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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강해 07] 질그릇에 담긴 보배
운영자 2023-08-11 추천 2 댓글 0 조회 379
[성경본문] 고린도후서4:7-15 개역개정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질그릇에 담긴 보배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100세까지 살 것이라고 말들 합니다. 과연 그런 날이 올까요? 오게 된다면 그래서 100세까지 더 산다면 무엇이 더 좋은 것일까요? 15년에서 20년 더 산다고 해서 행복감이 더 증가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상황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건강해서 100세라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프고 거동이 어려운 모습으로 100세까지 산다면 10년을 더 산들 20년을 더 산들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할 것입니다. 본인만 힘들겠습니까? 가족도 힘들겠지요. 저는 간절히 바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들 건강하게 복되게 장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이 연약한 인간의 육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어요. 이 육신을 질그릇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나무 그릇도 아니고, 놋으로 만든 그릇도 아니고, 질그릇이라고 했어요. 질그릇은 흙으로 사람의 손에 의해 빗어진 투박한 그릇을 말합니다. 땅바닥에 떨어지면 쉽게 깨어질 그릇입니다.

 

성경이 인간의 육신을 질그릇으로 표현하는 것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첫 사람을 만드실 때 그 질료를 흙으로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믿음의 조상들은 자주 표현을 했어요.

 

예를 든다면, 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10:9) 욥의 친구도 말하기를 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33:6)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말씀에 사도바울도 자신의 육체를 생각하면서, 이러한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누구보다 많은 육신적 고난을 겪었기에 더 그럴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자신이 받은 육신의 고난과 환난을 밝혔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그뿐만 아니라 그의 몸에는 육체의 가시로 표현하는 질병이 있었어요. 신학자들은 그 육체의 가시를 안질과 간질병으로 해석했습니다. 이 일로 그는 기도 많이 했습어요. 그러나 고쳐지지 않는 그 질병을 바울은 사단의 사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단을 부리시는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것이에요. 그가 기도해도 낫지 않는 육신의 질고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첫째,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둘째, 육신의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을 체휼할 수 있도록, 셋째, 아플 때마다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고. 그는 육신적으로 그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곁에는 의사였던 누가가 늘 함께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는 그 육체의 가시로 인해 결코 주눅들지 아니했어요. 누구보다 더 열심히, 더 먼 곳까지,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능력있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거칠것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 안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언제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생명력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질그릇에 담긴 보배, 이 보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므로 이를 믿는 자는 죄 용서함을 받고 영생을 얻었으며 사망의 쏘는 것을 이겼으니, 부활에 이르게 하는 진리의 복음! 이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생명을 이끌고, 생명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 되었던 것이었어요.

 

그가 서른세 살에 예수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한 햇수가 31년입니다. 그의 최후의 모습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네로황제의 기독교 박해로 인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64세입니다.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그는 그 모든 육체의 가시를 이겨내며, 질그릇과도 같은 연약한 육신을 최대한도로 사용하며,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내었던 것은, 바로 그의 심령 안에 있는 복음의 확신, 하나님이 창조주 되심과 예수님이 구세주 되심의 확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렇게 불꽃같은 전도자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었어요.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그를 살리고 복음이 그의 질병을 이기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대한 강한 믿음과 확신은 능력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의 심령에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 어떠한 역경도 감내하게 합니다.

 

영혼이 잘되면 육체의 가시도 극복하게 되고, 연약한 부분도 힘을 얻게 됩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이 되고,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뛰게 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복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거기에는 새 생명이 있는 것이에요.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에요. 성경의 말씀처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성도 여러분, 이 복음의 능력, 십자가의 능력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주는 세파를 거슬러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이 능력의 말씀이 그의 입술을 통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육체의 가시를 안고서도, 승리로운 삶을 경험하고 체험 했기에, 오늘의 말씀으로 성도를 위로하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7절부터 10절 말씀을 천천히 함께 읽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7~10)

 

얼마나 힘이 되는 말씀입니까? 그런데 본문에 좀 심오한 말씀이 있어요.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짋어짐은이게 무슨 뜻입니까? 예수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을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을 당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 믿기 때문에 때로 손해보는 것과 같은 상황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대세를 따릅니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넓은 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믿는 자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좁은 길을 걷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순박하고 뭘 모르는 것 같고, 우리가 믿음 떨어질 때 자신의 모습을 보면 내가 걷는 이 좁은 길이 맞나? 그런 생각도 가질 수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비춰진 예수의 모습은 죄이이요, 실패자요, 성공하지 못한 한 젊은 청년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부활하십니다. 사망의 쏘는 것을 이기시고 영원한 승리자가 되십니다.

 

그러기에 10절에 말씀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계시므로 내가 약할 때에 곧 강하여 짐이라믿는 자는 주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습니다. 그럴 때가 있어요. 그러나 스토리는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놀라운 반전 예수의 생명으로 다시금 부활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 전하는 일로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복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거룩하게, 차별되게,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살아가려고 하니, 손해 보는 것이 있습니까? 한편 생각할 수 있어요. 대충 믿어도 되고, 대충 살아도 될 것 같은데, 그러면 편할 것 같은데....,

여러분, 그렇치 않습니다. 편하지 않아요.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주하신 나와 여러분의 심령이 편치 않아요. 빛의 자녀는 빛 가운데 서야 합니다. 거기에서 능력이 나타납니다.

 

세상에서 제일 겁 없는 사람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이 사람은 양심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이에요. 성경적인 용어로는 거룩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만일 죄를 범하게 되면 양심이 괴로워요. 그러기에 즉시 회개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가 하나님을 볼 것이다(5:7)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거룩은 내 능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주의 성령께서 내주하실 때, 충만함으로 함께 하실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성령이 내주하시고 능력으로 함께 하시기 때문에 평안이 있어요. 두려움이 없어요.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아파도 일어섭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그 심령이 몸을 지배하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웬만한 세균들, 바이러스가 들어오지를 못해요. 들어오더라도 저항하는 능력이 강하기 때문에 견디고 이겨나갑니다. 이것은 신비하게 보이지만 원래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인 것이에요. 그러므로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으로 어려운 때를 승리하며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도바울이 승리에 찬 고백을 함께 읽을 때 우리의 가슴이 믿음으로 뜨거워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경 말씀 16절로부터 18절까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6~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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