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고린도후서4:1-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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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천사도 흠모할 영혼구원의 사역
내가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내가 예수 믿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땅에서 삶이 마쳐지면 더는 소망이 없었던 죄인이었는데, 구원함을 받게 되니, 인생의 목적이 분명해집니다.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인생 여정이 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죽은 다음에라도 하나님의 품 안에 영생한다고 하는 것은, 세상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놀라우신 주의 은총입니다.
나아가서 이 복된 소식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는다고 하는 것은, 굉장한 특권이에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표현하시기를,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라고 했어요.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자신에게 부여된 전도자의 직분에 대해, 늘 자랑스러운 마음이 있었어요. 그는 로마서 11장 13절에 고백합니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롬11:13)
그래서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여하한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오늘 본문 1절에서 고백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고후4:1)
복음을 전하는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낙심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요. 그것은 내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한 영혼이 주 앞에 돌아오고 또 돌아올 때 그 기쁨은 형용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걸음이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날 것이라고 성경은 약속했어요. 이 기쁨은 전도해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기쁨이요, 영광입니다. 더욱이 주님을 뵐 때 큰 칭찬과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선교지에서 살아갈 때 저는, 귀한 분들이 복음 전하는 일로 헌신하고, 선교지로 나오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야 아예 주의 종의 길을 걷겠다고 일찍이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이 길로 간다고 하지만, 네팔 선교지에 의사분들, 간호사분들이 선교하겠다고 나오는 모습을 제가 여러차례 보았습니다.
아시는 대로 의학 공부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먼저는 의과대학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고 또한 학비가 비쌉니다. 공부 과정도 최소한 7년입니다. 졸업 후 본인과 부모의 기대도 있어요. 현대사회에서 의사는 명예와 보람과 물질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런데 선교사로 헌신해요.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요? 간단히 말한다면 복음 전하는 게 좋아서 그래요. 실제로 의료기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거든요.
제가 아는 박철성이라고 하시는 분은 한국에서 개업 의사신데 일 년에 6개월은 네팔 선교지에 나오셔서 한국 네팔 친선병원에서 의료선교를 합니다.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어요.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보니, 6개월 동안은 한국에서 병원운영을 하며 돈을 벌어요. 그리고 그 수입을 가지고 물론 생활비로 쓰겠지만, 번돈 가지고 네팔에 나와서 의료 선교하는 거에요. 그러면 선교지에 나와 있는 사이에는 한국에서는 같이 동업을 하는 동료 의사가 병원을 계속 끌고 나가는 거에요. 서로 교대로 그렇게 해요. 왜 그렇게 삽니까? 그게 좋으니까! 그 일이 귀하니까. 너무 귀하니까, 그 보람이 그의 인생을 그렇게 이끌고 가고 있어요.
히말라야의 성자라 일컫는 강원희 장로님도 의사 선생님이신데 평생 선교사로 헌신하셨어요. 그가 네팔의 돌라카라고 하는 동부 산속 오지에 세워진 작은 병원에서 홀로 산골 의사로 몇 년을 보내셨습니다. 그 마을에 복음이 들어가지 않았던 때였으니 마음대로 복음을 전할 수도 없었어요. 그저 자신의 방 안 벽에 십자가를 걸어놓고 열심히 사랑으로 환자들을 치료했어요.
어느 날 한 병색이 짙은 한 남루한 여자 환자가 왔는데 당장 외과적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을 지경이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피가 없었어요. 그 병원의 책임자인 네팔인 원장에게 피를 구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피를 구하려면 먼 곳에 있는 병원에 가서 구해 와야 하는데 이 여자를 보니 초라한 여인을 보니 천민 계급의 여인이었어요. 네팔은 여전히 신분제도가 있어서 불가촉천민들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해요.
알겠다고 하고 나갔지만 사실 열심히 피를 구하고자 하지는 않았어요. 몇 시간이 흐르고 원장이 돌아왔는데 하는 말이 피를 구할 수가 없다. 그리고 또 나갔어요. 그런데 그 현지인 원장이 빈손으로 다시금 돌아왔을 때, 놀랄 일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이 강원희 장로님이 침대에 누워있는데 자신의 팔에는 주사바늘이 꽂혀있고 자신의 피를 받아내고 있는 것이었어요. 깜짝 놀란 원장이 물었어요. 뭐하시는 거냐고. 장로님은 말없이 끝까지 피를 받아 냈어요. 자신의 피로 그 여인의 수술을 위해 사용하려고 했던 것이었어요.
