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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25] 믿음 성장의 과정
운영자 2024-05-07 추천 1 댓글 0 조회 192
[성경본문] 창세기16:1-6 개역개정

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 지 십 년 후였더라

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믿음 성장의 과정

 

옛 속담에 군자는 대로 행 이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이란 격언의 뜻은 군자는 큰길을 택해서 간다는 뜻으로, 군자는 숨어서 일을 도모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고 옳고 바르게 행동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군자(君子)는 유교에서 성품이 어질고 학식이 높은 지성인을 일컫는 말입니다. 논어(論語) 이인편(里仁)에서 군자는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잘 알고, 소인은 어떤 것이 이익인지 잘 안다. 군자는 어찌하면 훌륭한 덕을 갖출까 생각하고, 소인은 어찌하면 편히 살 것인가 생각한다는 말로 군자를 정의하였습니다.

 

오늘 이 군자대로행을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해석하자면, 군자는 곧 성도를 말함인데, 그는 지름길을 택하지 않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 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조급하거나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16장에서 불행하게도 믿음으로 인내하며 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못하고 소위 서양말로는 Short Cut, 대로가 아닌 지름길을 통해 일을 신속히 이루고자 하는 인내 없는 인간의 모습을 대합니다. 그 근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약속의 땅에 온지는 10년이 지났고 그의 나이는 85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사라에게 후손을 약속하셨지만 정확히 언제 주시겠다는 말씀을 주지 않으셨어요. 그러니 이 기간은 인내와 기다림의 기간이요, 강한 믿음을 요구하는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기다리기를 싫어합니다. 요즈음 현대사회는 더욱 그렇지요. 기다리는게 뭡니까? 바로 되어야 합니다. 즉각, 즉각 이루어져야 합니다. 특히 우리 한국 사람은 빨리 빨리에 익숙해져 있어요. 그래서 외국 노무자들이 한국에 와서 제일 빨리 배우는 말이 뭔지 아십니까? , 빨리 빨리입니다. 네팔에서도 한국에서 일하고 온 네팔사람이 제가 한국 사람임을 알면 저에게 빨리 빨리 라고 말합니다.

 

빨리 빨리 한다고 해서 우리의 행복지수가 높아지는가 하면 그렇지 못합니다. 인내심은 더욱 사라졌고, 조급한 마음에 졸속으로 일처리를 할 때가 많습니다.

 

성경은 정확히 지적합니다.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6:12)

 

세월이 갑니다. 10년이 흘렀어요. 그러자 후손에 대한 사래의 믿음 없는 모습이 서운함과 불만으로 표출됩니다. 2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16:2)

감정이 들어나요. 나는 아닌가봐! 하나님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셔! 그러니 여종을 통해 자녀를 주시려나봐!”

 

그러니 마음에 없지만 아브람에게 하갈과 동침하라고 해요. 그래서 여종이 임신을 합니다. 이 애굽 여인이 애기를 가졌다고 교만해져요. 여주인 사래를 우습게 여깁니다. 멸시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어요. 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아브람이 하갈과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16:4) 그러니 평화롭던 집안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아브람과 사래의 관계가 좋을 리가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누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사래 때문에 믿음 좋은 아브람이 믿음에서 떨어졌다!” “그러니 아내의 말을 들으면 안돼!” 이런 극단적인 생각 할 수 있겠지요.

아니~, 에덴동산에서는 하와가 그러더니, 이제는 사래가 그러네! 또 드릴라가 삼손을 또 그렇게 했쟎여~! 좌우지간 여자는 다 그래!”

 

또 한편으로 여자 편에서는 아브람이 믿음도 없지, 그렇다고 지 부인 놔두고, 믿음도 없이 애굽 여인 하갈을 덥썩 안냐? 좌우지간 남자는 다 그래~!” ㅎㅎ~!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일방적으로 여자는 다 그렇고, 남자는 다 그래~!”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믿음이고 개인의 신앙에 따라 다 달라요.

