회막급일 것이에요. 그러나 이 모습은 나이가 들은 다음에 갖는 생각이 아니라, 지금도,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 할 것 없이, 느끼면서도, 지나가고, 느끼면서도 지나가고, 그러나 방향 전환의 결단이 없으니......., 행복지수는 떨어집니다. 삶의 가치를 못 느낍니다. 결국 자포자기하고, 생의 감사와 기쁨은 사라집니다. 이 모습은 오늘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불행입니다.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오늘 말씀이에요. 살아가는 데 있어서 주님의 뜻을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복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주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충만하면,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케 되면, 깨달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술과 성령을 대조적으로 비교하며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향력에 있어서 술취함과 성령충만의 어떠한 공통점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술 취한 사람은 알코올에 취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에 충만하여 능력을 받습니다. 유사한 점은 내 능력이 아니라 술의 힘이 있고, 그리고 내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힘이 있다는 것이에요. 둘 사이는 비숫하지만 내용은 너무 다릅니다.
이 본문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신전에서 행해지던 종교적 제술 행위를 알아야 합니다. 이교도들이 신전에서 ‘디오니소스’라는 신을 숭배할 때에 술에 취했습니다. 그들은 ‘디오니소스’를 포도주의 신이라 믿었어요. 로마시대에 이 신의 이름이 ‘박카스’로 바뀌어 부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술에 취하는 것은 신이 주는 영감을 받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어요. “술에 취하면 술의 신에 의하여 영감을 받는다.” 하는 것이었어요.
어떤 분들은 박카스 드링크를 마시면서도 취한다는 분 있어요. 그러면 신적 영감이 옵니까? 물론 그러지 않겠지요. 제 방에도 박카스 드링크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셔도 영감이 안옵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이 당시 이교도들의 종교의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술의 힘을 빌리느냐? 그것으로 어떤 능력을 받고자 하느냐? 그것은 이방인들이 행하는 방탕한 것이다. 너희에게 진정 힘을 주고, 지혜를 주고, 능력을 주실 분은 성령이시니,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하시는 것입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이성이 마비됩니다. 방종하고 통제되지 않는 행동을 합니다. 단적인 예가 있으니 음주운전입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최근 3년간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한 해에 360명이 사망하고, 약 3만명이 부상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하루 평균 약 50건이 음주로 인한 교통사고에요. 이로 인해 매일 한 명이 사망합니다. 자신이 술에 취해 운전하다가 다치고 죽는 거야 자기 잘못이라 하겠지만, 왜 죄없는 선량한 시민이 피해를 입고 부상당하고, 죽어야 합니까?
그러나 성도 여러분, 술이 아니라 성령에 충만하면 그 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성령은 우리를 자극하시니, 우리의 정신, 지성, 의지, 마음을 자극하셔서, 우리를 더욱 새롭게 하십니다. 총명하게 하시고, 지혜롭게 하십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 성령충만은 너무나 귀하고 좋은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와 온유와 절제의 아홉가지 성품의 열매가 맺혀지게 되니, 새 삶으로 사는 것입니다. 새생명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도 기도하실 때 성령충만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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