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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 16] 權威(권위)의 기초: 사랑
운영자 2023-06-27 추천 3 댓글 0 조회 370
[성경본문] 고린도전서9:1-18 개역개정

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權威(권위)의 기초: 사랑

 

우상제물에 관한 조언을 마치고 오늘 9장에서 사도바울은 같은 상관관계로 자신의 사도직과 사도가 가질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 피력합니다. 나는 사도로써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성도들에게 은혜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그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겠다.” 그런 말씀입니다. 기억하십니까?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니.....” 지난 시간에 나눈 내용과 같은 맥락입니다. 내가 우상 앞에 드려진 음식을 먹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자가 나의 모습으로 인해 믿음에서 떨어진다면, 그 영혼을 위해 나는 그 음식을 먹지 않겠다.”

 

고린도 교회 안에서 벌어진 문제 중 하나는 계파 또는 파벌과 같이 당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누구는 아볼로에게 속하였고 누구는 바울에게 속하였고 또 어떤이들은 게바파, 즉 베드로에게 속하였습니다. 아볼로는 수사학이 뛰어나서 가르치는 일에 능통하였어요.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설립자요, 십자가의 복음으로 사는 자였습니다. 그런가하면 게바, 즉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요, 사도였습니다. 사도라는 직분은 예수님과 함께 사역을 감당하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니 사도의 권세와 권한을 강조한 사람들은 베드로파가 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라면, 베드로, 바울, 아볼로 이 세 사람 중에 누구를 스승으로 따르겠습니까? 사람 중에 누구를 따르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스승으로 따르고 섬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특히 이 사도의 권한을 강조하며 고린도 교회 안에서 베드로파가 되었던 자들은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하였습니다. 그들은 주장했어요. 바울은 예수님 살아계실 때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 아니지 않느냐?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사역을 이양받은 자가 아니지 않느냐?” 의문을 가졌던 것이었어요.

 

그러한 모습에 교회가 나뉘니, 이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도바울이 자신의 사도성의 당위성을 피력합니다. 그는 다멕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고,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로 사명을 부여받았고, 그리고 그 사명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그 결과로 여러 교회가 세워졌으며, 고린도 교회가 그 중에 하나로 증거를 보여주고 있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사도에게 주신 권한으로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1절과 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고전9:1~2)

본문에 인친 것이 너희다 라고 했는데요. 이 말씀은 내가 사도가 됨을 증명한 것이 바로 내가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 믿게 된 바로 너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다 그런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신이 사도됨을 강조하면서 이제는 사도가 가질 수 있는 권한들을 열거합니다. 그중에 하나로 사도, 즉 예수님의 사역을 위임받아 행하는 자들에게 사역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는데, 이는 성도들이 사도를 위해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후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동안 먹고 자고 살아야 하니 여행경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5절에 보니 다른 사도들은 특히 베드로와 같은 사도는 아내를 함께 데리고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마땅하지 아니하냐?”라고 예를 드는 것이에요. 그렇지요. 복음을 전해야 하니 먼 길을 가야 하는데, 오늘날처럼 비행기를 타고 며칠 만에 사역지를 다녀올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 시대에는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기약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므로 아내도 함께 다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 전도 여행에 필요한 경비를 대겠느냐? 바로 교회의 성도들이 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7절에 보니 직업별로 필요의 공급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고전9:7)

, 나라의 군인들이 필요한 군복과 식량을 위해 농사를 지으며 살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 군인은 훈련하고 전쟁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시간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 다음에는 농부의 수고와 산출에 대한 소유권으로 설명합니다. 포도를 심었으면 심은 자가 거둠이 마땅하고, 양 떼를 돌보고 키우면 그 양떼로부터 우유를 얻지 않겠느냐 말씀하면서 사도와 사역자로부터 복음을 듣고 예수 믿고 영적으로 자라난 성도들이 사역자의 육신적 필요를 채움이 마땅한 것이 아니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9절과 10절에 보니 밭 가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않는데 그래서 가끔은 밭을 갈다가 눈 앞에 풀이 있다면 예를 들어 밭두렁에 있는 풀이나 또는 옆 밭에 있는 콩잎이나 옥수수 잎을

