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창세기18:20-2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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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제공: 대한성서공회
의인 열사람 중에 한 사람 되게 하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가장 큰 범주에서는 “복 받기 위해 믿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또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에요. 이 두 말을 서로 연결하면 우리가 예수 믿는 이유는 “이 땅에서 복 많이 받고, 또 죽어서는 영생을 얻기 위함입니다.” 라고 말하겠지요. 보통 이 정도 선에서 신앙생활의 의미를 찾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좀 더 신앙이 깊어지면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서 대답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함입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예수님을 닮기 원합니다.” 그 말이지요. “예수님의 성품을 닮고, 예수님과 같이 사랑을 베풀며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들도 지옥가지 않고 천국 가도록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 믿게 하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당연히 이마만큼의 신앙인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셨다면 참 올바른 신앙생활의 목표를 갖고 계신 것이에요. 잘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아버지의 마음이요, 예수님의 마음이요, 성경에 나오는 모범적인 믿음의 조상들의 바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고 따르는 백성에게 기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데, 그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기를 원하세요. 우리가 얼마만큼이나 거룩하고 또 사랑이 많겠습니까 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할 때 또 그러기를 원하여 기도할 때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람의 능력보다 훨씬 더 크신 성령께서 친히 도우셔서 역사하셔서 주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로 이 하나님의 성품 중에 하나인 거룩하심이 나옵니다.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이시죠. 거룩을 추구하지 않고 죄를 사랑하여 죄에 빠진 소돔과 고모라 성, 그 시민들을 불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즉시로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이 모습은 오늘 우리로 말하면 하나님께 중보기도하는 것이에요.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의 안전과 안위를 비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보니 아브라함은 자신을 찾아온 하나님의 천사들과 하나님을 배웅하기 위해 따라 나섰는데요. 두 명의 천사는 먼저 가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시금 축복의 언약을 재확인하셨습니다. 그것이 17,18,19절 말씀이에요.
그런데 축복의 말씀을 마치신 후에 바로 소돔과 고모라 성의 죄악을 언급하시며 멸하시겠다고 하세요. 그 말을 듣는 아브라함이 깜짝 놀랍니다. 그의 마음에 드는 생각은 이것이에요. “정말 의인을 악인들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제일 먼저 누구를 생각했을까요? 네~! 그의 혈육인 롯과 그의 가족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네 부족의 연합군에게 잡혀갔었던 롯과 가족을 구해 올 때, 함께 구해왔던 죄 없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양민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쉽게 하나님 앞에서 발걸음을 집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지 마옵소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요. 이 모습이 본문 22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창18:22)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다” 고 했어요. 그리고 그 다음절에 보니 섰을 뿐만 아니라 “가까이 나아가...........”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창18:23)
긴 간청이 시작됩니다. “의인 오십인이 있어도 그 오십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그 중에 오인이 부족하다면 그래도 용서하지 않으시고 멸하시겠습니까? 사십인이 있으면, 또 삼십인을 찾으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이십인을 찾으시면 용서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의인 열사람이 있으면 심판을 그치시고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여러분! 아브라함이 왜 의인이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쓰시고자 하시겠습니까? 그의 마음이 넓어요. 사람을 사랑합니다. 용서를 구하는 긍휼의 마음이 있어요.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지요. 첫째, ‘나’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
둘,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 첫째 사람은 소인배일 뿐이요. 둘째 부류의 사람인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을 가리켜 사람들은 ‘리더’라고 부릅니다. 우리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정치인이 되고 한 단체의 장이 되고, 한 교회의 목사가 되면, 그 나라는 무너지고, 그 단체는 불쌍하고, 그 교회는 불행해 집니다.
초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신앙생활의 목적은 ‘나’로 시작하지만, 그러나 예수를 닮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신앙이 성장하고 깊어져 갈수록 ‘우리’를 생각합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 밖에 있는 ‘저들’, ‘그들’까지도 생각하여 중보기도하는 자가 됩니다. 바라옵기는 저와 여러분이 이와같은 모습으로 성숙해 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러한 의문이 일 수 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의인의 숫자를 더 내려가서 8명, 아니면 5명까지, 아니면 롯의 가족 숫자대로 4명까지 내려갔더라면 어떤 상황이 되었을까?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당시 이스라엘의 문화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0을 완전한 숫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한계선이었어요. 의인이 10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죄악이 관영한 세상으로 볼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아브라함은 최소한 열명은 넘겠거니 생각을 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 열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10에 대한 숫자를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갖습니다. 국민의 50%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면 그 나라는 반드시 잘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라가 얼마나 될까요?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인생이 얼마나 의로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완전 숫자 10, 회사의 직원이든, 단체의 회원이든, 한 나라의 국민이든 최소한의 10프로가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설 때, 그나마 단체나 사회나 나라의 명맥이 유지될 수 있지 않겠는가? 최소한의 10프로의 의인이 없으면 하나님의 불 심판은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 성경적 원리에 입각하여 우리 사회를 보겠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악한 사회를 그대로 두시고 심판하시지 않는가? 세상 쾌락에 눈이 어둡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자기밖에 모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한 이 사회를 심판하시지 않는가?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현 미국 사회의 죄악상을 보면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미국을 심판하시지 않으신다면 소돔과 고모라에게 사과하셔야 한다” 그 정도로 미국사회가 부패했다는 것이에요.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다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겠습니까?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심판하시지 않으십니까? 왜 북한이 쳐들어 내려오지 않고 그렇게 무기를 개발하고 핵폭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터트리지를 못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말합니다. 미국이 버티고 있다. 전쟁이 나면 중국이 북한을 도울 것이다. 그러면 세계 대전이 일어나니까. 그러면 북한도, 세상도 다 멸망될 것이기 때문에 전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저는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며 생각을 해요. “그래도 주께서 인정하시는 소수의 무리들이 있다. 남은 자들이 있다!” “의인 열사람이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의 간절한 질문에 “그래. 그렇다 의인 열사람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이 시대에, 수를 셀 수도 없이 많고 많은 죄악들로 취하여 휘청거리는 이 나라를 멸망으로부터 지탱하는 의인 열사람, “적어도 이 땅에 하나니님께서 계산하시는 최소한의 의인들이 있을 것이다!
의인은 무슨 의인이겠어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 소수의 성도들, 소수의 진실한 기독교인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깊은 잠에 들어 있어야 할 이 새벽에도 단잠을 줄여가며, 새벽기도회의 불을 밝히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소수의 남은 자들이 있다! 아멘입니까?
오늘 이 새벽시간에 우리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의 이웃교회들도 불을 밝히고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만여 조국교회가 거룩을 사모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이 땅과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남은자의 모습으로, 가족을 대표하여, 일터의 직원들을 대표하여, 교회를 대표하는 10프로가 되어, 그리고 이 민족을 위한 10프로의 의인들의 반열에 서서 기도하고 있으니, 내 가정이, 생업의 현장이, 우리 교회가, 조국 교회가, 이 사회가, 이 나라가 여전히 서 있음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심판을 유보하고 계심을 믿습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애국가를 부른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애국가는 찬송가에요.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그 어렵던 시대에, 나라를 잃고 개인과 조국의 내일이 보이지 않았던 그 암울한 시대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거룩을 추구하던, 한 믿음의 선배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간절한 소망을 담아 믿음으로 만방에 선포한 것입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오늘도 이 새벽을 깨고 일어나 불을 밝히고, 이 땅에 거룩을 추구하며, 말씀에 순종하기를 간구하는 남은자들이 있는한, 이 나라 이 땅, 이 민족, 하나님께서 보우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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