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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강해 25] 주가 택하신 자를 누가 저주하랴!
운영자 2022-07-22 추천 2 댓글 0 조회 686
[성경본문] 민수기23:1-12 개역개정

1.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제단 일곱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하매

2.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준비한 후에 발락과 발람이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라

3.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나는 저리로 가리이다 여호와께서 혹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 그가 내게 지시하시는 것은 다 당신에게 알리리이다 하고 언덕길로 가니

4.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 발람이 아뢰되 내가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렸나이다

5.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시며 이르시되 발락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

6. 그가 발락에게로 돌아간즉 발락과 모압의 모든 고관이 번제물 곁에 함께 섰더라

7. 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8.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9.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10.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 하매

11.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오히려 축복하였도다

12. 발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제공: 대한성서공회

주가 택하신 자를 누가 저주하랴!

 

지난 시간에 이어 계속해서 발락과 발람의 얘기를 이어갑니다.

발락은 모압족속의 왕이요, 발람은 당대에 유명한 복술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향해 나갈 때 모압 땅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모압 왕 발락은 착각하기를 이스라엘 군대가 자신의 땅을 통과할 때 자신의 족속을 해할 것이라 여겼어요.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전쟁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가 계획한 방법은 당대에 가장 유명한 복술가인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고 그 저주로 인해 이스라엘에 자중지란이 일어나고 전세가 무너질 때 공격하여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발락왕은 발람에게 많은 복채를 주고 발람을 초청하였고 드디어 발람은 모압 땅에 도착하였습니다. 과연 그의 신통력이 역사할까요?

 

231절의 내용입니다.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제단 일곱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소서 하매 2절입니다.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준비한 후 발락과 발람이 제단에 수송아지와 숫양을 드리니라(23:2)

 

발락과 발람이 짐승을 잡아 정성을 다해 제사드렸어요. 제단 일곱을 쌓고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일곱이란 숫자를 완전한 숫자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제사에 정성이 들어갔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어떤 성도는 의아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인데 어떻게 제사 방법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을 수가 있을까?”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다르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힌두교가 대세인 네팔에서는 여전히 짐승 피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소와 염소와 닭의 목을 베고 그 피를 제단 앞 땅에 뿌립니다. 그리고 그 제단에는 돌로 만든 우상들이 있어요. 한국에서 오신 성도 중에는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혼돈스러워 합니다. 그리고 질문합니다. 어떻게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의 피제사 드리는 모습과 이방종교의 제사방법이 비슷할 수가 있는가?”

 

그때 제가 설명합니다. 비슷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인류는 하나였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간으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어요. 그리고 그의 아들 아벨이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제사를 하나님은 기뻐 받으셨습니다. 그 내용이 성경에 기록이 되었고, 그러므로 또한 입에서 입으로 후손들에게 알려졌을 것입니다.

 

비록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하나님처럼 높아지자고 바벨탑을 쌓을 때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미워하시고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못 알아들으니, 같은 언어로 알아 듣는 사람들끼리 모여 온 세상으로 흩어졌어요. 그러나 여전히 구전을 통해 배우고 실천한 것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신 앞에 제사를 드릴 때 짐승을 잡아 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니 이 모습이 계속 이어졌던 것입니다. 가축을 치며 생계를 유지하는 유목민들은 그들이 치는 가축으로 드렸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가장 좋은 쌀과 과일로 채소로, 그리고 바다에서 조업하는 사람들은 바다에서 수확한 좋은 생선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종교적인 행위가 비슷하다는 것은 성경에 이름과 같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류는 원래 하나였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의아해할 수 있습니다. 발람이 누구에게 제사를 드렸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방인 복술가인데 누구에게 제사를 드렸을까요? 3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나는 저리로 가리이다 여호와께서 혹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 그가 내게 지시하시는 것은 다 당신에게 알리리이다 하고 언덕길로 가니(23:3)

 

여호와께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 그가 내게 지시하시는 것은 다 당신에게 알리리이다

발람이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또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 발람이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구나!” 알 수가 있습니다. 또 혼란스럽습니다. 이방인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일까?”

