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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강해 05] 성도는 그리스도의 편지(천거서)
운영자 2023-08-09 추천 2 댓글 0 조회 367
[성경본문] 고린도후서3:1-11 개역개정

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성도는 그리스도의 편지(천거서)

 

저는 선교사로 살아가면서 추천서를 여러 번 썼습니다. 그 수가 약 60여명이 됩니다. 제가 신학교의 설립자로 또한 교수로 있으면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외국에 있는 신학대학원으로 유학하고자 할 때 천거하는 일로 추천서를 썼어요.

 

또는 같은 신학교에서 함께 사역했던 교수들이 박사과정으로 갈 때, 또는 한국 선교사들이 외국이나 한국으로 유학할 때, 입학허가서와 더불어 장학금을 받고 공부할 수 있도록 추천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또한 리빙스톤 학교의 교사들이 한국으로 유학 오고 또는 학교를 탐방하고자 할 때 추천서를 썼습니다.

 

그런가하면 한국대사관에 계신 영사님께 이 네팔 학생이 한국으로 가는데 필요한 학생비자나 여행 비자를 받도록 추천서를 썼는데요. 지원하는 학생의 신분과 한국에서 공부 다 마치면 체류하지 않고 네팔로 돌아올 것이라고 약속을 보증하는 추천서를 썼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한번도 거절 당한 적이 없었어요. 모두가 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장학금을 받는 과정으로 입학 허가를 받았고, 대사관으로부터 입국 비자도 다 잘 받았습니다. 물론 제가 추천서를 쓸 때는 먼저 그가 누구인지 추천서를 써줄 만한 사람인지 확실히 알고 천거했기에 실패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 대사관에서는 저에게 전화가 오고 제가 추천한 그 사람이 누구인지, 믿을만한 사람인지, 이 사람 확실히 돌아오기는 하는 것인지, 가서 공부는 안 하고 돈 벌러 다닐 사람인지 확인코자 했어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확인 전화가 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시간이 가면서 제가 누구인지 알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제가 추천했던 사람들은 모두가 다 공부 잘 하고 또한 네팔로 돌아와서 사역을 잘 감당하니 더는 확인이 필요 없게 된 것이었어요.

 

오늘 성경 본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문구를 발견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단어를 언급한 배경이 있어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사도바울이 진짜 사도인가? 하는 의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추천서는 중요한데 당시에도 천거서 또는 추천서는 아주 중요한 문서였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사역자들, 전도자들, 이방인들의 한 지역에서 사역을 감당하고자 하면 장자교회인 예루살렘교회로부터 신분증명서와 같은 성격의 천거서를 받아야만 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파당을 지었던 무리 중에 바울의 반대편에 서 있었던 자들이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고린도 교회 안에서 아볼로나 게바파에 있었던 자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바울이 그처럼 고린도전서에 눈물로 써서 보낸 권면을 따르지 아니했어요. 왜냐하면 정말 바울이 정말 사도냐? 그러한 영적 권세가 있느냐? 하는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며서 사도바울은 답답합니다. 자신의 사도적 권위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어요. 사도바울은 크게 두 가지로 자신을 피력합니다. 자신이 누구인가하는 설명이 곧 그들에게 보내는 천거서, 즉 하나님께서 보내신 추천서였던 것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첫째,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에 어떻게 역사하고 계심으로 증거하였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그 모습이 증거한다는 말씀이에요. 바로 전장에서도 그는 말씀합니다. 214절과 15절에 말씀합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2:14~15)

 

사도바울, 그는 주의 종으로,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부름받은 사도로, 위대한 전도자로 쓰임 받았습니다. 감옥에 갇혔을 때는 그가 찬송하고 기도할 때,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그렇다고 거기에서 도망한 것도 아니었어요. 오히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간수와 그 가족이 모두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였습니다.

 

로마의 시민권이 있었으므로 감옥에 갇히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운다는 고백처럼 그는 개인적 특권을 사용하지도 않았습니다.

