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창세기49:3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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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 [성경본문] 창세기50:1-14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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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2. 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3.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4.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원하건대 바로의 귀에 아뢰기를
5.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6. 바로가 이르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버지를 장사하라
7.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8.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9.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10.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11.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
12.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13.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14.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천국 환송
이제 창세기 강해도 마지막 장에 이르렀습니다. 내일이면 창세기 50장 전장 강해를 마치고 오는 목요일부터는 신약성경으로 가서 에베소서를 함께 묵상해 나가겠습니다. 창세기 강해가 시작된 것은 지난 2월이었습니다. 오늘 새벽까지 67번 설교했습니다. 함께 새벽 기도제단을 쌓으며 창세기를 함께 묵상해 오신 여러분도 수고하셨어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 우주창조의 근원과 사람창조 그리고 개인과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는 이스라엘 민족의 태동과 대를 이어 약속을 지켜나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더욱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인 것을 보게 되었어요. 그의 후손을 통해 장차 예수님이 탄생하실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으로 택하신 것은 이 땅의 모든 민족이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의 샘플로 보여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어떻게 살면 복이 임하고, 어떻게 살면 화가 임하는지.....아담과 아벨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삶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간절히 바라옵기는 여러분 모두가 복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에 있어서는 미지의 땅의 개척자인 아브라함을 닮으시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양보가 많아서 평안한 삶을 살았던 이삭을 닮으시고, 인생의 고비를 통과하실 때에는 악착같은 인내와 끈기로 승리한 야곱을 닮으시고, 성품에 있어서는 넓고 큰마음의 소유자, 용서의 사람인 요셉을 닮으시기 바랍니다.
자, 이제 50장을 시작하겠습니다. 50장에서 우리는 파란만장한 삶을 해피엔딩으로 마감하는 야곱의 임종을 봅니다. 그리고 극적인 인생으로 살면서 용서의 사람으로 살아간 성품 좋은 인물, 요셉의 임종을 봅니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창세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야곱의 장례식은 70일 동안 애통하는 국민장이었습니다. 또 애굽의 의사들이 그 시신을 수술하여 향 재료를 몸속에 넣는 데만 40일이 걸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장지가 500킬로에 달하는 먼 거리 가나안 땅이었는데도 그곳까지 따르는 행렬이 가족뿐만 아니라 국가의 고관 백작이 함께하고 호위병들이 함께하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큰 장례식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호상이었어요. 7절과 8절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창50:7~9)
운구 도중에 아닷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요셉은 7일을 머물면서 아버지를 위하여 애곡했습니다. 요셉은 참으로 효자였어요.
야곱을 위한 이 거대한 장례식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평생 하나님을 사랑한 자에게 그 모습에 준하는 보상을 하시는구나!” 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어떠한 상황 환경 조건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결코 놓지 아니했습니다. 일찍이 가정을 떠나서 타지에서 살아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외삼촌 라반 밑에서 고생을 많이 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여하튼 야곱은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주신 복의 약속을 꼭 부여잡고...... 되새김질을 하고 또 되새김질을 하면서, 그 끝까지 인생 경주를 다 마치고 그 마지막 가는 길이 승리자의 모습이었습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모두가 다 어떠한 환경 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을 꼭 잡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따라 종래 승리자의 모습으로 인생여정을 완주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는 그의 인생여정의 종착역에 서서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라!” 말한 것입니다. 49장 2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창49:29)
여기에서 표면상으로는 조상이 묻힌 에브론 장지에 자신도 묻히리라는 말이지만은 결국 육신은 선조들처럼 거기에서 흙이 되고, 영혼은 선조들처럼 하나님의 품에 영원히 거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하는 것은 곧 이 땅에서 유한한 인생이, 영혼의 본향인 하늘나라에서는 영원히 거한다! 영원히 산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1장 13절 이하에는 먼저 이 세상을 떠난 믿음의 열조들이 돌아간 영혼의 본향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야곱이 바로왕 앞에서 고백했습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년이니이다.”)
이어 히브리서는 말씀합니다.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3~16)
이 말씀에서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다“ 하는 것은 곧 하늘나라 하나님의 품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쓸 고 자를 써서 인생은 고해다. 아픔의 바다와 같다고 해석했습니다. 어느 종교는 인생을 정의하기를 “태어나는 것 자체가 아픔이고 불행이다” 라고 정의하여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복이다” 라고 까지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로 믿고 따르는 성경말씀은 인생에 대하여 그렇게 부정적으로 결론짓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가지고 주 안에서 살아가는 인생은 이 땅에서는 분명한 삶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삶의 목적을 이룬다 함은 곧 저 천국에서 영생복락의 기쁨으로 상급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비록 나그네와 같은 인생으로 100년 남짓한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 다음은 천국입니다. 주 안에서 안식과 평안입니다.
이 천국을 말씀에 보니 본향이라고 했고 “이 본향을 사모”한다고 했습니다. 본향이라는 말은 본래의 고향이라는 것이지요. 즉 영혼이 육신을 입고 오기 전에 영혼의 있었던 곳이라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을 고향으로 삼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저 하늘나라를 고향으로 삼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이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물은 바다로부터 왔기에 바다로 흘러갑니다. 불은 태양으로부터 왔기에 위로 올라갑니다. 육은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땅으로 돌아갑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에 하나님 나라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고향에 대한 분명한 믿음의 선언이 중요합니다.
누가 당신의 고향이 어디요? 라고 물으면 우리는 먼저 육신의 고향을 생각하겠지만 그 보다 더 먼저 있었던 영혼의 고향인 하늘나라, “저 하늘나라가 나의 고향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하늘나라는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이 먼저 간 곳입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자에게 부어 주시는 영생복락의 축복입니다.
하늘고향에는 아버지의 따뜻한 품이 있습니다. 희망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성경에 보니 천국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3~4)
우리 모두는 믿음위에 견고히 서서 이 세상의 모든 짐을 벗는 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하늘나라에 먼저 간 믿음의 선조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민족적 지도자였던 김활란 박사님은 죽으면서 내 죽음을 통해 일어나는 장례식은 천국을 향한 환송의 예식이 되게 해 달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그는 세상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면서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길이 살겠네”라는 믿음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야곱이 그 인생을 평안하게 마쳤습니다. 그는 여한이 없었습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하나님 품에 살아간 믿음의 승리자였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새로운 한 날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밟고 가는 이 길은 영원한 하늘나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 영원한 나라의 자락을 밟고 가는 것입니다.
골인 지점에서 하나님께서 하이 파이브를 하며 안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제 나의 잔치에 참여할 지어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는 새로운 날이 주어졌습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오늘 하루 24시간이 주어졌어요. 오늘도 땀 흘리고 수고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주안에서 승리하시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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