그 원장이 놀래서 결국 피를 구해왔어요. 이 여인은 수술을 잘 마쳤고 생명이 살아났어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 예수님의 사랑을 닮은 강원희 장로님의 행동으로 인해 먼저는 그 환자가 감동을 받았고 둘째는 그 원장이 감동을 받았고 이 소문이 잔잔히 그 마을에 퍼지게 되었어요. 이후로 그 작은 병원에서는 강원희 장로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청년들이 모여 성경공부가 시작되었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사도 흠모할 만한 일이 복음 전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찬송으로 불러요.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화려한 천국에 머잖아 가리니 이 세상 있을 때 주 예수 위하여 우리가 힘써 일하세 주내게 부탁하신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화목께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이 찬송을 쓴 분은 에라이져 캐슬이라는 분은 본래 의사였어요. 그리고 이 찬송의 곡을 붙인 분은 그의 아내였습니다. 그는 성공적인 의사요 평신도 지도자로서 자신의 직업의 장에서 모범적인 삶을 살고 그가 출석하던 네브라스카 주의 한 침례교회에서 모범적으로 봉사하던 그런 분이셨어요. 그는 특별히 전도에 사명을 느끼며 병원에서 많은 환자들을 전도하고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삶의 이유, 존재의 이유는 복음 전도라고 고백하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 그는 돈 버는 것보다도 전도하는 것이 그렇게도 좋으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렇구 말구요. 결국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가 아닙니까? 나그네 인생에서 영혼 구원보다 더 가치 있고 고귀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전도는 천사도 흠모하는 일인데요”
결국 그는 나이 60을 넘기면서 그의 마음에 파트 타임이 아닌 전임사역자로 자신의 전 시간을 드려 복음을 전하고픈 그 뜨거운 마음을 견디지 못해, 마침내 목회에 헌신하게 됩니다. 그런데 캐슬 목사님이 이 교회 목사로 부임한지 얼마 안 되어 부인은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누군가가 장례식에 와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했어요. “목사되신 것 후회가 안되십니까? 목사 안되시고 의사하셨으면 부인이 그렇게 빨리 가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캐슬 목사님의 대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 아내는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찬송을 작곡하면서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그네 인생 길에 행복한 전도자의 아내로 곁에 머무는 것이 자기의 행복”이라고.....! 혹시 자기가 먼저 이 세상을 앞서가는 일이 생기면, 난 변함없이 당신의 하늘의 응원자가 되어 함께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요. 그리고 그는 부인의 장례식에서 다시 회중들이 그 찬송을 불러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오늘 성경본문의 사도바울의 고백은 하나님께서 주신 전도자의 직분은 너무도 귀하고 소중해서 여하한 상황에서도 낙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긍휼함을 입었기에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성결한 삶을 산다고 했으며, 진리의 말씀으로 전하며, 양심을 거리끼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고후4:2)
이 모습이 진정한 전도자의 자세인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 전하는 일이 여전히 쉽지 않은 것은 많은 경우 사람들이 복음에 냉담해요. 들으려 하지 않아요. 그러므로 때로 지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보니 우리 교회 전도하시는 분들은 지치지 않아요. 문전박대를 해도 또 찾아가요. 노방전도를 할때도 그래요. 듣지고 않고, 전도지를 받지도 않고, 외면하고 가도 끄떡 없어요. 잔잔한 미소의 얼굴표정이 전혀 바뀌지 않아요. 계속 웃으면서 사랑으로 권합니다. 아주 맷집이 튼튼해졌어요.
왜 복음이 막히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사단마귀가 그 영혼을 놓아주지 않는다고 했어요.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4)
“이 세상 신”이라고 했어요. 바로 사단마귀가 방해합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한다고 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요. 그 가운데 분명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영혼들이 있음을 알기에, 그들은 복음을 들을 것이고, 주님 앞에 나올 것이기 때문에 계속 복음을 전하고 또 전합니다.
본문 5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
앞서 말씀드렸던 강원희 장로님처럼, 종된 모습으로, 병든 여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피를 뽑아서 수술했던 그 사랑의 모습으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새벽에도 기도하실 때에 “나는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긍휼하심을 입은 자다”
“그러므로 천사도 흠모할 전도의 사역! 사랑으로 전도의 일을 감당해야 한다. 주께서 도우신다.”
이 확신을 가지시고 그 감사와 사랑으로 전도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가깝게는 가족 안에 아직 주의 은총의 자리에 나아오지 않고 있는 부모나 남편이나 형제나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고, 나아가서 직장동료나 이웃이 주 앞에 나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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