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민수기30:1-8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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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수령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3. 또 여자가 만일 어려서 그 아버지 집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 서원한 일이나 스스로 결심하려고 한 일이 있다고 하자
4. 그의 아버지가 그의 서원이나 그가 결심한 서약을 듣고도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의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5.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의 서원과 결심한 서약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
6. 또 혹시 남편을 맞을 때에 서원이나 결심한 서약을 경솔하게 그의 입술로 말하였으면
7.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고 그 듣는 날에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을 이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8. 그러나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결심하려고 경솔하게 입술로 말한 서약은 무효가 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서원기도는 꼭 지켜라
성경에 보면 ‘서원’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신구약 성경을 통해 일흔두 번 나옵니다.
서원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하면 “하나님 앞에서 하는 자발적 맹세”입니다. 이러 저러한 일을 “실행하겠습니다” 하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 약속을 하겠습니까?
쉽게 이해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자를 기쁘게 하고 싶어집니다. “내가 당신 제주도 여행시켜줄게” 그럼 남편의 그 소리를 듣는 아내는 기뻐하겠지요? 사랑이 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해 놓고 나서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말하지 않은 것만 못하겠지요. 남편 신뢰가 가겠어요? 깨지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약속하는 것은 분명 사랑의 표현이요, 즐겁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신앙이 깊어지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자원하여 약속하는 것이 서원이에요. 성경은 고린도후서 5장 9절에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후5:9)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주님 앞에 주님 기뻐하실 만한 약속을 드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서원은 그러므로 의무가 아닙니다. 스스로 자원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드린 서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 속의 인물들은 주로 어떤 종류의 서원을 했을까요?
첫째 종류의 서원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윗은 법궤가 예루살렘에 세워지기까지 집에도 가지 않고, 침상에도 오르지 않고, 잠도 자지 않겠다고 서원함으로써 새 수도 예루살렘에 법궤를 모시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좋은 곳으로 모시겠다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또한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다윗은 나라를 통치함에 있어서 법궤에 있는 십계명의 뜻을 따라 즉 하나님의 법을 따라 통치하겠다 하는 것이니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를 기쁘시게 하고 싶었던 것이에요.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그 서원대로 그 법궤를 예루살렘 성전에 모십니다. 잘했지요? 그러므로 복이 임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절제의 서원도 이에 속합니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나실인이 되고자 하면 지켜야 할 거룩함이 있습니다. 남자나 여자가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면, 그 나실인의 기간 동안에는 여러 가지 절제해야 할 일들이 있었습니다.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있었습니다. 술 취하면 안됐어요. 또 그 기간 동안 머리를 깍지 말아야 했습니다. 삼손의 경우지요. 문제는 머리는 잘 길렀는데 육체의 정욕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둘째 종류의 서원은 위기의 상황에서 문제해결을 위해 하나님께 조건으로 약속하는 서원입니다.
쉽게 말씀하자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 주시면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 예를 보면 생명의 위협을 느껴 집을 도망쳐 나온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셔서 하란에 있는 외삼촌의 집까지 가는 먼 여행길을 보호해 주시고, 또 그곳에서도 의식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고향 집으로 다시 편안히 돌아가게 해 주시면 이렇게 하겠습니다하고 세 가지 약속을 합니다. 1)하나님만을 주로 섬기겠습니다. 2)하나님을 만난 그 벧엘에 하나님의 전을 봉헌하겠습니다. 3)그리고 마지막으로 십일조를 바치겠다고 서원을 하였습니다(창28:20-22).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서원을 받으시고 그를 그렇게 지키시고 복 주셨습니다.
