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욥기10:1-1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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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2.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3.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4. 주께도 육신의 눈이 있나이까 주께서 사람처럼 보시나이까
5. 주의 날이 어찌 사람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해와 같기로
6. 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죄를 들추어내시나이까
7.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8.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9.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10.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1. 피부와 살을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엮으시고
12.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13. 그러한데 주께서 이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나이다 이 뜻이 주께 있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제공: 대한성서공회
나를 창조하시더니 왜 치십니까?
고난없이, 고통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 여정을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성장의 봄, 녹음의 여름, 열매의 가을이 가고 나면, 추운 겨울이 오듯이, 우리 인생에도 추운 겨울날이 있습니다. 춥고 어렵고 지치고 힘들 때지요. 그러나 추운 겨울도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세 달이 못 되어 그 추운 겨울을 뚫고 따스한 봄은 다시금 찾아옵니다.
며칠 전 영하 10도 이하로 3일간 많이 춥더니 어제부터 누그러져서 오늘은 현재 새벽 기온이 영하 3도입니다. 낮에는 영상 1도에요. 그러니 견딜 만하지요. 겨울에도 삼한사온이라는 주기가 있듯이 3일간 많이 춥고 나면, 4일간은 누그러져서, 그래서 살 만한 것이지요. 비가 많이 내리고 눈이 많이 내려도....., 누구나 다 알아요. 결국은 폭우도 폭설도 그칠 날이 오고야 만다는 것을 다 압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잘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위기의 때에, 고통과 고난의 날에, 잘 견디고, 잘 극복하고, 그러기 위해서, 지혜를 모으고, 체력을 유지하며, 기도를 쉬지 않고, 소망 중에 이겨 나가야 합니다.
오늘 성경의 욥이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본인은 알지 못하지만, 이 고난의 날은 일 년이 채 안 될 것이었어요. 그러나 의로운 주인공인 욥은 오늘도 여전히 불같은 시련 속에 있습니다. 찾아온 친구들은 인과응보의 상식을 들이대면서, “까닭 없는 고난이 있겠느냐? 죄로 인한 것이니, 너는 자신을 뒤돌아보고, 철저히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아라! 너는 죄없다고 주장하지만, 뭔가 죄를 지었기에 벌을 받는 것이 아니냐?” 아주 냉정한 어조로 욥에게 조언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욥기의 초반부를 읽은 저나 여러분이나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욥은 당대에 의인이요, 존경받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고난이 오게 된 것은 사탄이 그를 시험코자 함이요, 이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내용을 알 리 없는 친구들은 자꾸 딴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아주 상식적인 얘기만을 해요. 경험과 전통에 근거하여 고난을 분석하고 나름대로의 조언을 줍니다. 그것은 인과응보라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욥도 거기에서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에요.
그러나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입니다. 인과응보를 넘어선, 심오하고 깊어서,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행하시는 섭리와 손길이 있다는 것을 욥고 그들도 알게 될 것이었습니다.
과거 미국 뉴잉글랜드주의 한 동부 연안에 있는 한 어촌 항구마을에서 이른 아침에 많은 고깃배가 출항했습니다. 고기를 많이 잡는 어획기였기 때문이었어요. 그날 저녁에 만선이 되어 돌아올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후쯤 되어 큰 폭풍이 일었습니다.
저녁이 되어도 어선 중 단 한 척의 배도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그 어부들의 가족들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그 마을의 한 오두막집에 불이 났습니다. 하지만 남편들과 장정들이 모두 배를 타고 조업에 나갔으므로 불을 끈다는 것도 불가능했어요.
