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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53]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형통하는 인생
운영자 2024-07-23 추천 1 댓글 0 조회 131
[성경본문] 창세기39:1-6 개역개정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형통하는 인생

 

누구에게나 주어진 인생이 있지만, 누구나 다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가 다 성공하기를 원해요. 그러나 누구나 다 성공하지는 못합니다. 요셉은 성공한 인물이었을까요? , 그렇습니다. 13년간의 고난의 날이 있었지만, 마침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개인적으로 성공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자신의 형제와 가족을 구하죠.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인의 수가 번성하여 민족을 이루는 일에 요셉은 아주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를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공이 없는 것이 아니에요. 영문성경에서는 성공이라는 success라는 말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왜 그럴까요? , 번역의 차이에요. 영문성경에서 성공이라는 말을 우리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형통이라는 말로 번역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2절과 3절에 형통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형통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짜라흐라고 하는데요. 그 뜻은 번영, 번성, 전진,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결론적으로 성공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갔고 바로의 신하인 시위 대장 보디발의 종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형들의 시기를 받아 종으로 팔려간 요셉이 애굽에서는 오히려 더 잘되어 갑니다. 종의 삶이었으나 그의 신실함이 인정을 받아 그 시위대장 집의 총무가 되고 그 집안의 소유물을 총괄하는 자리에 서게 됐어요.

 

무엇이 그를 그렇게 형통하게 하는 것입니까? 이 새벽에는 요셉의 성공적인 인생, 형통하는 삶의 배후를 살펴보고 묵상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는 이 은혜가 임마누엘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2절과 3절 말씀을 합독하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39:2~3)

 

굉장히 중요한 영적원리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라는 표현이 두 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통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형통함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어요. 어느 누가 감히 덤빌 수 있겠습니까? 사단도 어떻게 못해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씀은 도와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지키시겠다는 것이에요. 그러니 형통함의 역사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야곱이 살기등등한 형을 피해 밧단하람으로 도망가다가 루스라고 하는 광야에서 돌베게를 베고 잠을 잘때,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그것이었어요.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28:15)

 

그러므로 야곱이 그 약속을 믿고 그 어려운 20년의 삶을 승리할 수가 있었던 것이에요. 아무리 삼촌 라반이 그를 속이고 제대로 품삯도 주지 않았으나 마침내 그는 거부가 되어 벧엘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에요.

 

또 여호수아에게 주신 약속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리더쉽의 사명을 다하고 죽었을 때, 그 자리는 정말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자리였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모세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부르시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여호수아1:9)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였어요. 그가 고백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23:4) 그러므로 아비의 양을 채 가려는 사자의 이빨과 곰의 발톱에서 사투를 벌일 때, 자신도 살고 양들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가장 큰 축복은 뭐겠어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눈앞에 갑자기 어려움이 닥쳐오고 작금의 상황이 난관에 봉착하면 제 가슴판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이 자동으로 터져 나옵니다. 특별히 예기치 않은 건강검진결과로 수술을 할수 밖에 없는 성도를 병원으로 심방하고 기도하게 되면 약속의 말씀이 터져 나옵니다. 이사야서 4110절이 나와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41:10)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인생, 복된 인생이요, 형통의 인생이요, 성공의 인생입니다. 요셉에게 이 역사가 있었다면 여러분에게도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이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요셉이 성공한 것은, 사람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말이 좀 이상하지요? 사람의 은혜를 입다니....?? 그러나 이는 사실입니다. 형통하는 삶,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데, 삶의 현장에서 그 나타나는 모습은, 사람의 도움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은 누구의 어떤 사람의 은혜를 입었을까요? 오늘 본문말씀 4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39:4)

 

누구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말씀합니까?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바로 바로왕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은혜를 입었기에 형통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먼저 믿음의 사람에게 임합니다. 그런데 삶의 현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에게 사람을 붙여 주십니다. 소위 인복이라고 하지요. 하나님께서 특정한 사람들을 사용해서 돕게 하시므로 잘되는 역사로 이루어 가시는 거에요. 요셉을 위하여 하나님은 보디발을 쓰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깊이 묵상하다 보면 형통의 복은 하나의 패턴을 이루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가 특정한 인물에게 임합니다. 그리고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둘째 복을 주시기 위해서 특별한 사람을 붙여주십니다. 그래서 돕게 하세요. 모세에게는 아론이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요나단이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는 바나바가 있었고 베드로에게는 마가라 하는 요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잘 알아야 해요.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의지하면 큰일 납니다.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만남을 통해 은혜를 베푸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여러분, 사람 의지하다가 실망하고 낙심해요. 사람은 본래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축복의 패턴에 중요한 세 번째가 있습니다. 그것은 왜? 도대체 왜 그 사람이 나를 돕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 이유를 발견합니다. 왜 보디발이 요셉을 돕고 있는가? 왜 요셉에게 자신의 전 재산의 관리를 위임하였는가?

이것이 세 번째 복을 받는 원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참믿음의 사람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이 보기에도 믿음의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요셉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요. 그것을 보디발이 보는 거예요. 본문 말씀 3절을 다시 보시면 이렇습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39:3)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보았더라! 보았더라!” 마음은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앙심도 보이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 마음과 신앙은 반드시 은연 중에라도 외적으로 들어납니다. 감출 수가 없어요.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을 수가 없습니다. 밤이 되면 칠흙 같이 어두운 이스라엘 땅에 예루살렘성은 산꼭대기에 있으므로 밤에 켜진 불들로 인해 밝게 빛나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이는 것이에요.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빛으로 드러나고 소금으로 드러납니다.

 

상상을 해 봅니다. 요셉이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애굽에서는 나름대로 우상을 만들고 이방신을 섬기는데 요셉은 우상을 섬기지 않습니다. 우상 앞에서 절을 하거나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도합니다. 가만히 보니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런데 일이 잘되어 갑니다. 일을 맡기면 지혜롭게 처리합니다. 정직합니다. 속임수가 없습니다. 신실합니다. 요셉이 그 집안에 복 덩이인 것입니다. 어떻게 압니까?

보기 때문에 알아요. 그 모습을 보기 때문이죠.

! 다르구나! 예사롭지가 않아! 믿을만하구나! 그가 믿는 신이 도와주고 있음에 틀림이 없어!”

 

성도 여러분, 사람이 붙고, 사람이 따르는 것은, 여러분의 됨됨이 때문일 것입니다. 그 됨됨이는 곧 성품이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부여잡고 살아가는 자, 밖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습니까? 믿는 사람 앞에서나, 믿지 아니하는 사람 앞에서나 언제나 변함없이 신실합니다. 다를바가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격입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이 직장에 가면 직장이 잘 됩니다. 가정에 들어오면 가정이 복을 받습니다. 그 모습이 요셉의 성공이었어요. 본문 5절의 말씀이지요.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39:5)

 

보디발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믿음의 사람으로 굳게 서시고, 그 모습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고, 그러기에 많은 도움을 받아 형통하는 인생, 복된 인생, 성공하는 인생이 되시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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