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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강해 03] 사랑으로 징계하라, 회개하면 용서하라
운영자 2023-08-04 추천 2 댓글 0 조회 353
[성경본문] 고린도전서2:1-11 개역개정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사랑으로 징계하라, 회개하면 용서하라

 

기독교를 성격 짓는 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13:10) 또 말씀합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5:14) 이처럼 명확한 명제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그 사랑 안에 용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용서는 승리를 불러옵니다. 용서를 통한 승리,” 이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보여주셨어요.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사랑이 승리인 것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 새 생명으로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 생의 반전이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죄 속에 죽어가는 인생이 새 생명으로, 새로운 삶으로 살게되니, 이 죄악으로 미움으로 반목으로 어그러진 이 어두운 세상에서도 천국 시민으로 굳굳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용서하시는 사랑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 사랑, 용서가 담긴 사랑, 그러므로 새 삶으로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라는 사도바울의 간절한 마음이 구구절절이 배어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대상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 이었어요. 그들 중에 여전히 구습에 매여 있는 자들, 특별히 교회를 분파로 분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아볼로파로 게바파로 바울파로 예수파로 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교우들을 파벌로 나누려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 안에 하나 되는 바른 신앙으로 올바로 설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사도바울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2:4)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라고 했습니다. 눈물은 진실입니다. 애타는 마음의 결과에요. 부족하고 잘못하고 변화되지 아니하는 성도들을 향한 사도바울의 권면은 눈물이 수반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향한 넘치는 사랑이 있었기에 아픔의 눈물이 있었던 것이었어요. 여러분, 이 시대가 왜 이렇게 아픕니까? 왜 이리 각박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까? 사랑이 없어서 그래요. 용서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네팔에서 처음으로 세례를 베푼 사람 중에 딮뻑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현지 동역자인 팔군 목사님과 함께 제가 세례를 주었는데요. 세례 장소는 저의 집이었고 추운 겨울이었기 때문에 저의 집 목욕탕의 욕조에 물을 가득 채우고 그날 두 형제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네팔에서의 세례는 아주 엄격합니다. 세례식이 거행되는 동안 믿음에서 돌아서지 않을 것을 세 번을 물어서 확인합니다. 그 사회가 힌두교 사회요, 가족이 친척이 이웃이 다 기독교인이 아니니까 명절이 되고 또 취직을 하려면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큰 장애물이 됩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다고 해 놓고 옛 신앙으로 돌아가는 일이 종종 있어요. 그래서인지 세례 베풀 때마다 부르는 주제 찬송이 이렇습니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 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 돌아 서지 않겠네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합니다. 그것은 굳은 맹세요, 약조입니다.

 

그 중에 한 형제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어요. 감사하게도 한국인 선교사님이 교장으로 운영하고 있는 고등학교에서 영어교사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활절 기간 동안 이 학교의 기독교 교사들은 기숙사에 기거하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심령부흥회를 열었어요.

 

그 주에 주말이 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야 할 자녀들이 집에 오지 않자 부모들이 학교에 찾아갔습니다. 이 부모들은 대부분이 힌두교 신자들이이죠. 학교에 가보니 부흥회가 한 참 진행되고 있는데 아이들이 찬송을 하고 방언을 하고....그 모습에 부모들이 아연실색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장 집에 가자고 아이들을 끌어내는데, 아이들이 따라 나서지 않는거에요. 부모들을 향하여 예수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마귀의 자녀들이라고 부모에게 말을 하니, 이 부모들이 깜짝 놀라고 화가 났어요. 이런 일을 집행하는 학교에 대해 화가 나고...그래서 그 학부모들은 분을 이기지 못해 강당 안에 있는 마이크 스피커등 집기를 부수고, 이런 학교는 묻닫게 해야 한다고 경찰을 불렀습니다.

 

그 한국 선교사님은 학교대표자로 몇 명의 교사들과 함께 유치장에 갇혔습니다. 개종행위는 불법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나중에 이 일에 가담하지 않는 동료 교사들이 위문 차 면회를 갔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제게 세례를 받은 딮뻑형제였습니다.

