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빌립보서3:12-14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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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뒤에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7월이 시작됩니다. 빗속에 7월이 시작되었어요. 많은 피해가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7월은 여름 세달 중에서 가장 한 복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산과 들과 논과 밭에 식물과 채소와 작물과 과일들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달입니다. 색깔로 말하면 7월은 당연히 초록색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장의 달이라고 부릅니다. 7월이 되면 언제나 변함없이 마음에 떠오르는 낭만적인 그림들이 있습니다.
푸른 바다, 여름방학, 매미 울음소리, 과수원, 또 뭐가 있을까요? 배고픈 시절을 보내셨던 분들은 먹거리가 생각나겠죠? 통계자료에 보니 인기로 본 여름 음식 다섯 가지가 있는데.., 첫째, 냉면:36.9%(으뜸) 둘째, 콩국수, 셋째가 물회, 넷째가 메밀소바나 메밀국수에요, 다섯째가 오이냉국이었습니다. 그 뒤로 팥빙수가 따르고 있습니다. 땅기시죠? 그리고 더운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게 되니 몸보신을 위한 보양식은 첫째가 삼계탕이 단연 1위입니다. 그 다음이 추어탕, 그 다음이 낙지탕과 장어구이가 소개되었습니다. 또 뭐가 있긴 하는데, 좀 거시기 해서^^!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
7월이 되면 늘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민족시인 이육사 선생님의 청포도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여러분 다 아시지요?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시대적 배경으로 볼 때 여기에서 찾아올 손님이란, 꼭 와야 될 손님, 조국 광복이었죠. 그 조국광복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염원이 가득 담겨져 있는 시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우리가 기다리는 청포를 입고 찾아오실 손님은 누구시겠습니까?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시지 않겠습니까? 믿음의 사람이라면 늘 주의 강림을 고대하며 소망합니다.
그런데 당장 이달에도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손님이 있어요. 찾아올 손님은, 우리 자녀들의 배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여러분들이 주신 기도제목 중에 이 만남에 대한 기도제목이 많이 올라와 있어요. 제 아들이, 딸이 나이가 많은데, 아직 결혼 못하고 있습니다. “좋은 배필 만나게 해주세요~!” 하고.....,그렇죠! 부모의 마음이 그렇지요. 저도 그중에 한 사람입니다.! 사위감, 며느리감, 이 정열의 달, 칠월에 뜻깊은 만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오늘 이 시간을 7월 월초 기도회로 드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달의 시작이기도 하고, 2022년도 반이 지나고, 이제 후반기가 시작됩니다.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혹 지난 6개월 동안 년 초에 세웠던 계획을 이루어 감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았다면... 이제 후반기가 시작되는 7월부터는 전화위복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한 이미 감사한 일이 많으신 분들은...., 오는 주일이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시면서 새달, 그리고 후반기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새 일을 꿈꾸시기 바랍니다. 새역사를 이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성경본문에 등장하는 사도바울이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위대한 선교사요, 신실한 목회자요, 탁월한 신학자요, 영광스러운 순교자였습니다. 초대교회에 빼 놓을 수 없는 믿음의 영웅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도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어요.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노라” (빌3:13,,14) 아멘~!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라고 했어요.
뒤에 이미 한 일들에 대해서는 개념치 않고, 앞에 있는 목표를 향해 전진해 간다고 하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이 이룬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데 그는 쉬지를 아니했어요.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하던 어느 날, 그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쫓아와서......,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사도행전 14장19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19.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행14:19)
돌에 맞아서 죽었는 줄 알고 사람들이 그를 성 밖에 갖다가 버렸어요. 그런데 살아납니다. 다시금 다른 지역으로 복음 전하기 위해 또 발걸음을 옮깁니다. 사도행전 14장 20절과 21절을 보십시오. “20.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중략)”
(행14:20~21) 포기가 없습니다. 죽음도 불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힘 주시는 것입니다.
