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복음15:8-12 개역개정
-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포도나무 가지가 맺는 열매 I
신년특별새벽기도회 첫날, 예수님의 포도나무의 비유 설교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우리가 깊이 묵상해야 할 것,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 포도나무에 열린 열매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요. 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참 포도나무의 가지로 그 줄기에 견고히 붙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두 가지 주제였습니다. 기억나시죠?
오늘 이 시간에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따른 제자들에게 그렇게 강조하신, 맺어야 할 열매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묵상하며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열매’라는 단어는 성경 전체를 통해 190번 등장합니다. 영적인 의미가 있으니 열매는 사람의 말이나 행실, 특히 도덕적 행위, 악행에 대한 결과 등을 가리켜 말할 때, 의미하는 등, 상징적으로나 은유적으로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태의 열매, 입술의 열매, 성령의 열매와 같은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의 비유 설교에서 예수께서 언급하신 ‘열매’를 포괄적인 한 단어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오늘 본문 9절에서 17절까지 주의 깊게 읽게 되면 그 열매가 사랑을 말씀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먼저 9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15:9)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어떤 모습으로 거합니까? 그렇습니다. 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와 같이! 그러면 어떻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까? 그러면 “너희가 내 사랑의 수액을 먹고,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음 12절 말씀을 보시면 좀 더 확실해집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2) 해석이 필요 없어요.
다음 1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요15:17) 무슨 말씀이겠어요? “내가 포도나무의 비유로 너희에게 설교를 하는 것은, 너희로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 말씀이에요.
이 ‘사랑’은 성령의 첫 번째 열매요, 내가 억지로 하는 사랑이 아니니,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어주시는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의 사랑이 마치 수액처럼 줄기에서 가지로 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성령의 열매라고 했어요. 포도나무 가지에는 수액인 것처럼, 주를 믿고 따르는 자에게 이 사랑은, 그 심령에 역사하는 성령의 역동적인 활동의 결과인 것입니다.
믿는 자의 심령에 역사하는 역동적인 성령의 활동의 결과라고 했어요. 그러므로 강권적으로 역사합니다. 예를 들어 선교사님들을 생각해 보세요. 누가 보내서 가나요? 성령께서 사령관되셔서 감동시키셔서 선교지로 보내십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가는 사람 한 사람도 없어요.
가난과 무지와 질병으로 가득한 후진국가 선교지로 떠나는 선교사들은 한 사람도 억지로 가는 사람이 없어요. 슈바이쳐나 윌리엄 케리나 허드슨 테일러나 이 모습은 가까이 우리교회 선교사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역사에 의한 강권적인 주의 사랑이 그들이 심령에 역동적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열매 맺는 결과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어디론가 누구에게 가서 그 열매가 결과로 나타나게 하십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주께서 인도하는 것입니다. 16절 말씀으로 통해 이 영적원리를 환히 알게 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15:16)
“너희로 가서” 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너희는 다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마28:19)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사랑은 이처럼 사랑을 낳고 기쁨은 기쁨을 낳습니다. 주의 백성들을 통해 세상에 증거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8절의 말씀처럼 주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이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요, 주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곧, 주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방법인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나요?
지난 송구영신 예배시간에 나눈 내용이 있습니다. “누구보다 가장 예수님을 사랑한 제자가 베드로였다면,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는 요한이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쪽을 좋아하십니까? 하고 물었어요. 베드로처럼 주를 많이 사랑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요한처럼 주의 사랑을 많이 받기를 원하십니까? 정답은, 주를 많이 사랑도 하고, 또 주의 사랑도 많이 받는 것이에요! 그렇지요? 이 모습이 주가 내 안에, 내가 주안에 거하는 상호친밀한 관계요,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과 그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인 우리와의 끊어질 수 없는 사랑의 관계인 것입니다.
이 사랑의 열매가 포도나무의 가장 큰 열매라면 부수적인 열매가 또 있어요. 그것은 두 번째 열매에요.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15:11)
사랑 다음에 기쁨이에요. 성령의 두 번째 열매인 희락과 같은 열매입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주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므로, 여러분의 심령에는 신령한 기쁨이 가득,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쁨의 반대말은 슬픔이에요. 우울이에요. 오늘날 이 시대를 가리켜 성격 짓기를 3무의 시대라고 합니다. 무관심, 무책임, 무감동의 시대라고 합니다. 무관심! 나 이외에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 냉냉한 시대요, 무책임! 남이야 어떻든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사회에 대한 무책임의 시대요, 무감동! 피리를 불어도 감흥이 없는 무감동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그 심령에 참으로 알 수 없는 신비한 기쁨이 샘솟습니다.
돈이 많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좋은 차, 좋은 집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사람의 본체인 영혼, 그윽히 깊은 곳에서 샘솟는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러므로 얼굴만 봐도 드러나요. 잔잔한 미소가 있습니다. 어디, 옆에 계신 분 좀 바라보세요. 정말 그렇죠? ^^!
또 언행만 봐도 알아요. 어투가 생기가 있어요. ‘감사’라는 단어가 계속 나와요.