 

그곳에 온 교사들을 보고 경찰 간부가 물었습니다. “너희들도 기독교인이야?” 기독교인이면 잡아넣을 듯한 기세였습니다. 눈을 부릅뜨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며 물을 때에 호이너, 머 크리스챤 호이너!” 그들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모습을 유치장 안에 있는 한국 선교사님이 보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그중에 한 사람, 딮뻑 교사는 예수 믿는 사람이잖아요. 그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선교사님이 바라다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고개를 흔들면서, 아닙니다. 나는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그가 두려움에 예수를 부인했습니다.

 

순간 그를 바라보는 선교사님이 마음은 얼마나 실망스러웠을까요? 그가 그 좁고 냄새나는 유치장에 갇혀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그 어느 것이 아니라, 그 형제가 그 중요한 순간에 주님을 부인한 것이라고 나중에 제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모두가 예수를 믿습니다. 주일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에 나와서 나는 기독교인입니다 라고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래서는 아니되겠지만, 만일에 이 땅에 전쟁이 나고, 말세의 환난이 닥쳐올 때,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면 커다란 불이익이나 신변의 위협을 느낄 때. 과연 참 신앙인의 모습으로 담대하게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예수를 부인한 교사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징계를 해야 합니까? 교직에서 해고를 하고, 교회에서는 출교를 해야 합니까? 아니면 용서하고 오늘 사도 바울과 같이 사랑으로 눈물로 기도해주어야 합니까?

 

비슷한 상황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 교회를 분란 시키고 덕이 되지 못한 행위를 한 자가 있었어요. 5절에 보니 교회를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6절과 7절에 8절에 그에 대한 바울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고후2:6~8)

 

촬스 핫지라고 하는 신학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 고린도 교회를 근심하게 한 자는 교회로부터 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징계 후 그는 교회의 용서를 받고 다시금 교회의 일원으로 회복되었을 것이다.”

 

사도바울은 사랑의 마음으로 그 벌 받은 자를 용서하라고 권면합니다. 그의 마음을 사랑으로 헤아립니다. 본문에 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그러면서 말씀하기를 그러므로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무슨 말씀입니까? 누가 잘못 했거든 정죄하므로 일을 끝내지 마라 다시금 돌이켜 주 안에 돌아올 수 있도록 그를 용서하라 그런 말씀이지요. 10절과 11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고후2:10)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용서하는 것이 마땅하다. 왜냐하면 한 생명을 정죄하고 용서하지 않는 것은 그 영혼을 사단에게 넘겨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그런 말씀입니다.

 

또한 바울과 고린도 교회가 뜻을 같이하여 그들을 용서하게 되면 고린도 교회에 닥친 분란을 틈타 교회를 파괴하는 사단의 궤계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팔 얘기로 돌아갑니다. 그처럼 자신의 믿음을 부인하였던 딮뻑교사를 선교사님은 용서하였습니다. 계속해서 교사생활을 하도록 은혜를 베풀었어요. 그 사랑에 그는 회개하고 다시금 주님 앞에 설 수가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지난 2014년이었습니다. 소식이 두절 되었던 이 딮뻑형제가 수소문을 해서 저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저를 찾아뵙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학교로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학교채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문을 열고 들어와 앉았습니다.

 

그의 얼굴이 환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만나게 되었을 때 그가 제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는 저를 사역자로 부르셨습니다. 저는 순종을 하고 신학공부를 하고 목회를 시작했는데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현재 목회사역을 열심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네팔에서 제가 처음으로 세례를 베풀었던 자였으니까요. 그는 지금도 카투만두에서 많은 성도를 주님 앞에 인도하며 성공적인 목회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그의 허물을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로 대했을 때 그는 그렇게 새롭게 변화되어 신실한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징계는 주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눈물로 그리고 용서로 끌어안을 수 없다면, 이는 그저 징계를 위한 징계입니다. 한 생명의 생명줄을 그냥 놓아 버리는 것이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사람, 그가 구역장님에게는 한 구역원이 될 수도 있고, 교회 안에서는 속 썩이는 한 성도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가정과 친척 가운데에 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 새벽에도 그를 위하여, 변하여 믿음으로 돌이킬 수 있도록, 주께서 뭔가 전화점을 마련하시도록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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