 

죽은 유두고를 살리는 능력이 나타났으며, 그의 손수건을 가져다가 병자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가는 능력도 나타났습니다. 독사에게 물려도 죽지 않는 모습으로 인해서, 사이프러스 섬의 총독과 주민들이 그 영적 권세에 놀라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합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서 어떤 성도를 교회의 직분자로 세울 때, 어떤 성도는 안수집사님 또는 권사님으로 세움 받아야 하는데, 이미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직분을 받은 성도가 있어요. 그러면 요청합니다. “그러면 그 교회에서 임직 증명서를 발급받아 제출해 주세요. 그러면 우리 교회에서 인정하고 직분자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인정받고 우리 교회 직분자가 된 성도가 여러분 있습니다. 중요한 절차입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사도바울이 자신이 사도임을 증명할 때, 천거서로 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 가로 증명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보기만 해도 알아요. 행동에 배여있고 삶 속에 드러나요. “내가 아무개 목사입니다. 선교사입니다.” “내가 아무개 장로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드러나요. 시간이 좀 더디 걸릴 수는 있어도 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요. 우리 교회에 등록하신 타교회 성도님들 중에 그 모습을 저는 볼 수 있습니다. 충성으로 봉사합니다. 직분자로서의 능력과 충성과 성품을 나타냅니다.

 

저는 고국에 들어온지 77개월이 되었는데요. 점점 지역사회 주민들과 친해지고 있습니다. 아파트 경비들로부터 시작해서 세탁소 사장님, 이발소 사장님, 식당사장님, 병원에 직원들, 경찰서와 구청직원들...., 저를 대할 때 너무 깍듯이 인사를 해서 제가 송구스러울 정도에요. 물론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일로도 만나고, 명절 때면 챙겨드리기도 하지요.

 

분명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과 같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대할 때 선입견을 가지고 보고 그러기에 그 기준에 맞춰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산돌중앙교회 담임목사래!”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인데!” “교회 다니는 사람인데!”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만나면 알아요. 새벽에 정장을 하고 어디를 가는지, 성경가방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면, “응 목사님인가봐! 장로님인가봐!” “아주 독실한 신앙인인가 봐!”

 

그래서 가지고 있는 선입견, 기대치가 있어요. 그런데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고, 예를 들어서 시장을 볼 때 지독하게 물건값을 깍든지, 또는 말투나 행동거지가 찬바람이 쌩쌩 불던지 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저게 뭐야~!”

 

오늘 말씀에,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천거서, 즉 그리스도의 편지로 표현을 합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천거서요, 편지로 살고 있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삶과 행동에 있어서 또한 사랑의 능력과 전도의 능력을 나타내시므로 그리스도의 편지로 인정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도바울이 강조하는 두 번째,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린도 교회 성도가 증거가 된다는 것이에요. 무슨 뜻이겠습니까?

 

고린도 지방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전에는,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예수를 알지 못하니 세상 속에 살던 사람들이었어요.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음행하고, 사회적 신분차이로 인해 인간관계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도바울이 전하는 복음으로, 진리로 예수를 믿고, 새 생명을 얻고, 삶이 변하고, 천국백성이 되었으니, 더 이상의 무슨 증거가 필요하냐?

 

이 일에 전도자로, 교회 설립자로 쓰임 받는 자, 바로 그가 바로 사도이지 않겠느냐? 말씀하면서 자신의 사도적 권한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증거하고 있다!” 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3절 말씀이 그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에요.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고린도 교회의 성도가 곧 천거서, 추천서라는 것이에요. 이 천거서는 돌판에 새겨진 것 보다도 더 확실하니....돌판은 깨어질 수도 있어요. 그러므로 어디에?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오직 육의 마음판, 즉 심비에 새겨진 천거서, 편지라는 것입니다. 누가 썼다는 것입니까? 말씀에 보니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편지라는 거에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그렇다는 것이에요. 이는 또한 이 시대 저와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의 영으로 쓰신, 세상을 향한 편지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모세의 얘기가 나오고 돌판이 나옵니다. 십계명은 돌판에 새겨서 주어졌어요. 그러나 정말 더 중요한 것은 돌판에 새겨진 계명이 심령에 새겨져서, 변화가 일어나고, 삶이 바뀌고, 주의 영이 거하시는 모습이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 말씀합니다. 78절의 내용입니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고후3:7~8)

 

영의 직분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과 제 안에 살아계신 성령이 우리를 통제하실 수 있도록 맡기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능력으로 여러분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그를 의지하고 자신을 맡기시고 순종하며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천거서가 되고 편지가 되고, 누구에게나 역시..., 믿는자는 달라!” “믿을 만 해!” “신실해!” 그러므로 그들이 삶에 곤고한 날이 부딪혀 오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나도 교회에 나가볼까?” “신앙을 가져 볼까?” 마음이 열린다면, 여러분은 이미 그리스도의 편지인 것입니다.

 

이 모습으로 오늘도 승리해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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