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돌새벽강단

  • 예배와 말씀 >
  • 산돌새벽강단
[창세기 강해 26] 잘못해도 고치시고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
운영자 2024-05-08 추천 1 댓글 0 조회 192
[성경본문] 창세기16:6-16 개역개정

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8.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14.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잘못해도 고치시고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

 

우리가 이 땅에서 성도의 삶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것입니다. 작은 삶의 목표를 추구함에도 그렇고, 인생 전체의 목적을 이루어감에도 그렇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하겠지요?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채, 내 임의대로 행하고 내 뜻대로 행하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되면 일이 어그러지기도 하고 걷잡을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이르기도 합니다. 시행착오라는 말을 사용해요. 연약한 인간은 그때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 이게 아니었구나! 어쩐다! 이제 어떻게 하지? 해결방법이 뭐지?” 그때야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은총을 간구합니다. 주님이시여, 저의 무지와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해결해 주시옵소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주옵소서!”

 

오늘 본문의 아브람과 사래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어요. 후손은 반드시 아브람과 사래 사이에 출생할 아들을 통해서 자손과 민족의 뜻을 이루실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어요. 그런데 이를 믿지 못한 사래의 생각, 162절의 말씀이지요.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16:2)

그랬더니 남편 된 아브람도 믿음 없는 모습으로 사래의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부터 분란이 시작되었어요. 평안하던 집안에 예기치 않은 불화가 시작되었어요. 하갈이 임신하므로 교만하여졌고, 무식하고 거친 성격의 여종 하갈은 분수를 모르고 자신의 주인인 사래를 멸시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아브람의 처신이 쉽지 않습니다. 여종인 하갈의 편에 설 수 없었고, 해서 아내인 사래의 편에 서니 상황은 더 어렵게 되었어요.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어요. 견디다 못한 하갈이 도망쳤습니다.

 

하갈에게 무슨 죄가 있습니까? , 있지요.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여주인을 멸시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 시작은 믿음 없이 행한 사래와 아브람 때문이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당면한 상황의 종착역이에요. 진퇴양난입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이 상황에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습니까? 만일에 여러분이 아브람이라면 어찌하시겠어요? 아니, 얼마나 학대했기에 임신한 하갈이 광야로 도망을 가게 만들어? 당장 데려와!”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사래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기가 잘 못 했으니까 그렇지~, 나는 그렇게까지 집 떠날 줄은 몰랐어요. 그러니 어쩌란 말이에요?” 속으로 생각하겠지요. 데려와도 문제야, 또 도망치면 어쩌려고....”

 

여러분이 하갈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도 몰라, 도대체 내 인생이 왜 이래, 이 광야에서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돌아갈 수도 없고 나는 광야에서 죽을 지도 몰라!”

 

어떻게 하라는 거에요? 자업자득이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라고 이런 상황 안 만납니까? 하나님의 뜻을 모르니, 영적 분별력이 없으니, 설혹 알아도 내 뜻이 더 앞서니, 그 결과로 당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 상황을 바라보고 계신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얽히고설킨 그 상황을 보고 계신 우리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개입하십니다. 이는 그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에요. 실수하고, 잘못하고, 믿음 없이 자신의 뜻대로 행하여, 문제에 봉착 했을 때,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고생해라. 망해도 모른다가 아니라 이 상황을 외면치 아니하시고, 개입하셔서 돌이키게 하십니다. 회개하게 하세요. 다시금 바른길로 가도록 상황을 수습하십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은혜를 체험한 하갈은 그 하나님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이라고 그 이름을 부릅니다. 1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16:13)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이는 히브리어로 엘 로이 그 뜻은 나를 살펴보시는 하나님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언제고 우리를 살펴보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잘못하여 그르친 실수의 현장에서도, 그래서 일어난 고난의 현장에서도, 우리 주님은 바라보고 계세요. 중요한 것은 그러기에 우리는 빨리 주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주여, 이 상황, 나의 실수로, 내 맘대로, 믿음 없는 행위로 하여 일이 터졌으니, 용서하여 주옵시고, 회복되도록 이 상황 속에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저도 선교사고 목사지만 젊은 시절에는 감정 조절 안 되고, 깊이 기도하고 행하지 않아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큰 계획이나 큰일은 아니었지만 소소한 일로 그런 경험들이 있어요.

