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창세기37:18-28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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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인생의 캄캄한 밤을 통과할 때
우리가 함께 봉독한 성경본문의 얘기는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합니다. 한편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요. 형들이 아무리 동생을 시기하고 미워하기로서니 어떻게 같은 골육인 동생을 죽이려고 했을까? 또한 죽이지는 아니했으나 다시는 볼 수 없을 머나먼 나라로 그렇게 노예로 팔아넘길 수가 있을까?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까지 악할 수가 있구나!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가 표현했던 것처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17:9)
정말 하나님을 떠나 부패된 그 죄성에서 솟아나는 악의 끝은 어디인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왜 형제들이 요셉에 대하여 이런 악한 감정을 가졌는가? 첫째는 야곱의 편애였습니다. 자녀 모두를 공평이 사랑해야 하는데 야곱이 그러지 못했어요. 야곱이 유독 요셉만을 편애한 이유는 물론 그의 사랑하는 아내인 라헬의 소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욱이 요셉은 천진무구하고 순수한 성품의 소유자였어요.
그러나 심리학적인 면에서 바라보면 야곱은 자신이 편애를 받고 자라났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형인 에서에게 다 빼앗겼어요. 야곱은 기질상 본래 태중에 있을 때부터 욕심이 많았습니다. 형보다 늦게 나오지 않으려고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은 야곱이에요.
그런데 아버지인 이삭은 사냥을 좋아하고 활동적이고 용맹하고 남성다운 에서를 편애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에서 야곱은 형에게 많이 밀렸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야곱만을 챙겼어요. 그 양이 마음에 차지 못했습니다. 자녀에게는 아버지의 사랑도 필요하고 어머니의 사랑도 필요해요. 그런데 야곱은 형에게 치어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레아의 소생이든 라헬이 소생이든 다 자신을 통해 주신 자녀들이기에 공평하게 사랑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 편애로 형들이 요셉을 시기했어요. 요셉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이 삐뚤어진 모습을 통해 우리의 자녀교육에 필요한 교훈을 받습니다. 자녀들은 엄마 아빠의 양쪽으로부터 그리고 형제들 간에 비교가 되지 않을 공평한 사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요셉의 꿈 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뜩이나 형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고 있는 요셉은 천진난만하게 자신의 꿈 얘기를 형들에게 말합니다. 내용인즉 “밭에서 곡식 단을 만드는데 자신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이 단은 자신의 단에게 절을 하더이다” 또 꿈을 꾸고 말하기를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해는 아버지요, 달은 어머니요, 열한 별은 그의 형제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온 가족의 대표요, 온 가족으로 섬김을 받는 축복자의 자리에 요셉이 선다는 내용입니다. 어린 요셉은 몰랐어도 형들과 아비가 그 꿈의 뜻을 해석했어요. 오늘 본문 18, 19절에 형들이 요셉을 표현하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창37:18~19)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미움의 표현이에요. 제대로 표현하면 “저기 꿈쟁이가 온다!” 그런 멸시의 표현입니다.
형제들은 요셉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죽이기를 꾀하였다”고 성경본문 18절은 말씀합니다. 죽여서 구덩이에 던져버리려고 했어요. 그때 장남인 르우벤이 중재합니다.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장남은 장남인 것이죠. 그래도 형제들 중에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장남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일 먼저 태어나서 제일 먼저 사랑을 받고 일찍부터 부모님의 삶을 바라보면서, 자신 이후로 태어나는 어린 동생들을 키워가는 부모님의 사랑을 곁에서 보았기 때문이겠지요. 또한 집안의 대소사를 부모님은 대부분 장남과 나눕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자녀가 많지 않으니 함께 나눕니다만........... 옛날에는 그랬지요. 그러기에 장남은 장남의 특성이 있습니다.
그 장남의 책임감의 모습이 요셉이 팔려간 것을 알고 나서 애통해 하는 르우벤의 모습에서 드러납니다. 29절과 3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창37:29~30)
“나는 어디로 갈까” “요셉 없이 어떻게 나는 아버지를 뵈올까?” 옷을 찢고 후회하는 책임감 많은 장남의 애절한 고통이 배어져 나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어요. 요셉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이스마엘 족속의 상인에게 은 이십개에 팔린 뒤였습니다.
