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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강해 11] 사랑은 복음전파의 통로
운영자 2023-08-30 추천 2 댓글 0 조회 343
[성경본문] 고린도후서6:1-13 개역개정

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3.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1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사랑은 복음전파의 통로

 

진리를 증거 하기 위하여 사도 된 바울은 어느 사람에게도 자신의 지위를 내세우지 아니했습니다. 사도라고 하는 직분이 당시 초대교회에 최고 지도자의 위치였으나, 스스로 낮아지고 겸손하기로 했어요. 왜냐하면, 복음은 위에서 아래로, 강압적으로 전한다고 전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진리는 완력으로 주지시킨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완력으로 자신들의 종교를 전파하고 개종시키려는 종교집단이나 단체가 있을까요? , 과거에 그런 모습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이슬람교의 무슬림 교도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할 때 비이슬람교도들을 향해, 칼이냐 꾸란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했습니다. 꾸란은 이슬람의 경전이에요, 칼은 죽음이에요. 그러므로 죽기 싫으면 이슬람종교를 택하라고 위협했던 것입니다.

 

이슬람의 칼의 구절이라고 하는 꾸란 95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금지된 달이 지나면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위할 것이며 그들에 대비하여 복병하라.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예배를 드리며 이슬람세를 낼 때는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 주리니 실로 알라는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

 

또한 꾸란 2123절에는 무슬림 들이여! 너희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알 수 있도록 가까이 있는 불신자들과 싸우라. 알라께서는 경건한 자들과 함께 계시느니라.” 그러니 이슬람 지도부는 무함마드가 죽고 나자 그의 친구였던 아부 바크르(Abu Bakr)를 서둘러 후계자로 승인했는데 그는 권력을 잡은 후 3개월 동안, 이슬람 신앙을 버리려고 했던 사람들을 찾아내서 무려 8만 명을 죽였습니다.

 

일본의 신사참배제도가 또 그러했습니다. 여러분 들으신 대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한국을 황국시민으로 만든다하여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신사참배는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의 하나로 식민지 국민에게 강요한 것이었습니다.

 

신사는 일본의 민간종교인 신도(神道, Shintoism)의 사원으로, 일본 왕실의 조상신이나 국가 공로자를 모셔놓은 사당입니다. 일본제국은 합방 후에, 서울에 조선 신궁을 세우는 한편, 각 지방에 신사를 세웠습니다. 조선인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한 것은, 1935년경부터인데, 우선 학교 학생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습니다.

 

기독교계 학교에서는 이를 거부하다가 평양 신학교, 숭실학교, 숭의학교 등이 폐교되었고, 그러한 가운데 학생, 선교사, 목사들의 반대 운동은 계속되었으며, 주기철 목사님과 같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다가 투옥되어 순교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교회의 권위를, 목사의 권위를, 선교사의 권위를, 내 세울 수 있을까요? 진리의 말씀을 들어라. 그리고 돌아서라~! 만일 개종 안하면 화가 임할 것이다.” 어림도 없지요. 그렇게 해서 복음이 전해진다면 그것은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가짜로 믿는 것이요, 그 순간만 믿는 척하는 것 뿐입니다.

특별히 닫힌 지역에서 선교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은 자신의 선교사 신분도 감춰야 하는 상황인데, 또한 다른 사람을 개종시키다가 고발당하면 감옥행이요, 2주 안에 추방입니다. 그런데, 어떤 권력으로, 힘으로, 무력으로, 예수를 믿게 한다?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권위가 필요하겠습니까?

 

, 사랑의 권위가 있을 뿐입니다. 그저 섬김의 권위로, 그리고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면 기도할 때에 병 고침의 권위로,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악한 영, 사탄, 마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과 권세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의 본문이 기록된 초대교회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보면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또한 고린도 교회의 설립자의 권위를 가지고,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 안에 파벌을 형성한 자들을 지적하고 책망하고 꾸짖고, 내치고 해서, 교회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해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교회가 평정을 유지할 것 같기도 한데, 그러나 변수가 있습니다. 그 교회 안에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그 교회를 떠나겠지요. 그렇게 되면 그들은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는 상황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심사숙고하던 바울은, 그 권위적인 모습을 택하지 아니했습니다. 어찌 하든지 그들이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고, 분열이 아니라, 믿음 안에, 온 교우가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었어요. 3절과 4절 말씀을 다시금 읽겠습니다.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고후6:3~4) 이 말씀이 어떤 뜻인가 하면,

 