 

사춘기를 지나는 제 딸 해나가 아침밥상에서 끝까지 대들고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들었을 때에 제가 감정 조절이 안되어 손찌검을 했습니다. 그 아이 태어나서 처음이지요. 이미 일은 벌어졌고 아이는 충격을 받았고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친구 집에서 지내면서 집에 안들어오는 거에요. 후회했지요. 엎질러진 물이지요. 주님,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기도하며 회개했지요. 그런데 보니 제가 없을 때에 집에 왔다가 책이나 공부할 것 가지고 다시 가는 거에요. 그래서 진심어린 장문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잠겨진 그 아이의 문 아래 틈으로 그 편지를 넣어두었어요. 사랑하는 딸, 해나야 아빠가 잘 못했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나중에 그 편지를 보고 다시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사춘기에는 호르몬 분비가 정상이 아니지요. 판단력이 정상이 아닐 때가 많거든요. 불안정한 시기에요. 그런데 그 모습을 액면 그대로 받아드리면 부모 입장에서는 열불 나는 거지요. 이해하면서도 순간의 감정 조절이 안되면 그런 일이 벌어져요.

 

소소한 일로, 때로 큰일로 수습하기가 어려운 일이 터졌을 때 여호와 로이 나를 보고 계신 하나님, 나를 감찰하고 계신 하나님이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하고 은총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해결해 가십니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위기에 빠진 하갈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다시 여주인 사래에게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서 그 수하에 있어 복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위로와 축복을 함께 하십니다.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16:11) 네 고통을 내가 들었느니라” “네 고통을 내가 들었느니라 광야에서 갈 길 몰라 헤매이는 하갈에게 이 얼마나 큰 위로의 말씀입니까?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 혹 어려움과 고난 속에 계신 성도가 있으면, 이 위로의 말씀이 그 심령에 울려 퍼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네 고통을 내가 들었느니라

 

그래서 어떠한 약속을 주십니까? 1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16:12)

 

자손의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말씀에 보니 이스마엘은 전쟁하는 모습으로 살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아시는대로 이스마엘은 아랍족속의 조상이 됩니다. 그 민족이 한때에는 북아프리카와 남유럽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까지 세력을 펼쳤습니다. 엄청난 민족과 세력을 이루었습니다. 이 와중에 이미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었던 예루살렘 성지를 다시금 탈환하고자 하는 서구의 십자군과 전쟁을 하게 되므로 아랍민족과 서구세계 사이에는 그 골이 깊어 졌습니다. 우리 교회가 행하는 이집트 선교는 하갈을 긍휼히 여기셨던 아버지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하갈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또한 민족의 약속을 받고 다시금 사래의 종으로 돌아갑니다. 그 거친 성품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의 인격까지도 바꾸시는 하나님이심을 보게 됩니다.

 

그때로부터 하갈이 술 길, 샘물 곁에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던 그 샘물의 이름을 브헬라헤로이 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지금도 이 샘물이 있습니다. '브엘라해로이'는 히브리어의 문자적 의미는 '나를 보내신 자의 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하갈의 신앙고백과도 같은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매사에 그의 뜻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뜻대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설혹 그러지 못하여 어려운 상황가운데 있더라고 잘못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서 나가가 용서를 구하는 자, 주께서 회복시키고 일을 정리해나가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회복의 역사가 다시금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일어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창세기 강해 27] 믿음의 증표: 순종 운영자 2024.05.09 1 175
다음글 [창세기 강해 25] 믿음 성장의 과정 운영자 2024.05.07 1 191

08610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75길 20 (시흥동, 산돌중앙교회) TEL : 02-803-1135 | FAX : 02-893-6737

Copyright © 산돌중앙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0
  • Total243,060
  • rss
  • facebook
  • 모바일웹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