이러한 악한 형제들의 입술을 통해 요셉이 짐승에게 찟겨 죽었다는 소식이 아버지인 야곱에게 알려지게 되고 야곱은 피가 뭇은 채색옷을 끌어안고 오열을 합니다. 라헬도 떠났고 그처럼 사랑하는 요셉도 떠났어요. 34절 말씀에 보니 야곱이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였다”(창37:34)고 했습니다.
그 다음절 35절에 보니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창37:5) 고 했습니다.
참 야곱의 인생이 기구합니다. 그러나 사실 슬픔은 바람과 같이 이렇게 우리 인생의 여정에 불어오고 또 불어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을 떠납니다. 내 능력으로 잡지를 못합니다.
참 슬픈 얘기지요. 한편 요셉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했던 요셉, 그처럼 사랑을 많이 받았던 요셉은 그 상황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 구덩이에 던져질 때 그는 어떠한 반응을 보였나요? 오늘 본문에는 요셉의 대응이 나타나 있지 않아요. 자신의 형들이 어거지로 그렇게 하는데 힘으로도 안돼요. 아버지는 곁에 없어요. 자신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던가? 뒤돌아 돌이켜 보아도 알 수가 없어요.
그 상황에서 요셉의 대응이 나중에 형들의 증언에 의해 밝혀집니다. 애굽에서 총리대신이 된 요셉을 만난 뒤에 놀란 마음으로 자기들끼리 나누는 대화에서 나타납니다. 창세기 42장 21절에 형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창42:21)
“요셉이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x2)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다. 그러니 이 괴로움이 이제 우리에게 임하였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분노로 인하여 감정이 부글 부글 끓어오를 때가 있습니다. 억울함이 있을 때 더 그러하겠지요. 그래도 감정에 못 이겨 악한 짓은 하지 마십시오. 심호흡을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맑은 정신으로 주께서 주시는 지혜로 행하십시오. 감정에 못이겨 저지른 악한 행위는 두고, 두고 후회스러워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이것이 요셉을 팔아넘긴 형들의 평생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 아니겠습니까?
우리 믿음의 사람이 분을 내다가도 악한 짓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손길을 믿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대신 갚아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의로운 자의 편에 서 계셔서 친히 개입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요셉, 그처럼 형들에게 애걸하며 우물에 갇히고 머나먼 나라에 노예로 팔려가고 과거의 행복한 날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인고의 날들이 그의 앞에 있었으나, 그가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살아 계심을...., 그 어렵고 곤고한 순간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그를 꼭 잡고 계심을 뒤늦게라도 깨닫는 거에요. 창세기 45장 4절 5절 말씀에 요셉의 고백이 이러합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45:4~5) 요셉은 비로소 자신과 가족과 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깊고 선하신 뜻을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의 배경이 이러합니다.
가나안 땅에 심한 기근이 왔습니다. 야곱과 요셉의 형제들은 도무지 살아남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안 요셉이 애굽의 왕을 도와 곡식을 비축합니다. 그러니 땅에 있는 요셉의 형들이 곡식을 얻으러 애굽에 내려온 거에요. 거지와 같은 모습으로 온 거에요. 이제는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자신을 판 그 형들의 초라한 모습을 보는 요셉이 말합니다.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이곳으로 보내셨나이다”(창45:5)
성도 여러분, 우리는 때로 “왜 이런 고난이 나에게 왔는가?”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선하게 살았는데 죄 짓지 않고 살았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때로는 놀라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가라앉아 잠 못 이루는 밤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 여전히 우리가 놓치 말아야 할 끈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 (x2) 암 그렇고 말고!
우리 믿음의 사람이 또 한 가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가슴에 하나님께서 심기어 주신 꿈! 여전히 가슴에 담고 저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요셉이 열일곱 살 때 그 꿈을 늘 가슴에 간직했었기에 인고의 날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 꿈이 이루어질 그 날을 고대하며 오늘도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승리해 나가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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