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욥기6:1-1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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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3.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4.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5.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6.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7.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8.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9.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11. 내가 무슨 기력이 있기에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기에 그저 참겠느냐
12.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13.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나의 능력이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
제공: 대한성서공회
고난(苦難)이 닥쳐오는 다양한 이유
욥의 친구인 엘리바스는 왜 욥의 고통과 고난을 받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 말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죄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실 것이요, 고난도 끝이 날 것이다.” 이러한 변론이 욥에게 도움이 될 리 萬無(만무)했습니다. 왜냐하면 욥은 자신을 돌아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님이 진노하고 그에게 벌을 줄 만한 그런 죄를 범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편, 친구의 그러한 냉정한 판단에, 욥은 많이도 섭섭하고 또 서운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금 어떠한 처지에 있는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하소연합니다. 1절부터 6절까지가 그 내용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나 죽겠어. 죽을 것 같아~! 네가 그걸 아니? 알 리가 없지!” 그런 내용입니다.
2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욥6:2~3)
욥은 자신이 겪는 고난과 모든 재앙을 저울에 달아 볼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도 더 무거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래는 무겁지요. 바다의 모래! 물을 먹으면 더 무겁지요! 이는 욥이 형용할 수 없는 큰 고난에 눌려 있는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어 말하기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 이 표현에서 ‘경솔’이라는 말은 성서원어로 ‘루아’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impetuous’ 그 뜻이 “삼킬 듯이 맹렬하다” 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고통을 표현하는 자신의 말이 “이렇게 거칠 수밖에 없구나!” 그런 뜻입니다.
제 아내는 네팔 선교지에서 사역감당할 때, 비염이 발병하여 많이 힘들었습니다. 냄새를 맡지 못하고, 그러기에 입맛이 없고, 타는 냄새를 맡지 못하니 자주 음식을 태우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들어요. 짜증도 나요. 잠을 자면 코로 숨을 쉬지 못하니 입으로 쉬게 되고, 코를 곯지 않던 사람이 코를 곯게 되고, 아침에 일어나면 입안에 모래가 가득한 것 같습니다. 피로감이 떠나지 않았어요. 두통을 달고 살았습니다. 이러 저러한 많은 방법으로 치료를 받아 보았으나 잠깐일 뿐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5년을 보내야 했어요.
저는 나중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제 선교, 그만하라 하시나 보다. 고국으로 돌아가 수술을 받든지 치료를 하든지, 먼저 사람이 살고봐야 하는 것 아닌가?”
여러분 경험해 보셨겠지만 육신이 아프면 마음은 짜증이 납니다. 고통 중에 있으면 아무리 성품이 좋은 사람도 관대할 수가 없어요. 세상 말로 내 코가 석자인데 내 마음이 편해야 남도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성정입니다.
지금 욥이 그런 상태에요. 아픈 사람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쉽지 않아요. 더욱이 내가 아프지 않고, 내가 고난 중에 있지 않고, 내가 그 입장에 서 보지 않는 이상, 어찌 그 고통을 다 알 수 있겠어요? 그럴 때는 “왜 네가 아픈지 아니?” 판단하고 말하려 하기 보다는. 그냥 손잡고 가만히 계세요. 고쳐주지 못할 것이면 ‘惻隱之心’(측은지심)으로 그저 위로해 주세요. 그리고 떨어져서는 하나님께 기도하세요. “주여~! 몸도 마음도 어루만져 주시고 치유해 주세요. 고난이 물러가게 해주세요.” 진정으로 말입니다.
4절에 욥은 그 고통을 하소연하기를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욥6:4) 화살이 몸에 박혀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독이 묻은 화살이에요. 그래서 자신의 영에 독이 퍼졌고, 두려움으로 가슴을 채웠다고 했어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암이 온몸으로 퍼지고 장기들을 파괴해 나갈 때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모르핀이 없다면 어떻게 견디겠어요.
6절과 7절에 욥은 자신의 신세가 마치 맛없는 음식 같다고 했어요. 식욕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억지로라도 먹을 때의 그 마음, 그 심정이 지금 자신의 삶의 모습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마지못해 사는 모습이요, 생명이 붙어 있으니 살아 있다는 표현입니다.
