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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강해 08]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가라
운영자 2023-08-17 추천 2 댓글 0 조회 351
[성경본문] 고린도후서5:1-10 개역개정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가라

 

지난 시간에 우리는 질그릇에 담긴 보배에 대해서 묵상하였습니다. 질그릇은 연약하여 깨어질 우리의 육신을 말하는 것이요, 보배란 곧 십자가의 복음이요, 복음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을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곧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에게 주어진 이 구원이 먼저는 우리의 속사람과 함께 역사합니다. 이 속사람은 곧 여러분의 영혼입니다.

 

사단의 권세에 얽매임을 받아 사망의 쏘는 것을 이기지 못해 죽을 죄인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영원히 지옥의 불못에서 고통당할 존재가 건짐을 받는 것이에요. 이 구원의 역사는 죽을 존재가 새 생명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먼저는 속사람으로부터, 즉 영혼이 새 생명으로 살아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새생명으로 시작된 영혼은 우리의 육신도 새롭게 합니다. 흙으로 돌아간 우리의 육신이 주님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에 육체의 부활로 살아나게 합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육신은 날이 갈수록 쇠퇴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영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4:16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합니다. 사람의 나이가 80이 넘으면 보통 외모의 모습이 다 거기서 거기라서 남들과 비교해 더 잘 난 것도 더 못난 것도 없고 더 예쁜 것도 더 못생긴 것도 없다. 평준화가 된다. 이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평준화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런 분들은 좀 문제가 있죠? 심보가 그래요. 네가 잘 났으면 얼마나 잘 났냐? 같이 늙어가는 주제에!"

 

그래서 80세가 되고 85세 정도 되면 자랑할 것이 없다. 그래도 있다면 그것은 건강이다. 지식도 아니고, 미모도 아니고, ‘건강이 최고다. 여러분 동의 하십니까?

 

성도 여러분, 그러나 그것도 한때겠지요? 성경은 인생을 풀로 비유했고, 영화로운 때를 꽃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런데 꽃은 시들고 풀은 마른다고 했어요. 그렇습니다. 건강 자랑도 끝나는 날이 옵니다. 슬프지만 사실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랑할 것이 있어요. 나이가 먹어 갈수록, 이 땅에서의 인생의 종말이 다가올수록, 비록 육신은 연약해져 가지만, 내 안에 있는 구원, 내 안에 있는 영생, 질그릇과도 같은 연약한 육신 속에 있는 그 영광스러운 보배가 있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보배는 늙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날이 새로워진다고 했습니다. 이 보배는 바로 십자가의 복음이요, 예수 그리스도요, 구원인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자의 자랑인 것이에요.

 

오늘 본문을 시작하면서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1절과 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고후5:1~2)

 

땅에 있는 장막은 첫째 우리의 영혼이 거하는 육신입니다. 생로병사의 단계를 따라가며 결국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둘째, 땅에 있는 장막은 우리의 육신이 거하는 거처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저택도 영원하지 못합니다. 더욱이 주님 오시는 그날, 새하늘 새땅이 시작될 때 이 육신의 장막인 거처들은 쓸모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서지지 않는 영원한 집이 있는 하늘나라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사도바울은 늘 그곳을 사모했습니다. 이 땅보다 그곳에 거하는 것이 더 좋다 그랬어요.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5:8) 주님과 주와 함께 거하기 위해서는 썩어질 육신의 장막을 떠나 그 본체인 영혼이 주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주님 계신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것이 그가 이 땅에서의 수많은 고난을 이기는 힘과 능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건강관리 물론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육체, 끝까지 잘 사용하기 위하여, 가정에서는 가장으로써, 주부로서, 일터에서는 산업역군으로서, 교회에서는 직분자로서 감당해야 할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건강해야 합니다. 주신 육체 잘 관리해야 해요. 이 건강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육신의 건강도 속사람의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의 영혼의 잘되면 새로운 생명력이 이 속사람의 능력에서 계속해서 뿜어져 나옵니다.