여러분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 된 심령에는 기쁨의 열매가 맺힙니다. 내가 억지로 기쁘다! 기쁘다! 마인드 컨트롤 해서 생기는 잠깐의 기쁨이 아니에요. 주께서 주시는 신령한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15:11) 할렐루야!
과연 신앙인이 비신앙인보다 행복감이 더 큰가? 알기 위하여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지난 2014년, 미국 오스틴 가족과 문화연구소(Institute for the Study of Family and Culture)에서 실시한 당시 설문 조사 결과, '교회에 매주 가는' 사람들 가운데 45%가 현재 '매우 행복하다'고 답한 반면, '교회에 전혀 가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28%만이 같은 답을 했습니다.
'매우 불행하다'고 말한 비율은 '교회에 매주 가는' 그룹에서는 2%로 나타난 반면, '교회에 전혀 가지 않는' 그룹에서는 4%로, 두 배 높게 나타났습니다. 조사 결과 보고서는 평가하기를 “교회에 더 자주 가는 사람일수록, 삶에 대한 만족감이 높은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신앙이 사람들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객관적으로 밝혀진 것이에요.
영국 정신과 전문의인 폴 맥클라렌 박사는 영국에서 조사한 같은 설문을 통해 얻게 된 같은 결과를 통해 이렇게 말했어요. “신앙은 많은 사람들에게 보호벽과 같은 역할을 한다.” “신앙을 통해서 강한 사회적 지지를 얻게 되며, 이는 정신적 트라우마에 대항하는 보호벽이 되어 줄 수 있다”
여러분,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하고, 주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주시는 희락의 열매, 기쁨의 열매에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마음에 우울감이 물러가고, 근심과 염려와 걱정의 어두운 세력이, 빛보다 강한 기쁨이 능력에 못배기고 떠나가니, 마음의 병도, 육신의 병도 치유함을 받습니다. 강한 생명력과 면역력으로 마음도 몸도 보호함을 받는 것입니다.
전에도 나눈적이 있어요.
어느 회사의 사장과 전무가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회를 먹었는데 사장이 식중독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죽은 사장을 부검해보니 사인은 아주 지독한 비브리오균 감염이었어요. 보통 비브리오균이 인체에 침투하면 2,3일 후에 병변이 발생하는데, 사장에게 침투한 비브리오균은 워낙 치명적인 독성을 가지고 있어서 불과 몇 시간 만에 사망해 버린 것입니다.
사장과 함께 회를 먹은 전무의 위액에서도 죽은 비브리오균들이 검출되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비브리오균에 감염된 두 사람에게 나타난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무엇이 이 두 사람에게 생명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했을까요? 이유는 그들의 사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죽은 사장은 4년째 부인과 별거하고 있었어요. 교회 집사였지만 교회에 나가는 일도 드물었습니다. 이런 상태였으니 영적 신비와 능력을 체험하기도 힘들었을 겁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었을뿐더러, 주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모든 일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처리해야 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닥쳐도, 기도로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승승장구했고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적을 만들었습니다. 자기를 반대하는 직원들에게 격렬한 저항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긴장과 불안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장을 죽음으로 몰아간 원인이었습니다. 그날 사장의 체내에는 비브리오균의 독성을 이겨낼 만한 에너지가 축적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반면에 전무는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승합차로 근처에 사는 노인들을 교회로 실어나르는 봉사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부인과의 사이도 아주 각별했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집안에서 가족들의 찬송소리와 기도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전무는 예수가 어떤 분인지 잘 아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봉사할 때나 헌금을 드릴 때나 언제고 감사하고 기뻐했습니다.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사모했습니다. 교회에 나올 때면 늘 아내와 팔짱을 꼈습니다. 간혹 보는 사람들이 힐끔, 힐끔 못마땅한 눈길로 “나이 오십 넘은 사람이 주책이다”, “왕년에 누구 결혼 안 해본 사람 있냐?”며 핀잔을 주는 사람이 있어도 상관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놀리는 사람을 향해 빙긋이 웃어주는 여유를 보여주었습니다.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의 VITALITY, 즉 생명력과 면역력은 강력합니다. 아무리 강력한 독성을 가진 균이 체내에 들어온다고 해도 맥을 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세균과의 싸움에서 우리 몸이 이기려면, 항상 주님을 심령에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가 약속하신대로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15:11) 그 주님 주시는 기쁨이 우리를 영과 혼과 육을 건강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멀리 떨어진 채로 사는 사람은, 참된 기쁨을 소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명력과 면역력도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정리합니다.
포도나무 가지에 열린 열매는 첫째,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는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주가 내 안에, 내가 주안에 있을 때, 우리 심령에는 주님의 신령한 사랑과 기쁨의 열매가 열립니다. 그 사랑과 기쁨으로 오늘도 우리는 광야와 같은 세상, 전쟁터와 같은 세상에서도, 사랑으로 승리하며, 기쁨의 찬송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복된 역사가 2023년 새해에 여러분의 영과 혼과 육에 충만 충만하시기를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