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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30] 진노 중에도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
운영자 2024-05-17 추천 1 댓글 0 조회 214
[성경본문] 창세기19:1-11 개역개정

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2.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3.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4.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6.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9.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10.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11.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진노 중에도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은 간청합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롯과 그의 가족 그리고 선량한 사람들은 살려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께서 어찌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한편 롯은 아브라함의 곁을 떠난 후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191절에 롯이 성문에 앉아 있다가 두 천사를 보고 맞이하게 됩니다. 성문 앞에 앉아 있으면 그 이유가 당연히 장사를 해야 할 당시의 모습이었으나 그런 모습은 아니었어요. 이는 나름 사회적으로 권세가 있는 성공한 자의 모습입니다. 9절에 보니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롯의 집에 머물게 된 이 두 천사를 보고, 성적으로 범하려고, 그 성의 못된 남색하는 자들이 몰려들었는데 롯에게 하는 말이 이러합니다. 199절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19:9)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누가 그렇다는 거에요? ~! 롯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나름 롯은 물이 많은 땅, 문명이 발전한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나그네의 모습으로 장막을 짓고 삶이 시작되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부와 권세를 얻었어요. 그 힘을 가지고 특별히 관직 쪽으로 삶의 가닥을 잡은 듯 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법관이 되려고 하는도다 그러나 그 말투의 모습이 전혀 존경과는 거리가 멉니다. 네가 감히 법관이 되려 하다니~!” 라는 경멸의 뉘앙스를 읽을 수 있어요. 롯은 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소돔 사람이 아니요, 여전히 타지방 사람으로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다니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배웠어요. 함께 단을 쌓고 여호와를 예배하였어요. 그러나 그는 언제고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자였습니다. 한 발은 세상에 두고 한 발은 하늘에 두었어요. 그러니 그 모습이 언제고 세상적 이익에 예민한 자였습니다.

 

도덕적으로도 건전하지 못했습니다. 죄악이 관영한 소돔과 고모라 성의 악한 무리들이 자신들의 성적 정욕을 채우고자 몰려들어 이 두 천사를 달라 하며 난리를 피울 때, 롯의 행위를 보십시오. 그들에게 자신의 두 딸을 내어 주려합니다.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19:8)

 

12절에 보니 이 두 딸은 이미 결혼하기로 한 예비 사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딸을 내놓을 수 있는 것입니까? 당시에 사회법은 정혼한 여자를 취하는 남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롯의 이 모습은 자신의 집에 들인 두 천사를 통해 얻을법한 어떠한 이익을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두 사람 대신 내 두 딸을 취하라이게 말이 됩니까? 재리에 눈이 어두워 도덕이 무시되고 인륜이 무너진 악한 죄악의 성 소돔과 고모라성에 롯은 재리에 눈이 어둔 한 죄인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롯은 가장으로서도 영적인 권위가 없게 되었어요. 소돔과 고모라 성이 곧 멸망할 것이라고 천사가 그에게 알려 주었어요. 어서 속히 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온 가족이 다 죽는다.” 롯은 이 소식을 사위들에게 전합니다. 이곳을 어서 떠나라 그런데 정작 이 급박한 소식을 들은 사위들이 장인어른의 말을 듣지 않아요. 믿지를 않아요. 14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19:14)

 

농담으로 여겼더라 고 했습니다. 사태의 심각함을 전혀 읽지 못합니다. 믿지를 못해요. 그 급박한 상황에서 장인어른의 말이 권위가 서지가 않아요. 가족관계의 비극입니다.

이 롯의 모습은 오늘날 이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은 세상 풍조에 눈이 어두워진, 물질만능주의와 성공주의 그리고 자신밖에 모르는 지독한 이기주의에 물든 소위, Nominal Christian, ,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 이름뿐인 기독교인들의 단편적인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 목적이 자신의 출세에요. 성공이요, 더 많은 물질, 더 높은 권세의 자리에 앉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은 구원받는 백성으로 삶과 성품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고 어두운 세상에 빛의 모습으로 소금의 모습으로 선한 일을 도모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습 하나님께서 보시고 기뻐하시고 이 땅에서 잘 되게 하시며 저 하늘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처럼 세상재리와 성공에 눈이 어두워진 롯은 임박한 멸망, 소돔과 고모라 성에 임한 멸망에 대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 미련이 많았어요. 지금까지 일구어온 재산과 권세를 버리고 떠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 가운데에서도 상대적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의 손길이에요. 15절에 보니 여전히 아침이 되어도 떠날 생각이 없는 롯을 깨웁니다. 15절에 말씀합니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19:15)

 

그런데 16절에 보니 여전히 미련이 많은 롯은 떠나는 것이 마음이 내키지 않아요. 그러므로 지체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절을 또 보겠습니다.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19:16)

 

강권적인 손길로 그들을 잡아서 이끌어 냅니다. 구원해 냅니다.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라고 지시합니다. 그런데 롯을 보십시오.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습니다. 멀리 갈 수 없어요. 그 급박한 상황에서 그의 소원을 보십시오.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19:20)

 

이 롯의 미련 많은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은혜를 베푸십니다. 21절과 22절 말씀입니다.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19:21~22)

 

하나님의 사랑이 놀라운 것은 죄인을 구하시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가능한 것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쏟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때문이에요. 그러기에 구원은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영적 교훈을 찾습니다. 구원은 이렇게 하나님이 전적인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 분명한데, 이 롯과 가족을 위한 아브라함의 간청, 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그 뒷배경에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2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19:29) 아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기억나십니까? 아브라함의 탄원, 중보의 기도, 주여, 어찌하여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에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셨어요.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내가 이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의인 열 사람이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결국 성을 멸망시킬 것을 작정하셨습니다. 다 죽는 거에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탄원을 기억하셨어요. 그래서 롯과 그의 가족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 우리는 기도합니다.

주여! 내가 이렇게 간구하오니 내 자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내 남편을 건져주시옵소서! 죄악에서 건져주시고 믿음으로 돌아서게 하옵소서!”

 

주여, 내가 이렇게 간구하오니 이 나라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죄악이 관영하였사오나 멸망에서 건져주옵소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가 간구하오니, 우리 교회가 간구하오니, 이 금천지역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잃어버린 영혼들이 멸망 당하지 않고 주의 은혜의 자리에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일에 나와 우리 교회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이 중보자의 마음으로 기도하며 나갈 때, 주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내 자신과 가정과 직장과 이 사회와 나라를 구하실 줄로 믿습니다. 영혼을 긍휼이 여기고 구원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를 위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는 모습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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