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창세기49:18-2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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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19.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20.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여호와는 나를 기르신 목자
야곱은 세상을 떠나기 전 기력을 다하여 자녀들의 앞날을 축복합니다. 한 인간으로 출발한 인생이 가족을 이루고 이 가족은 장차 이스라엘 12지파의 시조가 될 것이요, 대표자들이 될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인생은 파란만장한 인생이었으나 참으로 복된 인생이었습니다.
그의 나그네 여정을 보노라면 참으로 거친 인생이었어요. 그러나 점차로 믿음에 성숙한 모습으로 변해왔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인생이 여호와 하나님의 손안에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는 여하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끝까지 인도하시고 야곱의 인생이 복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야곱은 이러한 고백을 했습니다. “나의 출생으로부터 나를 기르신 하나님” 전장 48장 15절 말씀을 찾아가서 읽겠습니다.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창48:15)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 야곱, 꾀는 많으나 어그러진 성품의 야곱을 길러오셨을까요? 야곱의 일생을 되돌아보면 처음 모습은 장자권을 얻고자 하는 욕망 덩어리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외삼촌이 있는 밧단하란으로 도망치던 중에 벧엘에서,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되었어요.
그리고 창세기 32장 24절에서 32절에 보면 브니엘에서 이스라엘의 이름을 받으며 인격과 성품의 변화를 갖게 됩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고난 중에 인생의 새로운 출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47장에서 49장의 내용을 보면 인생의 마지막 무렵, 그는 놀라운 영적 감화를 남기며 신앙의 유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야곱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나를 기르신 하나님” 즉 “자신은 어린 양이며 하나님은 그를 기르시는 목자”가 되심을 이스라엘 역사에 처음으로 표현하는 주인공이 됩니다. 오늘 본문 49장 24절을 보시겠습니다.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창49:24)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는 목자” 가 되심을 노래합니다. 개인의 목자가 되시며 민족의 목자가 되시며......., 목축업을 하는 자들로써 더 이상 적합하게 하나님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이 모습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모든 믿는 자들의 “선한목자”로 표현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양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선한목자가 되셨습니다.
성경을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님을 목자로 표현한 인물들은 다 승리했습니다. 시편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고백한 다윗은 이스라엘의 성군이 됩니다. 에스겔 34장 15절에는 에스겔도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있게 할지라”
여러분은 누워있는 양들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까? 힘이 없고 잘 보지도 못하고 야수가 나타나도 도망할 줄 모르는 양들은 늘 서 있어요. 불안해서 눕지를 못해요. 늘 서서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풀을 뜯고 있을 뿐이에요. 그러나 그와 같은 양을 편히 누워 쉬게 하시는 하나님.........., 여러분의 지치고 힘든 인생을 푸른 초장에 뉘이시고 시원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이 목자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도 고백했어요. 베드로전서 2장 25절에 보니 “너의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예수께서 영혼의 목자이심을 말씀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하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이름으로 불러내시고 나는 언제나 그분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래서 순종합니다.” 아멘!
1.여호와 나의 목자 내게 부족없네. 푸르른 초장위에 나의 몸 누이시~네. 선한 목자 오 나의 목자여. 생수가 넘치는 곳 날 인도하시네......
2. 내 영혼 소생하며 자기 이름 위해. 의의 길 인도하니 골짜기 두렴 없네. 선한 목자 오 나의 목자여. 생수가 넘치는 곳 날 인도하시네.”
이 종이 선교지에서 늘 부르던 찬송이에요.
때로 험산준령을 넘어갈 때에도 눈물의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여호와 당신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주께서 인도하시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도 순종하며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주께서 나의 목자가 되시니 해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께서 지팡이와 막대기로 나를 보호하시고 안위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고백이, 다윗의 고백이, 에스겔의 고백이, 베드로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셔서 주어진 인생길, 승리자의 날들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처럼 신앙의 유산으로 자손에게 축복하는 야곱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를 세우는 일에 자신의 아들들과 요셉의 두 아들을 세웠습니다. 이들은 나중에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에 레위지파는 전쟁에 나가지 않기 때문에 대신 요셉의 아들인 에브라임으로 시작된 에브라임 지파가 전쟁에 나가서 싸웠습니다. 므낫세 지파는 나중에 단 지파를 대신하게 됩니다.