 

서양 속담에 사람마다 지옥에 내려가는 사닥다리가 각각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약점이 있다는 거에요. 보세요. 노아는 술에, 에서는 식욕에, 아간은 물질에, 삼손은 정욕에 약점이 있었습니다. 각각의 연약한 부분이 있어요. 그러니 우리 모두 자신에게 어떤 면의 약점이 있는가? 그것을 살펴서 유혹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고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래의 입장에서 말씀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래는 경수가 그쳤어요. 신체적으로 임신이 불가능합니다. 본인이 잘 알아요. 그래서 후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어요. 그러니 생각하기를

~! 내가 아니었구나~!” 얼마나 슬프겠어요. 얼마나 허전하겠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애굽 여인 하갈, 자신의 몸종을 싫어도 아브람에게 붙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보면 이 모습을 남편을 위한 것이기도 했어요. 그 방법이 후손을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 지는 방법이라 여겼어요. 인간 편에서 보면 상식에 맞는 생각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아니었어요.

 

아내인 사래는 생각할 수 있는 거에요. 남편인 아브람의 생식 기능마저 끝이 나기 전에 빨리 조처를 취해야 한다.”

 

기네스 북에 의하면 여자는 78세에 아기를 임신하여 출산한 경우가 있고, 중국 여자인데요, 남자의 경우는 96세의 인도남자가 아기 아빠가 되었습니다만...., 사래는 그런 마음이 있었을런지 모릅니다. 더 이상 늦으면 안돼!

 

당시 풍습이 후손이 없으면 첩을 통해 아기를 갖는 것은 예사스러운 일이었어요. 그러기에 아브람도 아내의 의견을 큰 어려움 없이 받아 드렸던 것입니다. 결국 둘 다 아브람도 사래도 인간적으로는 맞아요.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믿음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렇치 않으셨어요. 아브람과 사래에게 주실 이 아기는 단순한 한 아기가 아니었어요. 아브람과 사래에게는 한 후손이나, 하나님께서는 그 후손의 혈통을 통하여 장차 인류를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까지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어요. 그러면 왜 그렇게 늦도록 기다리게 하셨을까요?

이 기다림을 통해 믿음의 시험을 또 치루게 하신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이 구원자가 되시고 삶에 주인이 되심을 보게 하시려고 그러셨습니다.

 

보세요. 하나님의 뜻은, 사래의 경수가 그치고, 아브람도 생식 기능이 사라져 정말 기적이 아니고서는, 정말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고서는, 그러므로 내 능력으로 후손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셔서, 기적으로 주신 아기임을 확실히 알아,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로부터 14년 후인 아브람 나이 99세에 사래가 드디어 임신을 합니다. 양쪽 다 기네스 북에 올라가야 할 사건이에요.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총으로 후손을 갖게 된 것입니다. 내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 선포하게 하신 것이에요. 이것이 믿음의 성장 원리입니다.

 

같은 맥락의 사건이 신약성경에 나타납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기 위하여 노를 젖습니다. 바람이 강하게 붑니다. 저녁에 출발한 배가 한 밤중이 되고 밤 사경이 되도록 그 바다를 건너가지를 못해요. 요한복음에 보면 출발을 하고 몇시간이 지났어도 십여리 밖에 못갔어요.

 

그때 예수님은 알고 계셨어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산 위에서 기도하고 계시며, 제자들이 괴로이 노 젖는 모습을 보고 계셨어요. 그런데 왜 그처럼 제자들이 힘겹게 노를 저으며 풍랑과 싸우고 있을 때에 곧 바로 구하러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사랑하신다 하면서 왜 바로 오시지 않으셨나요?

 

평생을 바다에서 살며 어부로 살던 제자들입니다. 바다에서는 누구보다 능숙한 저들이었어요. 그런데 그 상황에서 두 손을 듭니다. 안돼~! 내 능력으로 할 수 없어. 앞으로 나갈 수가 없어~!” 그때 비로소 예수께서 나타나십니다. 잔잔하라!” 명하시니 그 성난 바람이 잔잔해졌습니다.

 

나의 능력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고, 그러므로 나의 교만이 다 꺽여지고,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안돼! 내 능력으로는 안돼! 주님이여 도와 주세요~!” 자복하고 주님만을 찾고 의지할 때에 살아계신 주님의 손길이 임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리고나서야 그 연약한 믿음의 사람이, 비로소 진짜 믿음의 사람으로 일어서게 됩니다. 그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나갑니다. 우리 주님은 살아계셔~!” 이게 믿음의 원리입니다.

 

한음성으로 따라서 하십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

이 새벽에도 우리는 기도합니다. 주여 나는 죽고 예수로 살게 하옵소서!

 

이 강한 믿음의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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