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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강해 13] 홀로 사는 것, 그리고 불신자와 부부로 사는 것
운영자 2023-06-21 추천 1 댓글 0 조회 137
[성경본문] 고린도전서7:8-16 개역개정

8.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제공: 대한성서공회

홀로 사는 것, 그리고 불신자와 부부로 사는 것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먼저 결혼생활에 있어서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 조언합니다. 그들은 혼인하지 않은 자들과 또는 남편을 여의고 홀로 살고있는 과부들입니다. 8절에 말씀합니다.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전7:8)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이처럼 결혼을 하고 안하고는 주의 명령이 아니요, 하나님의 주시는 은사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12절에도 보면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니라라고 언급합니다. 또한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과부된 자가 다시 재혼하지 아니하고 사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을 때 좋다라는 단어로 쓰인 원어인 칼로스 라는 말은 옳다. 맞다. 진리다 라는 어떤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 더 유익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재혼하지 않고 그대로 혼자 사는 것이 왜 좋은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결혼을 하지 않은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과 같이 어떠한 장애물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장차 닥쳐올 환난을 보고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로마의 황제인 네로는 기독교인들을 향한 대대적인 박해를 가하였습니다. “차라리 홀로 있는 편이 낫다. 가족으로 인하여 피난길도 어렵고 운신하기가 힘들 것이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견해는 26절에 보여줍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전7:26)

 

그러나 홀로 살기가 너무 외롭고 힘들거든, 그래서 남편이 아닌 또는 아내가 아닌 그 누구와 육적인 관계를 갖어야 할 정도로 외롭고 힘들거든, 차라리 재혼을 하는 편이 낫다 라고 조언합니다. 음행하므로 죄짓지 말라는 말씀이에요.

 

10절 이하로는 이래서 저래서 이미 결혼을 한 부부들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주의 깊게 볼 것이 있습니다. 이는 이제 자신의 견해가 아니라 주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엄중하게 말씀하는 것이에요. 10절 말씀을 읽습니다.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고전7:10) 마찬가지로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전7:11)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니라 또는 하는 편이 낫다 안낫다, 그런 것도 아니라, 주님의 명령이라고 강조하고 있어요. 이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할 때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지요. 마태복음 196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19:6) 아멘!

 

그런데 예외조항이 있어요. 이럴 경우에는 이혼해도 된다. 간음하면, 남편 또는 아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불륜의 관계를 맺게 되면 이혼 사유가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세상 법정은 간통죄를 폐지해 버렸습니다. 이를 법으로 다스리지 않게 되었어요. 죄악으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이를 죄악으로 봅니다. 개인의 욕망으로 가정이 깨지기 때문이에요.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말하기를 간통죄 폐지로 인해 죄라는 인식이 사라져, 불륜으로 배우자를 배신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뻔뻔하게 구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갑니다. 부부간에 관계가 깨지고 결국 가정은 무너지고 자녀들이 받는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 15절에 보니 갈리게 하라 즉 이혼의 사유가 되는 또 한 가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신앙적 갈등으로 인해 평화가 깨지거든 갈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1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고전7:15)

 

왜 사도 바울은 이런 말씀으로 조언을 주시는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 사회적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생명을 각오하고 믿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자들이 많은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부부가 있는데, 아내가 먼저 예수를 믿고 거듭나서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드렸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이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만 믿으라고 경고합니다. 그래도 부인이 말을 안 듣습니다. 생명을 걸고 믿겠다는데 누가 말립니까?

 

그러면 결국 충돌이 일어납니다. 남편은 아내가 자기의 말을 듣지 않으니 폭력을 행사합니다. 때로 아내는 집에서 쫓겨나기도 합니다. 아내는 도무지 살 수가 없는 처지에 이릅니다. 이런 경우를 사도 바울은 염두에 두고, 남자가 자기와 도저히 살 수가 없다 하고,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가게 되면 이혼하라는 것입니다.

