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에베소서4:13-1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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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어제 우리는 말씀을 통해 교회의 지도자로 세움받은 자의 임무가 첫째는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이니, 성도들이 구원의 도를 깨닫고, 믿음에서 성숙하도록 말씀으로 가르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자로 세우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될 때 결국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든든히 설 수 있다고 성경의 내용으로 나누었습니다.
오늘날 세상 문화는 “쉽게! 쉽게!” 그리고 “편하게! 편하게!”가 세상을 움직이는 문화코드가 되었어요. 그러나 신앙은 다릅니다. 소위 Short-Cut, 신앙의 지름길이 없어요. Short Course! 단기과정도 속성과정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봉사하기를 주저합니다. 세상 먹고 사는 일이 바쁘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제가 관찰해 보니 정말 생계를 위하여 직장을 다니고,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시는 성도들이 있어요.
그런데 부가적인 일로 바쁘신 분들도 있어요. 취미 생활해야지요. 운동도 해야지요. 계절따라 여행도 다녀야지요. 맛집 찾아서 식도락을 즐겨야 하지요. 코로나19가 한창 창궐할 때도 나다녀요. 그래서 우스개 소리가 있었어요. “이런 분들은 코로나도 감당 못해요.” “코로나야! 네가 난리를 쳐도 내 갈데 다 가고, 하고 싶은 것 다한다.”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면, 열심히 사역하는 교인들은, 한 교회 안에서 약 25%정도 입니다. 나머지 75%는 봉사하지 않습니다. 중풍으로 반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를 반신불수 라고 하는데, 이런 면에서 보면 한국교회는 ‘4분의 3신 불수’라고 어느 신학자가 지적했어요. 그러면서 도전을 줍니다. 목사-교사는 교인들에게 교회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는가, 아니면, 교회의 마비화에 기역하고 있는가? 그렇게 엄중하게 책망하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은 교회을 섬김느라 많이 봉사하시는 분들이시죠. 그런데 봉사를 하기보다는 관중석의 관람객과도 같은 교인도 있습니다. 달콤한 찬송과 즐겁고 평안한 멧세지를 듣기를 좋아합니다.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믿음이 성장하기를 바라는가? 하여 주의 기쁨이 되기를 원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봉사해야 합니다. 교회 안으로 깊이 들어와야 합니다.
주 안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성장하기를 바라십니까? 그러므로 복있는 자의 삶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봉사해야 합니다. 저는 아주 과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어요.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 위하여 우리가 추구하는 신앙생활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 온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해요. 온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믿는 것’ 은 지적인 깨달음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요. 배워요. 묵상해요. 지적으로 풍부해지고 그것 자체가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이단에 빠지지 않아요. 배운 것을 남들에게 가르칠 수도 있어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있어요.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을 알 수 있습니까? 여기에서 ‘안다’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어로 ‘야다’라는 말을 쓰는데, 그냥 지적으로 인지하여 한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이는 부부가 서로 동침하므로 서로를 알듯이 그렇게 체험적으로 경험하므로 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머리로만 다 알 수 있습니까? 거기에 더 필요한 것이 있어요. 가슴으로 알아야 합니다. 또 다른 말로 주님을 체험과 경험으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손과 발, 마음과 시간을 드리지 않고서는 진정한 앎, 진정한 체험은 없습니다. 이 일에 최고의 길은 바로 ‘봉사’인 것이에요. 저는 우리교회 청년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감사해요. 신앙이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요인을 보면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둘째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이니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합니다. 그리고 단기선교로 선교지에 나가 봉사합니다. 단기선교에 나가서 할 일을 준비하는 데만 3개월이 걸린다고 하니 그 시간도 경험을 통해 믿음이 자라나는 시간이에요. 그런가하면 사랑의 연탄 나눔으로 봉사합니다. 배운 것을 실천하고 봉사할 때 가슴이 뜨거워지고 신앙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신기한 것은 봉사할 때 기쁨도 임하고 보람도 임하니 건강도 따라줍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늘 보았습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이 휴가 기간에 선교지에 오는 거에요. 단기 선교하러 와요. 고생길이죠. 그런가하면 어떤 의사는 일년에 반은 한국에서 자진의 개인병원에서 열심히 일을 해요. 그리고 일년의 반은 그 번돈을 가지고 선교지에 나와서 봉사해요. 그 개인병원을 의사 둘이 운영하니 둘이 교대로 그렇게 하는 거에요. 대단하죠? 이게 누가 시켜서 하는 것입니까? 아니요. 그 일이 너무, 너무 좋은 거에요. 세상이 그 기쁨을 압니까? 몰라요. 죽었다 깨어나도 몰라요.
마치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솟구쳐 오르는 생수와도 같이 그 심령에서 솟아나오는 기쁨과 보람은 이미 하늘의 것이요, 예수님의 영성에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머리로만은 아니에요. 어림도 없습니다. 백날 해보세요. 그렇게 깨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세계를 알 수가 없습니다. 봉사를 통해 얻는 감사와 기쁨과 감격의 체험이 있을 때 그 영혼이 강건하고 따라서 겉 사람도 튼튼해집니다. 병균에 대항하는 면역성이 높아집니다.
어느 회사의 사장과 전무가 함께 점심식사로 회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식중독으로 사장이 죽고 말았습니다. 죽은 사장을 부검해보니 사인은 아주 지독한 비브리오균이었습니다. 보통 비브리오균이 인체에 침투하면 2.3일 후에야 병변이 발생하는데, 사장에게 침투한 비브리오균은 워낙 치명적인 독성을 가지고 있어서 불과 몇 시간 만에 사망해 버린 것입니다.
사장과 함께 회를 먹은 전무의 위액에서도 죽은 비브리오균이 검출되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전무는 안 죽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죽은 사장은 부인과 4년째 별거를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집사였는데 교회에 나가는 일도 드물었습니다. 영적신비를 체험하기도 힘들었고, 마음에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모든 일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처리했습니다. 세상기준으로 보면 성공하고 출세했으나, 그 과정에서 적이 많이 생겼습니다.
반면에 전무는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승합차로 근처에 사는 노인들을 교회로 실어 나르고, 봉사를 하루도 거르지 아니했습니다. 부인과 사이도 아주 각별했고, 범사에 감사하는 태도를 가졌습니다.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사모했습니다. 교회에 나올 때에는 늘 아내와 팔짱을 껴서, 놀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개의치 아니했습니다.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그러니 그의 몸 안에 들어온 비브리오 균도 그의 몸을 상하게 하지 못한 것입니다. 강한 면역체계 때문이었습니다. 기쁨으로 봉사하는 자에게 주시는 특권입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13절)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봉사의 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자들을 보실 때마다, 눈으로 보시고, 마음으로 느끼시고, 그리고 곧 바로 손과 발을 움직여 행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요, 예수님의 실천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야다’로 알아가는 것, 그 길은 바로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한 봉사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어떤 모습이 되는가? 16절에 표현되고 있어요. 함께 읽고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으므로” 라고 했어요. 그가 누구시겠습니까? 그는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이세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섬기는 각 개개인들이 똑바로 설 수 있도록 필요한 사랑과 지혜와 능력을 공급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의 모습이 주님이 원하고 우리 모두가 원하는 교회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사랑으로 섬기고 돕고, 주께서 주신 은사를 십분발휘하여 봉사하면 교회가 평안한 가운데 든든히 서간다는 것입니다.
이 새벽에도 함께 다짐하며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주여! 우리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한국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나는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주여! 내게 은혜주시고 능력주셔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에 나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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