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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32] 용서하시고 베푸시는 은혜
운영자 2024-05-23 추천 1 댓글 0 조회 172
[성경본문] 창세기21:8-21 개역개정

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15.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16.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17.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21. 그가 바란 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용서하시고 베푸시는 은혜

 

아브라함이 100세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후손인 이삭을 얻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또 하나님의 그 전능하신 능력에 얼마나 놀랐을까요?

사라 또한 그 늦은 나이에 경수가 끊어진 지 오래인데 후손을 주시다니!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이 크게 성장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본문 8절에 보니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그랬어요. 큰 잔치를 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이웃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하갈을 통해 얻은 아들 이스마엘이 자신의 이복동생인 이삭을 못살게 구는 것입니다. 본문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21:9) 이 본문에서 표현된 놀리는지라 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에 보면 짜하크 라는 단어를 사용했은데, 그 뜻은 희롱하다, 조롱하다, 멸시하다, 비웃다, 라는 부정적인 뜻을 가지고 있어요.

 

이 이스마엘의 행동이 한편으로 이해도 되고, 또 한편으로 이해가 안됩니다. 이해가 된다 함은 그처럼 자신을 사랑했던 아버지 아브라함의 사랑이, 이삭의 출현으로 인해 줄어 들었다 는 생각 때문에, 즉 질투심으로 인하여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라는 것이고, 이해가 안된다 함은 이때 이스마엘의 나이는 이미 17, 그리고 젖을 뗀 이삭의 나이는 그저 세 살 어린 아기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리고 약한 아기일 뿐이에요. 나이 차이가 열 네살이나 되요. 그리고 아브라함의 성품상 자신의 핏줄인 이스마엘을 천대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마엘은 이삭을 멸시하고 조롱합니다.

 

그 결과는 매서웠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고 말아요. 그것은 사라의 요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라의 이 요청 때문에 아브라함은 심히 고민하였어요. 그래도 이스마엘은 자신의 핏줄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버립니까?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21:11)

 

저는 상상해 봅니다. 얼마나 아브라함이 후회했을까? 얼마나 회개했을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하여 후손을 줄 것이라고 분명히 약속하셨는데, 시간이 가면서 자녀가 없으니 초조해졌어요. 자신의 생식기능은 저하되고 있었어요. 사라는 경수가 그쳤습니다.

 

의심의 안개가 눈을 가리우기 시작했습니다. 믿음도 떨어졌어요. 그러니 사라가 자신의 여종 하갈을 데리고 와서, 아브라함에게 여종을 취하여 후손을 보라했을 때, 아브라함은 흔들렸습니다. 결국 믿음에서 떨어져서 사라의 말에 동조하고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얻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이 없는 믿음 없는 행위였어요. 그리고 그 결과로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이스마엘을 낳기 전부터, 배우지 못한 하갈의 교만으로 인해 사라와의 분쟁이 시작되었고 평화는 깨졌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낳고 나서도 이스마엘과 이삭 사이에 질투심으로 말미암아 가정에 분열의 싹이 트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에서 떨어져서 하나님의 뜻과 상관이 없이 행하는 일로 고난가운데 처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그럴 때 있어요.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사방팔방이 다 막힌 것 같고, 일은 진척이 안되고, 운신이 안 되고,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내 뜻을 앞세우고 일을 추진하다가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사방팔방이 다 막혀 있어도 하늘이 열려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시험에서 일어서야 합니다. 그래서 이 새벽에도 기도하는 거에요. 주여~! 갈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게 하소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게 하소서! 그 능력을 그 믿음과 힘을 내게도 주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십니까? 내가 잘못하여 불거진 일인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들어 응답해 주실까요? ! 들어주십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죄책감과 패배감을 씻어 주십니다. 그렇게 심령을 새롭게 하시므로 새역사를 시작하십니다. 한 음성으로 따라서 하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11:9)

 

아브라함의 고민이 깊어져 어찌할 바를 모를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그 무거운 짐을 거두어 가십니다. 12,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21:12~13) 우리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마음의 큰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때문이에요.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그 약속에 아브라함은 고심을 끊어내고, 사라가 원하는대로 이스마엘과 여종 하갈을 집에서 나가게 하기로 작정합니다.

 

가정에 벌어진 일이 해결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아침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서 떠나게 해요. 그리고 아브라함의 가정에 비로소 평강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영적 교훈이 무엇입니까?

믿음에서 떨어져서 인간의 술수로 행하는 행위에는 아픈 댓가가 따릅니다. 그래서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자에게도 하나님은 찾아오시고, 긍휼을 베푸십니다. 다시금 믿음으로 서게 하시며, 더 성숙하게 하시며, 주어진 사명을 감당케 하시며 인생여정을 걸어가게 하십니다. 참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한 가지 더 묵상하고 마치겠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을 합니다. 그 이유는 15절에 보니 가죽 부대에 담아갔던 물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었어요. 광야에서 물이 없다는 것은 죽음이에요. 정말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어요.

 

하갈이 아들을 떨기나무 아래 두었다고 했습니다. 뜨거운 태양 볕으로부터 피한 것입니다. 광야에 떨기나무 그 크기가 크지 않습니다. 겨우 한두 사람 가릴 수 있는 그늘 밖에 안되요. 자신은 햇볕에 있으면서 자식은 그 그늘에 두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모성애는 배운자나 배우지 못한 자나 다 마찬가지에요.

 

그가 하나님 앞에 살려달라고 눈물로 간청합니다. 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21:16)

 

본문에서 화살 한 바탕쯤 거리이란 말은 활을 쏘아 날아가는 거리인데 약 250미터의 거리를 말합니다. 그렇게 아들로부터 떨어져서 하갈이 하나님께 방성대곡을 한 것입니다. 죽어가는 아들을 차마 볼 수 없다 생각하여 아들로부터 떨어져서 주변에 물이 찾으려고 그렇게 걸어간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스마엘을 복주시고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전에도 약속하셨어요. 창세기 1610절의 말씀이지요.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16:10)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약속하셨어요. 여종의 아들도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그런데 이 약속을 믿지 못하는 하갈의 눈에는 이미 하나님께서 이 모녀를 위하여 마련해 놓은 샘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방성대곡을 하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그 때 주의 은혜가 임합니다.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21: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라고 했어요. 그러자 눈이 열려서 생존에 꼭 필요한 샘물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영안이 열려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불만으로 방성대곡을 하기 전에, 이미 주신 은혜와 복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총의 선물로 가득 차 있어요. 믿음의 눈이 열리면 보이는데, 믿음에서 떨어져서 보지도 못하고 사용도 하지 못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은총의 선물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에게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남편과 아내에게서 볼 수 있어야 하고, 여러분의 직장과 일터에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준비해 놓으신 복의 요소들이 있어요. 그러나 믿음이 없는 자의 눈에는 보이지가 않아요.

 

오늘 본문에도 말씀하고 있어요.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라고 말씀합니다. 주께서 보여주셔야 해요. 영안이 열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믿음의 눈을 뜨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에요. 그 샘물을 보는자, 결코 좌절도 절망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여~! 믿음의 눈이 떠지게 하셔서, 주의 은총을 보게 하시고, 하여 감사로 다시금 일어나 전진하게 하소서!” 기도하는 자마다 응답의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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