열두 형제 중에 장자권이 르우벤이 아닌 유다에게 넘어갑니다. 르우벤은 출생 시에는 당당히 장자의 자리가 주어졌으나 죄로 인해 그 지위를 빼앗긴 것입니다.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끓는 물 같은 통제되지 못한 정욕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서모 빌하와 통간하였기 때문이었어요.
다음 아들들인 시므온과 레위도 장자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난폭했습니다. 세겜에서 잡혀간 누이 디나를 구하기 위해 경건한 할례를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5절에 보니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창49:5) 그랬어요.
나중에 시므온지파는 유다지파에 예속됩니다. 레위지파는 제사장의 지파가 되어 제사장의 일을 하려니 따로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48개 성읍으로 흩어지게 되는데 자손들의 열심으로 인해 복을 받게 됩니다.
결국 장자권의 축복은 유다에게 돌아갑니다.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창49:8)
유다의 후손에서 다윗 왕이 나오고 다윗의 혈통에서 요셉과 예수님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처럼 큰 영광이 유다에게 주어진 것은 그 이유가 있기 때문이에요. 단순히 형들의 못나서가 아니에요. 야곱이 그를 축복하게 되었고 그 복이 이루어진 이유를 알게 된다면 이는 우리에게 영적교훈이 됩니다.
유다는 첫째, 형제들을 아우르는 리더쉽이 있었습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자고 했을 때에 반대편에 서서 죽이지 말자고 했습니다. 장남인 르우벤도 죽이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이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아니했죠. 르우벤은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함께 있어야 했어요. 나중에 와보니 이미 늦었습니다.
그때에 형제들과 함께 있으므로 요셉을 죽이지 못하도록 막은 자가 유다였습니다. 형제들의 살기를 낮추는 중재안으로 유다는 요셉을 애굽으로 가는 노예 상인에게 팔자고 했지요. 창세기 37장 26절, 27절 말씀입니다.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창37:26~27)
결국 요셉이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포악한 형제들을 아우르는 유다의 리더쉽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그는 효자였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볼모로 베냐민을 요구했습니다. “베냐민을 놓고 가라” 야곱의 아들들이 심한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처럼 야곱이 아끼는 베냐민을 놓고 갈 수는 없었어요. 그때에 유다가 나서서 요셉에게 간곡히 호소를 합니다. 요셉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창세기 44장 30절과 31절에 내용이 이러합니다.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ㅜ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창44:30~31)유다의 이 효성가득한 말에 요셉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셋째, 희생정신이 어느 형제보다 강하였습니다.
요셉에게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청하면서 유다는 베냐민 대신에 자신이 볼모로 잡혀있기를 자청합니다. 그가 요셉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44장 32절~33절입니다.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창44:32~33)
이러한 성품의 유다를 바라보는 야곱은 그에게 장자권의 복을 주며 축복합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창49: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영적인 장자권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네~! 유다와 같은 성품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 밖에 모르는 세상에서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속 깊은 사람” 이와 같은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요, 장자권을 주십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야곱과 같이 다윗과 같이 에스겔과 베드로와 같이 어려울 때에나 힘들 때에나 “여호와 하나님을 늘 목자”로 부르시기 바랍니다.
사망의 골짜기를 다니지 않는 것이 최고이겠으나 혹 그 자리에 서 있다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를 때에 목자 되신 주께서 지팡이로 막대기로 보호하시고 안위하십니다.
이 새벽에도 기도할 때에 나의 이름으로 부르시는 목자의 음성을 들으시는 신앙의 성숙자들이 다 되셔서 승리로운 삶, 복된 인생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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