우리가 이 직분이(사도직/전도자의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복음전하는 일을 잘 감당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생각이 다른 자들에게 억지로 하게 하지 않게하기 위하여)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스스로가 하나님의 종의 모습을 갖기 위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참고 또 참고)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그 수 많은 고난과 수고를 감당해야 했다) 그러한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은 사랑으로 전해집니다. 복음은 끝까지 참는 인내와 섬김으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복음 전하는 자는 이 일이 결코 쉽지 않아요. 우리가 온전히 성령의 충만함 없이 전도하려고 하면, 너무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사도바울이 왜 존경스럽습니까? 사랑 많은 모습을 보면서 이 모습이 진정한 주의 종의 자세요, 또한 복음 전하는 자의 모습으로 일관했기 때문이에요. 바로 예수님을 닮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였습니다. 당시에 최고의 신분입니다. 함부로 처벌할 수가 없었습니다. 로마의 법정을 원하면 그리로 보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사도바울은 그 권한을 사용하지 않았어요. 감옥에 잡혀 들어가고 태장으로 매를 맞으면서도 자신의 그 로마 시민권의 신분을 드러내지 아니했습니다.

 

나중에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밝히게 된 것은, 자신을 벌한 저들을 꾸짖고 당황스럽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오직 로마로 가기 위하여, 그곳에서 재판을 받고자 했던 이유는 그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나는 로마 시민권자다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 로마로 후송됩니다. 로마 시민권자로 안위를 구하고 권력을 휘두르고 목적을 이루려고 했던 것이 결코 아니었어요.

 

시대적 인물 중에 1804년부터 1815년까지 프랑스제국의 황제로 유럽과 이집트를 평정했던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란 인물이 있었습니다. 한 일개 병사에서 황제가 되기까지는 수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이루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는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로 패장이 되고, St. 헬레나 섬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6년 만에 생을 마감합니다. 그가 그곳에서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하면서 남긴 말이 있어요. 나는 칼로서 세상을 다 정복하지 못하였지만, 예수는 사랑으로 온 세상을 정복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사도바울은 예수께서 보여주셨던 모습으로 일관합니다. 같은 모습으로 고린도 교회 안에 분파를 일삼은 자들을 대합니다. 강요도 아니요, 권한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가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했던 방법은 뭔지 아십니까? 그것은 감화였습니다. 영적감화, 영적감화는 깊은 사랑에서 나옵니다. 사랑의 수고에서 나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방법이었어요. 자신을 죄인으로 누명 씌어 십자가에 못 박는 바리새인과 로마군에 대하여 분노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멸하시지 않으시고,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니이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사랑으로 전해지고, 진리도 사랑으로 증거됩니다.

 

이 모습이 세상과 교회의 차이점이에요. 세상은, 정부는, 국가는 조직과 권력을 통해 일을 성사시켜 나갑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권력이 아니고 사랑입니다. 특히 주의 종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인격과 성품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이 성품이 좋았던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한때 교회를 잔멸하고자 각 집에 들어가 예수를 믿는 남녀를 잡아다가 옥에 넘기던 자였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현장에서 잘하는 일이라 하여 증인으로 서 있던 자였습니다. 마게도냐에 숨어든 기독교인들을 모조리 잡아 가둔다고 살기가 등등하여 쫓아갔던 자였어요. 그러던 그가 예수를 만나고 변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요?

 

어찌하든지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그는 고난을 참아냈습니다. 오늘 말씀의 간증이 그것입니다. 5절에서 7절을 읽겠습니다.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고후6:5~7) 이러한 고난 가운데에서도 그는 전도자의 위상을 결코 잃치 아니했습니다. 8절부터 10절까지의 모습도 마찬가지에요. 천천히 읽겠습니다.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8~10)

 

어떻게 이게 가능합니까? 어떻게 이 능력이 나오는 겁니까? ‘성령의 감화로 이루어집니다. 6절 말씀이지요. 성령의 감화로 이루어집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가능합니다. 성품이 변합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자 가 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인내합니다. 그렇다고 일이 해결이 안된다고 낙심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6:9)

 

그래서 이 믿음 가지고 이 새벽에도 우리가 기도합니다. 주여, 나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시고, 주여 나의 성품이 주님을 닮아가게 하시고, 주여, 내가 겪는 모든 환란과 고난 속에서도 평강을 잃치 않게 하시고, 내가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는 자로 세워주소서!”

 

우리의 성품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영적인 감화력이 복음 전도의 능력이 됩니다. 이 모습으로 오늘도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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