 

이 모습이 있습니다. 이를 신학적 용어로 혼합주의(syncretism)라고 합니다. 제가 전에도 나누었어요. 네팔에서 사역할 때 학교에서 가까운 자동차공업사의 사장에게 복음을 전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을 소개하니 그가 믿고 있는 여러 신들, 브라마, 비쉬누, 쉬바 신 옆에 예수님의 사진을 걸어놓고 이 신에게도 빌고, 저 신에게도 빌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수님에게도 복을 빌어요. 이 모습은 바로 다양한 신을 다 신으로 섬기는 모습입니다. 몰라서 그렇지요. 그렇게 해도 과연 복이 임할까요?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은 십계명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셨어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그래서 그러한 성경의 가르침을 자세히 설명을 해 주고 또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니 그가 다른 모든 신의 그림을 치워버리고, 예수님 사진 하나만 남겨두고 복을 비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작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셨으니 그 자동차 공업사에서는 직원들과 함께 하는 성경공부와 예배가 시작되었고 나중에 그의 집은 하나님만이 창조주요, 예수님만이 구세주로 찬송하는 예배처소가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발람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뭐라하시나 기다렸습니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도 괜챦을지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답이 무엇이었습니까? 5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셨다고 했어요. 그 내용의 결론이 8절 말씀에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23:8)

 

이때 그 발람의 모습을 보는 발락왕이 어떠했을까요? 어처구니가 없었겠지요. 저주하라고 금과 은 그 많은 복채를 주었는데 지금 하는 말이 저주를 못하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오히려 축복하였도다(23:11)

 

그가 화가 나서 발람을 끌고 자리를 옮깁니다. 13절의 내용이에요. 발락왕이 복술가 발람을 끌고 이스라엘 백성이 보이는 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면서 저주하게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또 짐승을 번제물로 제사를 드리고 이제는 저주하는가 보았더니 돌아와서 하는 말이

19절과 20절 말씀이에요. 함께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내가 축복할 것을 받았으니 그가 주신 복을 내가 돌이키지 않으리라(23:19~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배우는 영적교훈이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우리 하나님은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수치를 당하게 하지 아니하십니다. 오히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십니다. 원수가 되어 믿음의 사람을 저주할 때 그 저주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십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십시다.

 

오늘 말씀 23절에 약속하십니다. 야곱을 해할 점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냐 하리로다(23:23) 야곱을 해할 점술이 없다고 했어요.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다고 했어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입니까? 이 확신이 없으면 안 돼요. 이 새벽에도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심령에 이 확신을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낮의 해와 밤의 달이 나를 해치지 못하지!”

이 믿음이 저와 여러분을 살립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히브리서 116절에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믿음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최근에 네팔에서 사역 감당했던 김선교사는 불같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학교의 이름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고 신문과 인터넷 신문에 보도되고...., 긍정적인 내용이 아니라 부정적인 내용으로 말입니다. 나쁜 의도로 기자들이 수시로 학교로 찾아오고 취재했습니다. 그 목표는 기독교 학교라는 것을 천하에 내 드러내어, 네팔의 주종교인 힌두교도들의 공분을 사게 하고, 최종적으로는 김선교사를 정부 블랙리스트에 올려 아예 네팔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그야말로 갖은 구설수로 네가티브 공세를 펼쳤습니다.

 

저와 아내는 그 뒷배경에 사탄이 역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치열한 영적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탄이 저희와 가장 가까운 한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그 마음에 욕심을 갖게 하였으니 정말 그렇게 되면 학교재산인 학교부지는 자동으로 이 음모를 꾸민 직전 학교장에게 갈 것이었습니다. 이 긴 얘기를 다시 나눌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학교가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하고 잘 되려고 하니 사탄이 가만히 있지를 아니했던 것이에요. 그 치열한 영적전투에서 김선교사는 심적으로 육신적으로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어려운 상황가운데 김선교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오직 말씀과 기도에 전무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이었습니다. 사회적 이슈가 된 내용에 대해 답변을 해야 하는 교육청 고위관계자는 그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알게 되었으니 그 직전 학교장을 불러 경고했습니다. 너는 개인적인 욕심으로 야심을 갖고 학교재산을 네 것으로 취하려 했으니 그 죄를 묵과 할 수 없다. 이민국에 리포트하여 너의 해외출국을 금지시켜 놓겠다.” 엄중하게 꾸짖고 경고하였습니다. 비로소 그의 죄와 음모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교육청장은 조언하기를 앞으로 학교는 네팔에 명문으로 자리잡은 로마 캐톨맄 예수회에서 1951년도에 그 땅에 세운 St. Xavier 학교의 모습을 모델로 삼아 발전시키면 될 것이라는 예기치 못한 축복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는 물론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오늘의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복술가 발람의 입을 통해서도 그의 택하신 백성을 축복하시게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녀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에고 나는 죄인이라서~! 그렇게 주님 앞에 사랑받을 짓 한 것이 없어요.”

아니오. 21절에 주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반역을 보지 아니하시는 도다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니.....”

 

우리가 우리의 허물을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러므로 주님과의 관계가 다시금 친밀한 관계로 회복될 때, 축복의 역사는 다시 시작됩니다. 이 한 날이 그러한 날이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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