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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27] 믿음의 증표: 순종
운영자 2024-05-09 추천 1 댓글 0 조회 175
[성경본문] 창세기17:1-16 개역개정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믿음의 증표: 순종

 

아브람이 구십 구세가 되었습니다.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 출생한지 13년이 되는 해입니다. 후손에 대한 사래와 아브람의 믿음 없는 행위로 인하여 하갈이 임신을 하였고 이 일로 인해 사래와 하갈 사이에 불화가 생겼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중재하시므로 회복이 된 것을 어제 함께 묵상했었습니다.

 

광야로 도망치는 하갈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여호와 로이 즉 살피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하갈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사래에게는 나타나지 않으셨어요. 그러한 날이 13년이 흐른 것이에요. 아브람과 사래가 신앙적으로 믿음이 연약해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임의로 행했을 때,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의 방학이 길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영적으로 둔감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둔감해지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보통 우리 삶에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언제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을 때 일어납니다.

 

13년이 흐른 뒤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처음 말씀이 그것입니다. 제대로 신앙 안에 서 있어라!” 말씀하세요.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내 앞에서 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사람 앞에서가 아닙니다. 사래 앞에서가 아닙니다. 아내인 사래의 말을 듣고 하갈을 취한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옳은 모습은 아니었어요. 내 앞에서 라틴어로 Coram Deo, 하나님 앞에서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행하여 완전하라 라고 하셨는데 말씀은 전혀 죄 없는 완벽한 상태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에요. 사람으로서 죄인 아닌 모습은 없습니다. 누구나 다 실수하고 죄를 범할 수 있어요. 여기에서 완전하라 라고 하시는 말씀은 전심으로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자의 모습이 아니라, 한 마음, 전심으로, 중심으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지고, 여호와를 생각하고, 의지하고, 그의 뜻을 구하고,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어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주셨던 언약을 다시금 재확인시키십니다. 후손에 대한 약속이에요.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17:2) 4절 말씀을 또 읽겠습니다.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17:4)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주실 때에 사용하시는 말씀의 주어는 언제고 내가 내가입니다. 17장에 12번이나 내가 행하리라가 나옵니다. 내가 복을 주겠다 내가 네 후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장래를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장래의 계획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정말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해요. 선교사들이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이른바 선교사 주제가에요. 저도 선교지에서 하루, 하루의 일과가 내가 뜻하지 않은 곳으로 흘러갈 때, 얼마나 많이 불렀는지 몰라요.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험한 이길 가고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주님 예수 팔 내미사 내 손 잡아 주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

 

그러나 주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그래야 믿음으로 붙잡고 또 일어나 걸어가겠지요. 바로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을 깊이 깨달아가며 묵상하고 또한 중심으로 기도할 때,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도 주께서 알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무엇을 한다? 순종입니다. 주님의 뜻을 따라 가는 거에요. 본문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17:9) 지키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자비롭고 세심한 분이신지 이 믿음에 자꾸 넘어지는 아브람과 사래의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하시기 위해 두 가지 일을 하시는데요. 첫째는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바꾸십니다. 그리고 둘째는 증표를 만드십니다.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그리고 사래의 이름은 사라로 바꾸세요. 본래 이름인 아브람의 뜻은 존귀한 아버지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아브라함은 많은 무리의 아버지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래는 나의 주인 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사라는 열국의 어머니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름은 큰 의미를 두었습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아기 때에 지어주는 이름은 그 이름 속에 그 아이의 장래의 소망이 담겨져 있어요. 그 이름이 다른 사람에게 불릴 때마다 나는 그런 사람이야, 나는 그런 사람이 되는거야!” 그래서 예수는 구원자 라는 뜻이 있고, 노아라는 이름은 안식, 또는 평안의 뜻이 있고, 요셉이라는 이름은 그가 더하실 것이라는 뜻이 있고 마리아는 고귀함,’ 나오미는 기쁨, 희락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고 이름을 바꾸신 것은 말씀드린 대로, 이제는 더 이상 믿음에서 흔들리지 말아라!” 라는 뜻이에요. 이름이 불릴 적 마다. 그래, 나는 많은 민족의 아버지야!” “그래 나는 열국의 어머니야!” 그러니 반드시 후손이 있을거야!” 믿음을 더 강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름을 바꾸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제자의 이름을 바꿔주셨어요. 어부 출신의 성격이 급한 베드로, 믿음은 좋지만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행했던 베드로! 그의 어부 시절의 본래 이름은 시몬 이었습니다. 그 뜻이 갈대라는 뜻이에요.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 저리 흔들리는 갈대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이름을 게바라고 바꿔주셨어요. 헬라어식 표기로는 페트로스 에요. 바위 또는 돌덩이 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바위는 페트라 이고 베드로의 이름인 페트로스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바위라는 뜻입니다. 무슨 뜻인가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반석 이시오, 베드로는 반석에서 떼어져 나온 바위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바람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시몬이 아니라, 이제는 든든하여,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바위와 같은, 단단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라! 그런 뜻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도 원하시면 기도하시면서 여러분의 성경적 이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는 마리아야, 고귀한 사람이 될 거야!” “나는 나오미야. 기쁨으로 살아가야지!”

 

두 번째는 약속의 증표로 할례를 하게 하셨습니다. 11,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17:11~12)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르라함에게 명하신 제도로, 그 의미가 있으니, 하나님의 백성의 표요,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징표입니다. 그 지울 수 없는 신체에 새겨진 표를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민의식을 가졌어요.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려고 많이 힘썼습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할례가 요구되었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해야 했어요. 그런데 사도행전 15장에서 예루살렘 총회를 통해 결의하기를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우리가 예수 믿을 때에 굳이 할례 받지 않아요. 대신 하나님의 자녀의 표로써 세례를 받게 된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출발 점이 됩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 세례 받던 날의 감격과 기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수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바다에서 세례를 줍니다. 파도가 치는 가운데 물속에 들어갑니다. 해변에서는 교우들이 찬송을 부릅니다. 완전히 물속에 푹 잠깁니다. 과거의 나는 죽고 새 생명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네팔에서는 산속 은밀한 곳에서 정부나 세인들의 눈에 들키지 않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고발하면 세례를 베푼 자나 받는 자나 잡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 안전문제 때문에 네팔에서 제가 처음 베푼 세례는 저의 집 목욕탕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서 두 명의 형제에게 세례를 베풀었어요. 중요한 것은 그 뜻이요, 의미를 가슴에 새기는 것입니다. 할례나 세례나 하나님의 자녀로 새 생명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천국시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잠시 살아가는 이 땅에서 이 확신을 가지시고 흔들리지 마시고 믿음으로 굳건히 서셔서 주께서 예비하신 언약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복된 삶으로, 승리하는 삶으로 살아가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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