휙 채서 먹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것을 모세의 율법을 통해 허락하시는 것이, 정말 소를 위함이냐? 아니다. 소를 쓰는 것은 소를 위함이 아니라, 농사짓는 사람들을 위함이다. 그러므로 10절과 11절 말씀, 함께 읽습니다.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고전9:10~11)

 

사도바울이 말씀합니다. 이와 같은 농사의 과정은 참여하는 모든 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함이다. 그래서 서로 돕는다. 밭 가는 자가 있고 추수한 곡식을 탈곡하는 자가 있다. 빗대어 말씀합니다. 결론은 이것이지요. 말씀을 뿌리는 자가 있고 그러므로 신령한 음식을 먹는 자들이 있는데, 그러면 말씀을 뿌리는 자는 말씀을 받는 자들로부터 육신에 필요한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이 모든 협력의 과정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교회를 세워가는 과정에서 당연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데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씀합니까? 그러니 힘껏 나를 도와라, 나에게 필요한 재정적 필요를 많이 도와라, 나는 사도로써 사역자로서 이 권한이 있으니 그렇게 하라 강조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화두로 나눈 것처럼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하지 않다면....” 다른 말로 내가 사도로써 사역자로써 당연히 그 권한이 있으나, 그러나 그 모습이 성도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그래서 은혜가 되지 않는다면, 나는 차라리 그 권한을 구하지 않겠다 그런 말씀이에요.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고전9:18)

 

같은 맥락에서 그는 음식에 관하여서도 고백했던 것이에요. 내가 우상의 집에서 거리낌 없이 고기를 먹을 수 있어도 그러나 그 모습 때문에 믿음이 연약한 성도가 상처를 입는 다면 나는 차라리 먹지 않겠다 같은 맥락의 말씀인 것이에요.

 

권한을 행사하여 물질의 소요를 요구하는 일이나, 음식을 먹는 데에는 자유함이 있으나 먹지 않음은,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이 행여나 상처를 받을까 봐 또는 물질적 부담을 갖게 되어 믿음에서 멀어질 경우를 우려하여 그 권한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사도바울의 자세입니다. 이와 같은 자세는 오늘날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복음 사역자들에게 신선한 도전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위해 고국에 들어왔던 해, 당시 담임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춘계 대심방을 광고하시면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합니다. 대심방으로 가정을 방문할 때에 목사님을 섬긴다고 어떠한 봉투도 준비하지 마세요.” 왜 이 말씀을 하셨는지 아시쟎아요? 성도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하셨던 조치였습니다. 참 잘하신 것이지요.

 

저는 속으로 참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마친 후 목양실에 계신 목사님을 찾아갔어요. 그리고 말씀드렸어요. 목사님, 참 잘하셨습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한국 교회 모든 목사님들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본을 보여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한국목회를 계획하면서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그런가하면 담임목사의 심방이 부담스러운 분들이 계세요. 바로 그 봉투문화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제가 알게 되었습니다. 재정적으로 삶에 여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만일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어, 주의 종을 섬기는 자의 모습을, 교회가 기준으로 삼고, 표준으로 삼게 되면, 그럴 여유가 없는 성도는 풀이 죽고, 기가 죽고, 또한 그래서 주의 종의 심방이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의 종은 무엇을 먹고사는가 질문할 수 있어요. 성도들이 십시일반으로 드린, 누가 얼마나 더 많이 더 적게 드렸는지 알지 못하는, 하나님 앞에 드린 헌금으로 통해, 교회에서 지급하는 사례비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알아야 해요. 한 교회의 담임목사와 달리 부교역자들은 부족할 수 있어요. 우리 교회는 교회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할 수 있어요. 그러기에 개인적으로 도울 수 있으면 감사한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그처럼 위대한 종으로 능력의 종으로 세우시고 사용하셨는지 우리는 그의 삶, 그의 정신, 그의 열정, 그의 헌신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어제 8장을 통해서는 나에게 자유가 있다. 그러나 영혼을 구하기 위해 나는 자유를 억제하겠다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오늘 9장의 말씀을 통해서는 나에게 권한이 있다. 그러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나는 그 권한을 다 주장하지 않겠다를 우리가 배우고 있습니다.

 

아주 귀중한 영적 교훈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니...... ”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 그들의 믿음을 세워가기 위해 나의 자유과 나의 권한을 하나님께 드리시는 그러므로 생명을 살리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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