 

또는 반대로 남편이 신실하게 예수를 믿는데 아내 된 자가 죽어도 안 믿겠다고 하면서 남편을 못살게 굽니다. 집에만 들어오면 바가지를 긁습니다. 심지어 때로는 집에 오면 문을 걸어 잠그고 못 들어오게 합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고 늘 상 신앙이 문제가 되어 날마다 생활이 지옥처럼 변한다면 신앙생활 포기해야 합니까? 신앙을 버릴 수는 없어요. 그럴 때는 나누어지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참 가슴 아픈 모습입니다. 오늘날도 우리 주변에도 있어요. 그런데 없지않아 긍정적인 모습도 있어요. 믿지 아니하는 친구인데도 어찌하다 보니 눈에 꽁깍지가 씌워서 여하튼 결혼했는데......, 이후 당하는 아픔과 설움이 있습니다. 후회도 많이 하지만 결국은 믿지 아니하는 배우자를 예수 믿게 만드는 경우가 그런 경우입니다.

 

저의 가정에는 저를 포함해서 6형제가 있는데 저를 빼 놓고는 하나같이 예수 안 믿는 며느리들을 데려왔습니다. 다 연애 결혼을 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인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니, 조언을 주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6형제 중에 저 한 사람만 예수 믿는 집안의 딸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모두가 예수 믿는 며느리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살아생전 어머님의 독실한 기독교 신앙과 기도의 결과다. 기도의 열매다. 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기도는 참으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냅니다.

 

그러면 예수 믿지 아니하는 여자를 며느리로 또는 사위로 데려오는 것이 죄냐?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믿지 아니하는 자와의 결혼, 결코 권장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 어려움이 너무 크고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극복할 수 있는가? 그래야 하겠지요.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해야 하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고난이 시험이 몸과 마음을 괴롭히겠습니까? 또 그 모습을 바라보는 기도하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성경은 이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12절과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고전7:12~13)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믿게 하면 된다는 것이지요.

 

부부간에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애정입니다. 본문에 말씀합니다.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애정이 있으면 예수 믿게 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애정이 없으면 있도록 만들어야 해요. 누가 먼저? 예수 믿는 사람이 먼저. 여하튼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14절 말씀처럼 배우자를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이에요.

 

우리교회 성도 중에도 있어요. 남편은 예수를 믿지 않는데 주일이면 아내가 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차로 교회 앞 도로까지 데려다줘요. 어쩌면 남편 위해 복을 빌어주기를 바랄 수도 있고, 부인의 신앙을 존중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다가 결국 한번 두 번 부인을 따라 교회 예배 참석하는 모습도 제가 보고 있어요. 때가 찼습니다.^^!

 

14절 말씀 함께 읽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고전7:14)

 

믿지 아니하는 배우자를 예수 믿게 하려면, 예수 믿는 사람이 먼저 그리고 더 잘해야 해요. 남편에게 또는 아내에게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해요. 역시 나보다 나은데가 있구나! 예수를 믿는 것이 유익하구나~!” 자녀를 키움에 있어서도, 일을 함에 있어서도, 남편이나 아내를 대함에 있어서도, 내 남편으로, 내 아내로 짝 지워 주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시니...” 아멘?

그러기에 귀히 여겨야 합니다. 존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의 자녀들도 제대로 주님 안에 잘 자라날 수 있다고, 성경 14절 후반부에 말씀합니다. 깨끗하게 자라날 수 있다, 거룩하게 자라날 수 있다 고 말씀합니다.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에요. 부부간에 신앙의 갈등이 심화되면 자녀들이 복을 받지 못합니다. 부부가 함께 주님을 잘 섬겨야 해요.

 

말씀을 맺습니다.

혼인을 해도 그렇고 하지 않아도 그렇고 재혼을 해도 그렇고 하지 않아도 그렇고 제일 중요한 것은 주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으로 똑바로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했으면 부부가 함께 애정으로 살아야 하며, 함께 주님을 섬기는 모습으로 인해 자녀들도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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