그런가하면 영적으로도 가라앉아 있습니다. 8절과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욥6:8~9) 한마디로 축약하면 “하나님도 내 육신을 포기하셨다. 나를 치료하시지 않는구나!” 그런 절망 섞인 심정이 되었습니다.
혹여 우리의 생각에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하나님이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까지 표현할 수 있을까? 욥과 같은 의인이!” 그래서 안타까움을 넘어, 실망스럽습니까?
그러면 10절에 욥의 고백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욥6:10)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이 있다고 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의인이에요.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욥의 한면을 봅니다. 그는 하나님을 이해하기를 하나님은 명하신 율법에 얽매여 그것을 철통같이 지키고 행하는 자들만을 좋아하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는 것이에요. 무엇을 보지 못합니까? 그 율법을 넘어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오,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시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심을 그는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순수하고 착하고 신실한 욥인데 이어 고백하는 내용은 여전히 절망적입니다. 11절입니다. “내가 무슨 기력이 있기에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기에 그저 참겠느냐”(욥6:11) 이제는 포기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견딜 수가 없다는 솔직한 고백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극한의 고난과 고통을 경험해 보셨나요?
여러분, 육신이 아프면 영도 혼도 영향을 받습니다. 기도하기도 힘들어요. 찬송은 하지만 감사가 사라진 눈물 섞인 하소연이 됩니다. 반대로 육신이 건강하면, 찬송도 힘차게 부르고, 기도를 해도 힘이 납니다. 사람의 영과 혼이 육은 서로 그렇게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영과 혼과 육,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떠셨나요? 극한의 상황! 십자가에 달리시고, 양손과 발에 대못으로 박히시고, 그 극심한 고통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가증되고, 죽기까지 뻗어갈 때, 주께서 입을 열어 하늘을 향해 외칩니다. 오늘 욥의 그 고백과 다를 바가 없어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러나 정말 버리셨나요? 예수님을 버리시고, 욥을 버리셨나요? 그 강하고 질기고 끔찍한 육체의 고통이 더 이상 기승을 발할 수 없을 때, 그것이 죽음이었어요. 그리고 부활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사망의 쏘는 것을 이기시고 생명으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극한의 고난 앞에 장사가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가운데에서도 계십니다.
이 시대의 선지자로 일컬음을 받는 탁월한 영성신학자 A.W. Tozer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낮에만 일하시는 분이 아니시라 밤에도 일하신다.” 여기에서 낮이란 비유로 말하는 것이니, 신앙인의 삶이 밝고,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상황 가운데에도 당연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만, 반대로 삶이 지치고, 상하고, 어렵고 힘들어, 험산준령과 눈물의 골짜기를 걷는듯한 캄캄한 영혼의 밤에도 하나님께서는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의문이입니다. 그러면 그냥 고통을 주시지 않으시면 될 텐데 왜 주의 자녀들을 백성들을 힘들게 하시는가? 의문이 일 수 있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가깝게는, 죄 때문에, 깨닫고 돌이키게 하시려고, 그런가 하면 병을 고치시고 고난을 회복시키시므로, 주의 권능의 능력을 간증하게 하시고, 주의 영광을 나타내시고자,
그런가 하면 고난을 통해 정금같은 믿음의 정병으로 세우시려고, 그런가하면 고난 중에 신음하는 자들을 체율하고 품을 수 있는 깊고도 넓은 주를 닮은 영성을 갖게 하시고자, 그런가 하면 오늘 욥의 경우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 내가 이해한 하나님, 내가 알아서 내가 그려서 고착화된 틀에 갇힌 하나님의 모습을 깨뜨리시고, 그보다 더 크고, 더 광대하고, 더 놀라우신 하나님이심을 깨달아 알게 하시기 위해서, “네 틀에 나를 가두지 말아라” 고난을 통과하며 깨닫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러한 모습으로 깨닫고 더 크고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면 회복이 시작됩니다. 더 놀랍고 새롭게 그 영혼을 축복하시고 영광의 역사를 나타내십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욥기를 묵상해가며 더욱 깊이 하나님을 깨닫고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이 광대하시고 놀라우시고 깊으시고 넓으신 하나님을 더 많이 더 깊이 깨닫고, 믿음의 성장, 성숙을 이루셔서, 주와 더불어 승리해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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