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민수기22:1-1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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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 자손이 또 길을 떠나 모압 평지에 진을 쳤으니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이더라
2.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3.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많음으로 말미암아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 때문에 번민하더라
4.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방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 하니 그 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5.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 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6.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7.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을 그에게 전하매
8. 발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모압 귀족들이 발람에게서 유숙하니라
9.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되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
10. 발람이 하나님께 아뢰되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들이니이다 이르기를
11.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
12.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의 뜻을 알고서도 나의 뜻에 사로잡힌 자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가까이 왔습니다. 이제 머지 않아 요단강을 건너게 될 것이었어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동편의 막강한 아모리 두 족속들을 물리친 이스라엘은 사기충천하였습니다.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통과해야 할 족속이 있었으니 그들은 요단강 동편, 평야 지대에 살고 있었던 모압족속이었습니다.
당시 모압족속의 왕은 발락이라는 자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60만 대군과 200만명이나 되는 거대한 민족집단이 자신의 땅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그 마음에 두려움이 임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이 살고자 하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은 모압평야가 아니었습니다. 요단강 건너 서편의 땅이었어요. 그런데 이 내용을 알지 못하는 모압왕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과 대화를 하고 타협을 하기보다는 그들이 망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나라가 안전할 것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행하고자 했던 방법은 당시 아주 유명한 복술가, 이 시대로 보면 마술사요, 큰무당과 같은 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복을 빌고 저주를 비는 자인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여 망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복술가 발람은 어떠한 자인가?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발람은 이방 잡신의 예언자였어요. 메소포타미아 브돌 사람으로 브올의 아들이라고 했어요. ‘발람’은 히브리 말로 ‘이방인’ 혹은 ‘탐닉자’, 또 다른 말로 ‘백성을 망하게 하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이 좋지가 않아요. 어쩌면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를 그렇게 이름 지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스라엘에 악을 행하여 결국 이스라엘에 의해 최후를 맞이합니다. 여하튼 분명한 것은 발람은 당시 복술가들 중에서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모압왕 발락이 그 먼 약 650km 떨어진 브돌까지 수차례 사람을 보내어 도움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그를 향하여 기대하는 모압왕 발락의 요구가 오늘 본문 5절과 6절에 기록되었습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가 사신을 브올의 아들 발람의 고향인 강 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이르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주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이겨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민22:5~6)
복술가 발람을 향한 대단한 기대와 믿음을 갖고 있는 모압왕 발락입니다. 그러니 말하기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 안다”고 고백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복술가 발람은 당시에 아주 유명한 인물임을 우리는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복채를 준비하여 사람을 보내 그를 초청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발락 왕의 사자가 처음 그에게 왔을 때, 발람의 태도입니다. 8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발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모압 귀족들이 발람에게서 유숙하니라”(민22:8) 이 이방종교의 신의 힘을 빌어 복과 저주를 비는 자가 갑자기 먼저 여호와 하나님께 묻는다고 합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을 알아서 그럴까요? 아니면 영적인 일을 하는 자이니 막연히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알고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 재미있는 일이 있지요. 과거에 한 무당이 한 집에서 액땜을 한다고 굿을 할 때였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굿을 해도 그 날 따라 신내림이 없는 거에요. 그랬더니 그 무당이 하는 말이 “오호, 물러가라 물러가라. 여기에 사람들 중에 예수 믿은 사람이 있다. 얼른 물러가라. 그 자 때문에 신내림이 없구나~!”
성도 여러분, 영적인 일은 영적으로 분별합니다. 피차 알아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와 귀신을 쫓아내실 때 정작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지를 못했어요. 그런데 정작 귀신 들린 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 보았습니다.
거라사인 지방에서 사역하실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니 무덤 사이에서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게 되니 두려움에 떱니다. 그는 귀신 들려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하는 자였다고 했어요. 예수를 보자 그가 깜짝 놀라며 예수님을 알아보고 주 앞에 달려와 큰 절을 합니다. 그리고 큰소리로 부르짖어 간청했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막5:7) 예수님이 꾸짖습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즉시로 쫓겨나고 이천마리나 되는 돼지에게 들어가니 돼지들이 바다로 떨어져 몰사하였습니다.
복술가 발람이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서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어요.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민22:12)
그가 얼마나 놀랐을까요? 이튿날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찾아온 자에게 말합니다. 13절입니다.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발락의 귀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느니라”(민22:13) 동행을 거절했습니다.
다시 발락 왕이 사자를 보내어 요청합니다. 17절입니다.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케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그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민22:17) 고 자기 의사를 전했을 때도, 발람은 거절합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악한 자라도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니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가 그에게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복채에 그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어요. 19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민22:19)
미련이 남아 있습니다. 그 엄청난 복채에 마음을 빼앗긴 복술가 발람이 그 밤에 여호와 하나님께 다시 여쭙니다. 우리가 얼마든지 상상을 해 볼 수 있어요. “여호와 하나님, 엄청난 복채입니다. 한번만 눈감아 주실 수 없으실까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 믿지 아니하는 사람에게도 역사하십니다. 그 뜻을 보이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오늘 발람처럼 신비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마음을 열고 주님 앞에 나아 와 주를 영접하고 새 삶을 살아가야 하겠지요. 그러나 오늘 본문의 발람처럼 구습에 얽매여 그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인생입니다.
그러나 이 모습은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있어요. 내가 생각하는 길이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분명히 알려 주셨어요.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가운데, 또는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마음에 깨달음이 옵니다. “아~!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구나~!” 그런데도 여전히 자신의 마음에 욕심을 제거하지 못합니다. 구습에 얽매여 있어요.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발람처럼 포기하지 않고 다시금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님 이번 한번만 눈 감아 주실 수 없으신가요? 마지막입니다.”
“그래? 그럼 해 봐라.” 하나님 그 마음대로 내버려 두십니다. 그 결말이 어떻게 될까요?
또한 공교롭게도 그 일로 인해 그가 상대하는 상대방이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요, 사랑하시는 자요. 보호하시는 자라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편에 서서 일을 이뤄가시는 것입니다.
연로하여 주의 품에 안기기 전에 이삭이 기도를 합니다. 장자를 위한 축복의 기도가 이러합니다. 창세기 27장 29절의 내용이에요.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창27:29)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인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영적교훈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을 지켜 보호하신다 하는 것입니다. 발람이 저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주의 은혜지요.
둘째, 이를 위해 믿지 아니하는 자들까지 사용하신다. 우리의 일터에서 직장에서 거래처의 사람들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요, 그 최종결과는 주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셋째, 이 영적교훈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시는데 그 뜻을 알면서도 내가 내 욕심을 버리지 못해 하나님과 deal을 하려하고 추구하는 모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사람이 그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가슴에 담고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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