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창세기23:1-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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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5.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아내 사라를 먼저 보내고 나서
지난 2020년도에 시작된 코로나19 3년 동안, 저는 60여번의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상황에 따라 다른데, 제일 어려운 모습은 두 종류의 모습입니다. 하나는 예수 믿지 않고 떠나신 분의 유가족을 뵈올 때, 마음이 힘듭니다. 얼마나 전도하려고 했을까! 그런데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였으니, 유가족의 마음이나 제 마음도 같이 힘들지요. 그리고 두 번째는 갑작스럽게 떠나는 경우입니다. 예기치 않게 준비도 안 했는데 떠나고 나면 가족의 마음이 메어집니다.
우리교회 교우 중 한 집사님의 아버님이 감기증상이 있어서 스스로 걸어서 병원에 들어가셨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곳에서 코로나에 감염되셨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시고 병원에서 황망히도 세상 떠나셨습니다. 코로나 기간이니 병원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따라서 아버님의 임종도 보지 못하고, 장례식도 제대로 치루지 못한채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야 했어요. 저에게 그 아프고 슬픈 심정을 나누면서 집사님은 연실 눈물을 닦아내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여러분의 곁을 떠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읽은 성경 본문 말씀을 통해 배웁니다. 사랑하는 아내 사라를 먼저 떠나보내는 아브라함의 모습 속에서 보게 됩니다.
사라가 127세를 살았습니다. 이것이 사라의 향년이라고 했어요. 성경에 보면 남자의 경우는 그 별세의 나이를 기록하고 있지만, 반면에 여자의 경우는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라의 나이를 기록한 것을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못지않게, 믿음의 어머니로서 사라는 특별한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37세였고 이삭은 37세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비교하여 보면 아브라함이나 사라나 장수를 하였어요. 그런데 제가 장례식을 경험하면서 느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은 짧게 살아도 오래 살아도 다를 바가 없이 슬프고 아쉽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어요. 그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 하는 것 보다는, 얼마나 복된 인생을 살았는가? 얼마나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살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라의 나이 이십세에 아브라함을 만나 살았다면, 이 부부는 남편과 아내로써 100년이 넘도록 함께 산 것입니다. 많은 역경을 함께 경험했으며 크고 작은 기쁨도 함께 경험했어요. 그런데 그 사랑하는 아내 사라는 더는 아브라함 곁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슬픈 상황에 처한 아브라함의 태도를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영적 교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슬퍼하며 애통해 하였습니다.
23장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창23:2)
아브라함이 슬퍼하여 애통하였다고 했어요. 형식적인 슬픔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슬픔에 잠긴 유가족에게 위로 한다고 하여, “울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나 그 보다는 함께 울어주는 것이 더 바람직한 위로자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결코 눈물을 멀리하거나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에는 말씀하기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
예수님도 친구 나사로가 죽었을 때 우셨고, 사도바울의 영성의 모토는 “겸손과 눈물과 인내” 였습니다. 시편 56편 8절에 다윗은 이렇게 고백을 해요.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구약에서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왕하 20:1) 그때 히스기야 왕이 어떻게 했습니까? 벽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응답하셨어요.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왕하20:5)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죽지 않고 15년을 더 삽니다.
눈물이 메마른 사람은 감성이 죽은 사람입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의 마음은 늘 젖어 있게 하옵소서~! 메마르고 황량한 광야와 같은 먼지만 폴폴 날리는 빼빼 마른 마음이 아니라, 늘 젖은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그래서 서로 간의 아픔을 체휼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패악한 예루살렘성의 죄악을 바라보시며 멸망의 날을 내다보시고 통곡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문드러져 가는 이 세상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울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울어야 할 때 울어야 합니다. 특별히 가슴 아픈 일이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주님의 품에 안겨 우십시오. 주님만이 주시는 하늘의 위로가 임할 것입니다.
둘째, 슬픔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울었습니다. 애통을 하며 눈물을 흘렸어요. 그러나 마냥 슬퍼하고 애곡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23장 3절에 보니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아프지만 장례를 준비합니다. 매장할 땅을 구입합니다. 사라와의 이별이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자신도 이 땅에서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4절에 말씀합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는 누구나 다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저 본향 천국에 다다르기 까지는 어디에서나 나그네입니다. 사라를 먼저 보내는 아브라함의 마음에 이러한 진리가 깨달음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그렇다, 나도 나그네다! 누구나 가야 할 길을 나보다 사라가 먼저 간 거야! 그러나 저 하늘나라에서 사라를 다시 만나게 될거야~!”
셋째, 내게 남은 삶을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언젠가 우리도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떠난 후에 사람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사람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기억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나중에, 내가 죽을 때에 가서, 생각해 보겠다!”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나의 모습이 그때 가서 나의 모습일 경우가 99프로입니다. 이와 같은 세상 떠날 때의 모습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이와 같은 사람의 삶은 더욱 하나님 기뻐하시는 모습이 될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향한 헷 족속의 평판이 있습니다. 6절 말씀을 보시면,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창23:6)
그들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 부릅니다. 이 뜻은 “당신은 하나님의 권세를 부여받은 자”라는 뜻이 담겨 있어요. 왜 그렇게 존경하며 불렀을까요? 아브라함과 사라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었겠지요. 비록 나그네로 그 땅에 와서 살았으나, “아! 저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의 사람들이구나~!”
그러니 그 모습이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러기에 이 장례를 치루어야 하는 아브라함에게 호의를 베푸는 거에요.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사용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내일은 잘 할거야~!” “내일은 잘 살거야~!” 그러지 마시고 지금 오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 있는가? 성찰하시고 신앙인의 모습으로, 선하게 사시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시고, 이웃들로부터 존귀함을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지순례를 하게 되면 헤브론 지역에 아브라함과 사라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아브라함의 무덤에는 유태교도들도 찾아오고 이슬람교도들도 찾아오고, 기독교도인들도 찾아옵니다. 무신론자도 찾아옵니다. 이 땅에 나그네로 살아가는 동안,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을 남기고, 축복을 남기고 떠난 아브라함의 무덤을 향한 그 행렬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끝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살다 보니 그와 같은 복된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죽음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미리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가장 한 복판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왕으로 모시기를 바랍니다. 그 분의 인도하심과 뜻을 따르시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에 바로 저와 여러분의 삶이 그러한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여러분의 삶을 통하여 작게는 가정, 그리고 생업의 현장에서 이웃들과의 삶에서 존경함을 받아 빛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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