2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 지방에서 그의 전도는 그의 인생에 가장 큰 복음의 진보과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을 보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9장 9절에서 12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19:9~11)
상상만으로도 너무 놀랍고 대단하지 않습니까? 사도바울이 그곳에서 계속 있었다면 소위 오늘날 엄청난 규모의 메가처치를 이루고 담임목사로 존경받겠지요. 그러나 그곳에서 멈추지 아니했습니다. 안정을 원하지 아니했어요. 그에게는 보다 더 원대한 꿈이 있었으니 그 곳에서 자신의 꿈을 선언합니다. “나는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I must visit Rome also! 머나먼 나라를 꿈꿉니다. 이미 존경받을 위치에 있고, 이제는 좀 쉬고 여유도 가질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러지 아니했습니다. 아예 이미 한 일들에 대해서는 뒤돌아보지 아니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가 오늘 이 새벽에 주신 말씀가운데 있습니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라고 했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입니다.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직 이루어야 할 일에, 더욱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너무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이에요. 저 앞에 이룰 일들이 너무나 뚜렷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서 멈출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자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마치 멈추지 않는 기차와 같은 사람입니다. 끊임없이 에너지가 분출됩니다. 지치지 아니해요.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성령으로 충만하면 가능합니다. 이끌림을 받는 사람은 많은 일을 하면서도 지치지 않아요. 다만 남들보다 세월이 빠르게 간다고 느낄 뿐입니다. “세월이 너무 빨리 흐르는구나! 세월이 날아가는구나!” 그러나 동시에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세월을 계수할 수 있는 지혜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욱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합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이 이러한 비장한 고백을 하고 결심을 나누었을 때, 그는 감옥에 갇혀 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의 나이는 60세가 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래를 꿈꿉니다. 여전히 달려갈 소망이 있습니다. 작금의 나의 환경이, 상황이, 여건과 조건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모습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중에 “애고~! 내 나이에~!” 그러시면 안됩니다. 최근의 통계자료가 보여주고 있어요. 계속해서 수명이 연장되고 있어요. 1970년대는 남자가 67.5세였고 여자는 80.6세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남성의 경우 85세요, 여성은 90세로 나타났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까요? 산술적인 통계에 의하면 현재 40세 되신 분은 76년을 더 살아서 116세에 돌아가시게 될 것이고, 현재 20세의 청년은 앞으로 107년을 더 살아서 최빈사망연령이 127세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20, 30년 뒤에는 “실례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응, 얼마 안돼~, 102살이야~! 우리 형님은 105세야!” 좋아요? 안 좋아요? 대답 안하셔도 돼요. 지난 몇 년간 우리교회에 아가들이 여럿 출산했는데, 예를 들어 안령근 집사님의 딸 혜원이 같은 아가는, 142세를 산다는 산술자료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나이 탓 하지 마시고 사명을 이루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항상 사명이 먼저 와야 합니다. “주여, 내가 주의 영광을 위하여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열심히 충성, 봉사하면서 장수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부름의 상”이라고 했습니다. 장차 천국에서 주실 상입니다. 3장 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노라” “달려가노라” 그랬습니다. 영어식 표현이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I press on toward the goal” “앞의 목표를 향해 내가 나를 밀어댄다.” 그런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한 단체가 성공하기 위해 제일 중요시 여기는 것이 덕목이 있으니 그것은 단체를 이끄는 리더쉽입니다. 그런데 훌륭한 리더쉽 중에 제일 먼저 이루어야 할 리더쉽은 Self-Leadership이라고 했어요. 이 셀프리더쉽이란 이런 말이에요. “나 자신을 이끄는 자가 남을 이끌 수 있다” 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자는, 남을 결코 제대로 이끌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셀프리더쉽에서 언제나 성공하였습니다. 자신을 그 목표를 향해 밀어붙이는 그 능력이 어디에서 왔는가? 그 이유가 있었어요. 그가 고백합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그의 자기제어의 능력은 바로 그의 심령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이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언제고 사도행전의 주어는 성령님이었지 사도들이 아니었습니다. 사도바울, 그의 삶의 주도자는 그 자신이 아니라, 능력주시는 주님이셨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이 7월 한 달이, 그리고 후반기가 살아계신 주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복된 날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무엇보다 성령충만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내 능력이 아니에요. 이 성령충만을 위하여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사도들이 말씀을 전할 때에 듣는 자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롬10:17)라고 했습니다.
둘째, 성령충만을 위해서 뜨겁게 사모하며 기도하십시오. 기도할 때 성령의 충만히 임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
여러분 모두에게 기쁘고 감사한 일, 놀랄만한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이 믿음으로 열어가시는 7월, 금년 후반기가 되시기를, 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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