그리고 어둠이 지난 다음 날 새벽, 기쁘고, 감사하게도, 모든 어선이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그때 불타버린 집의 여주인만이 울상을 지으며, “여보, 우리는 망했어요. 집과 모든 물건이 다 타버렸어요.”라고 하자 놀란 남편이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천천히 말했습니다. “여보, 오히려 그 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해요. 바로 그 불 때문에 모든 어선이 무사히 돌아 올 수 있었다오!” 생사를 뚫고 돌아온 곁에 있는 사람들이 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떡이며 동의하였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 질흙같이 캄캄한 밤에 태풍으로 인해 항로를 잃은 배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마을의 한 집에서 불이 나게 되니, 멀리서도 그 불빛을 볼 수 있었어요. 그 불을 보고 항로를 제대로 잡고, 마을도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의 생각은 한계가 있습니다. 더욱이 앞날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리 다 보고 알고 계십니다. 특별히 믿음의 사람들에게 닥쳐오는 환난과 고난에 대하여 우리 하나님이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그 끝날까지도 다 알고 계세요. 그러나 사람들은 당황해합니다. 그 고난이 영원히 지속할 것으로 여기게 되면 소망을 잃습니다. 자포자기합니다.
의인인 욥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처럼 신앙이 있음에도 그 마음이 무너집니다. 오늘 10장의 내용이 그런 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에게 조언을 준 친구인 빌닷에게 대응하기 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고, 하소연하며, 이해가 되지 않는 고난의 이유를 묻고 또 묻는 욥의 모습을 우리가 대합니다. 10장 1절과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10:1~2)
이 말씀에서 ‘변론’이라는 단어는 욥이 확실히 깨닫지 못하는 내용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것인데, 자기는 도무지 못 알아듣겠다는 불평입니다. 주가 주시는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겠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첫 번째로 그가 불평하는 내용은, “나를 사랑으로 지으실 때는 언제고, 왜 인제 와서는 나를 이처럼 힘들게 하십니까?” 그런 내용입니다. 욥이 이러한 내용으로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어요. 먼저는 3절입니다.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은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하시고.....,” 자신을 빗대어 말하는 것이에요.
두 번째는 8절입니다. 8절과 이어지는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욥10:8~9)
그 다음은 18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찌함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셨더라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욥10:18)
우리도 극심한 고난 중에 있을 때 그런 생각과 질문을 하지 않겠습니까? “나를 창조하셔서 이 땅에 보내실 때는 언제고, 왜 인제 와서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십니까?”
그런데 이와 같은 질문은, 그래서 죽여달라는 것입니까? 아니면 살려달라는 것입니까? 욥이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을 알지 못해요. 답답합니다. 그러는 가운데도 고난과 고통이 그치지 아니하니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죽기를 바라는 것일까요? 20절 이하 22절까지 말씀, 함께 천천히 읽겠습니다.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욥10:20~22)
욥이 고통과 고난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간청하는 것이에요. “죽기 전에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옵소서~! 죽기 전에 그렇게 해 주옵소서~!” 이 표현은 “나를 죽게 내 버려두세요” 가 아니라 “나를 이 고난과 고통에서 건져주소서~!” 아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고난이 닥쳐올 때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의지할 그 무엇이 ‘자신’입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해 보려고 하고, 경험과 지식과 지인과 물질을 총동원합니다. 백방으로 노력합니다. 그런데 오늘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놓지 않습니다. “내가 의지할 분은 내 영혼의 창조주요, 내 생명의 주님이신 하나님입니다. 나를 죽이든지 살리시든지 하나님이 내 생명의 주인 이십니다.” 이것이 원초적인 신앙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최고의 신앙입니다.
우리 인생이 이 땅에 생명으로 오게 된 것이 영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손길이요, 또한 우리 인생 여정 마치고 생명 다하면 돌아갈 곳도 저 하나님의 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맑은 날도 주시고 흐린 날도 주십니다. 흐린 날이 있기에 맑은 날이 더 소중하고 감사하겠지요? 추운 겨울 때문에 화사한 봄날이 더욱 즐겁고 감사하겠지요.
우리가 찬송으로 불러요.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내 앞에 어려운 일 보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 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그 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항상 좋은 것으로 주시는데, 사랑스레 아픔도 주시고, 기쁨도 주시고, 수고도 주시고, 평화와 안식도 주신다고 찬송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결국 善(선)을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지나고 보면 알아요. 그 깊으신 뜻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러야 할 찬송입니다.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 약속 생각해보네/ 내 맘속에 믿음 잃지 않고 말씀 속에 위로를 얻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다/ 흘러가는 순간순간마다 주님 약속 새겨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오늘도 소망 중에 기도하시므로, 아픔이 변하여 평안이 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역사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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