 

이 생명력은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에 놀랍게 나타납니다.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때, 얻는 기쁨과 평안이 있어요. 그 희열 속에서 생명력이 나옵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주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성령께서 충만함으로 함께 하시면, 놀라운 생명력이 우리의 육신을 새롭게 합니다. 세포들의 혁명이 일어납니다. 악한 세포가 죽고 선한 세포가 살아납니다.

 

사도바울이 그랬습니다. 그가 33세부터 64세 순교자의 모습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31년간의 사역을 감당하는 동안, 육신의 고통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어요. 돌에 맞아 거반 죽게 되었어요. 육체의 가시, 사단의 사자, 안질로 또한 간질병으로 힘들 수 밖에 없는 인생이었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맡겨주신 사명 잘 감당했습니다. 무슨 뜻이겠어요? 그 모든 육신적 고통이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질고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어느 사도보다 더 먼곳까지 갔으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더 능력있게 복음을 전했으며, 끝까지 사명 다 완수하고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었습니다.

 

이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가? 십자가의 복음, 구원의 능력, 그리고 영혼 구원의 사명이 늘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타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야 해요.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고백합니다. 410절과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11)예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고,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의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했어요. 이 말씀은 신비스러운 말씀입니다.

 

가깝게는 우리의 속사람의 극대화입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의 영, 성령이 살아 역사하는 심령이 될 때 신비한 역사가 나타납니다. 믿는 자의 죽을 육체에 나타난다고 했어요. 이 모습은 가깝게는 이 땅에서 몸과 마음으로 행하는 삶 속에 열매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백했어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중략)(2:20) 이 모습은 이 땅에서의 삶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천국에서의 얘기가 아니에요.

 

그리고 멀게는 육신이 후패하여 흙으로 돌아간다 해도 주께서 재림하여 이 땅에 심판주로 오시는 그날, 믿는 자의 육신은 영광의 부활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 이 확고한 믿음이 사도바울의 삶을 이끌었습니다. 꺼지지 않는 불꽃과 같이 주신 사명 온전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믿는 자로써 예수로 말미암은 새 생명으로 이 땅에서 형통하고, 저 하늘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고자 합니다. 그런데 언제고 우선순위가 중요합니다. 이 우선순위는 믿음의 수준에 따라 다릅니다. 초신자들은 예수를 믿으면 복 주신다니 믿어보자그럽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거꾸로 생각합니다.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영생을 주셨구나! 이 광야같은 인생길에 승리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도우시는 구나! 이 은혜가 너무 감사하다. 나도 주님을 위해 충성해야지. 주님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지!”

여러분, 이 감사와 감격이 있습니까?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없고 그러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일이 잘 될 때 감사하고, 그리고 정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에 사로잡혀 기도할 때에 그렇습니다. 굴곡이 있어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늘 그 마음으로 살았어요. 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후5:9) 한번 더 읽겠습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무슨 말이겠어요? 내가 살든지 죽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리라!

 

사도바울에게는 이 땅과 저 하늘나라의 구분이 없었어요. 어디에 거하든지 삶이 주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한 인생, 하나님께서 왜 사용하시지 않겠습니까? 왜 능력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놀라운 역사로 그의 인생을 들어 쓰신 것입니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기준을 마련해 줍니다. 하루를 살면서 우리는 순간순간 질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이 일이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 일인지요?” 생각하고 확신이 오면 행동해야 합니다.

일 할 때에도, 사람을 만날 때에도, 주님이 기뻐하시는가? 한번 더 생각하고 묻고 하면 삶이 달라집니다. 같이 한 음성으로 따라서 해 볼까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을 평가받는 날이 온다고 10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 몸으로 행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육신으로 행한 우리의 모든 행함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습들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정말 이 땅에서 잘 되고 저 하늘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복된 인생, 승리로운 인생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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