압살롬은 아람 그술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삼하15:7). 아들을 얻기 위해 기도한 한나는 아들을 주시면 그를 성전에 바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삼상1:11). 요나와 같은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은 안전을 바라면서 서원하였어요(욘1:16). 그들의 소원은 서원함으로 다 잘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 두 번째 종류의 서원을 해보셨을 거에요. 저도 했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에 있는 서원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필리핀에서는 하나님 앞에 제가 서원하기를 “하나님께서 사역에 복을 주시기 전까지는 제가 고국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열심히 사역하겠사오니 사역에 성령으로 기름 부어주세요.” 그래서 고국에 꼭 가야 할 상황에서도 못 갔어요. 사역이 꽃 피우기 전이었기 때문이었어요. 한번은 만삭이 된 아내가 고국에 가서 출산을 해야 하는데, 어린 딸 해나와 함께 비행기 태워 보내고 저는 갈 수가 없었어요. 많이 미안했지요. 그런데 정말 하나님께서는 복을 많이 주셔서 여러 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유치원도 잘 시작됐을 때, 그 함께 했던 사역자들 20명의 필리핀 형제, 자매들과 함께 4년 6개월 만에야 고국 방문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네팔에서 안식년을 준비하며 미국으로 유학준비를 했는데 미국대사관에서 학생비자가 안나왔어요. 한국에 와서 다시금 비자신청을 하면서 서원했어요. 비자를 허락해 주시면 미국에 가서 어떠한 유혹이 있어도 다 뿌리치고 반드시 네팔로 돌아와 사역 감당하겠습니다, 한인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청빙을 해도, 또는 교육환경이 좋은 미국에서 아이들이 공부하고 싶다고 해도 빨리 석사과정만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랬더니 비자가 나왔어요. 약속대로 동료들은 다들 박사과정으로 올라갈 때 저와 가족은 네팔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역에 크신 복을 주셨습니다. 나중에 full 장학금으로 박사과정까지 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셨어요.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서원기도가 있어요. 저의 한국목회와 그리고 네팔사역과 연관된 것입니다. 언젠가 나눌 날이 오겠지요. 하나님께서 이 서원을 어떻게 들어주셨는가? 그리고 그 서원을 저는 또 어떻게 신실히 또 철저히 지켰는가? 나눌 날이 올 것입니다. 정말 그러기를 바랍니다. 새벽마다 그날을 오기를 고대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저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오늘 성경본문은 이 서원과 연관하여 그러면 여자들도 서원할 수 있는가? 하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서원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 원칙인데 그 시대에 여자의 신분이란 종속적인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딸로서 그리고 남편의 아내로서 그 권한이 보호자에게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더욱이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이나 자녀들의 경우에는 서원을 지키는 데 많은 장애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은혜의 방편이라 할 수 있는 서원을 여자에게도 허락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규례를 세우셨어요. 그 모습을 요약해보면
첫째, 아직 어린 혼인 전의 여자가 아버지 집에 있으면서 서원을 할 경우입니다. 3절과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여자가 만일 어려서 그 아버지 집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 서원한 일이나 스스로 결심하려고 한 일이 있다고 하자 그의 아버지가 그의 서원이나 그가 결심한 서약을 듣고도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의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민30:3~4)
어릴 적 딸의 경우 가장인 아버지가 그 서원을 허락하면 이 서원은 곧 효력을 발생하였습니다. 사실 가장인 아버지가 도와주지 않으면 어린 딸이 어떻게 서원을 지키겠습니까? 아버지가 허락했는데 만일 딸이 이 서원을 이루지 못할 상황이면 아버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후원하고 응원하며 지키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 가장의 책임과 권위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둘째, 결혼한 여자가 서원을 하게 될 경우입니다.
함께 6절부터 8절까지 읽겠습니다. “또 혹시 남편을 맞을 때에 서원이나 결심한 서약을 경솔하게 그의 입술로 말하였으면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고 그 듣는 날에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을 이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의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결심하려고 경솔하게 입술로 말한 서약은 무효가 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민30:6~8)
한마디로 요약하면 남편이 허락하면 서원이 이루어지며, 허락지아니하면 이미 한 서원도 그치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서원을 안 지켰다고 나무라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릴 적 아버지의 권위가 이제는 지아비라 일컫는 남편에게 있어요. 그러므로 아내가 서원한 것을 듣고 묵인하는 남편은 허락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 허락을 했으면 아내가 그 서원을 잘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 책임이 이제는 남편에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경우는 혼자 된 여자의 경우입니다.
그 서원의 권한이 본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곁에 남편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이 말씀은 여자니까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내용의 주제가 아닙니다. 그 보다는 여성에 대한 인격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사회에서도 여자도 서원할 수 있다하는 것과 그리고 어릴 적에는 아버지요, 결혼 후에는 남편이 그 서원이 타당하여 허락한다면 그 서원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함께 책임의식을 갖고 도와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사회적으로 신분이 미비한 여성이지만 남자든 여자든 성과 상관없이 “서원을 했으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즉 하나님의 백성 모두가 다 하나님께 대해 신실해야 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면 안된다는 것을 엄중하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서원을 하셨습니까?
오늘도 이 새벽에 기도하시므로 다시금 마음에 굳게 다짐하시고 서원을 통해 주를 기쁘시게 하며 서원을 통해 주시는 주의 은혜와 복을 체험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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