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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강해 15] 믿음이란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것
운영자 2022-06-03 추천 2 댓글 0 조회 939
[성경본문] 민수기13:25-33 개역개정

25. 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27.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믿음이란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것

 

민수기 13장과 14장은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13장과 14장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바네아라는 곳에 당도했습니다. 광야지만 오아시스가 있는 곳으로 나름 목을 축이며 충분히 쉴 수 있는 곳이었어요. 이제 그곳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의 초입인 브엘셰바 까지는 약 80킬로미터 거리입니다. 쉬지 않고 걷는다면 하룻길이요, 쉬고 자고 걷기로 하면 이틀 길입니다. 이제 거의 다 온 것입니다. 바야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대로 들떠있을 법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에 염려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 땅이 어떤 땅인지, 그리고 과연 자신들이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는지 미리 알고 싶었습니다. 첫째,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인지 아닌지 알고 싶었고, 둘째, 그 땅에 사는 자들이 혹여나 자신들보다 더 강한 족속인지 아닌지 알고 싶었어요.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리 정탐꾼을 보내어 알아보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명하셨습니다. 의심하지 말고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1:21)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하고 주저했습니다. 미리 보고, 미리 알고, 확신을 갖고 싶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있는 모세는 고민 고민을 하다가 그만 백성의 입장에 서게 되었고, 정탐꾼을 선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40일 동안 그곳을 정탐하고 오게 하였습니다.

 

모세의 마음은 이러했습니다. 가서 그 약속의 땅, 비옥한 땅을 보고 오면, 긍정적인 보고를 하고, 또 그곳의 과일을 가져와서 백성에게 직접 보여주게 되면, 이 의심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기뻐하고 힘을 내어 마지막 행진을 마치고 그 땅으로 입성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세의 생각은 오직 열두 명의 정탐꾼 중에 두 명 뿐이었어요. 여호수아와 갈렙 뿐이었습니다. 대다수인 열 명은 정반대였습니다. 뭐라고 보고를 하는가 하면, 맞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이다. 포도송이가 얼마나 큰지 작대기를 사용하여 두사람이 어깨에 멜 정도였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어 보고하는 내용은 기대에 찬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고, 대신 그 마음을 두려움으로 몰아넣는 것이었으니 28절과 29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13:28~29) 이어 32절과 33절도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13:32~33)

 

그 땅에 살고 있는 자들은 거인처럼 키가 큰 자들이니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 이렇게 절망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 부정적인 보고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충격을 받게 되었고, 간담이 녹아내리는 듯한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141절에 보니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고 했어요.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다고 했습니다. 함께 142절부터 4절까지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14:2~4)

 

큰일입니다. 다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행동하려 할 때, 깜짝 놀란 모세와 아론이, 제발 정신 차려라. 그러지 말아라 다급하니 그들 앞에 엎드렸다고 했어요. 이 모습을 보는 여호수와와 갈렙은 기가 막힙니다. 세상 말로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하고 펄쩍 뛸 노릇입니다.

어이가 없고 참을 수가 없어 자신의 옷을 찢으며 외칩니다. 7절과 8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14:7~9)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 것입니까? 다 똑같이 다 같은 모습을 보고서, 해석하는 바가 이렇게 다르니 완전 정반대로 그 입장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믿음의 차이입니다. 오늘 우리의 가슴에 담고자 하는 영적교훈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같은 세상을 보고 삽니다. 같은 처지에 이를 수도 있어요. 똑같이 암 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똑같이 사업이 기울 수도 있고, 똑같이 자녀들이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볼 수도 있어요. 그와 같은 상황에서 누구는 주저앉고 좌절하며, 누구는 일어섭니다.

 

누가 주저앉을까요?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연약한 자입니다. 그러면 누가 일어서겠습니까? 믿음 있는 자요, 더 큰 믿음을 갖고 있는 자입니다. 이 믿음은, 그러므로, 믿음을 한마디로 정의를 내린다면, 믿음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믿음이란, 나약하고 연약한 인간 한계의 논리와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판단하고 해석하고 결론짓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 상황을 보고, 파악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해서 시간을 할애하여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보세요.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라 인간적인 눈과 귀와 생각으로 이미 마음을 다 빼앗겼습니다. 처음 열사람의 보고를 듣고, 두려움이 임하게 되자, 부정적인 생각이 그들의 마음을 먹장구름처럼 덮어버렸어요.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아요. 이게 소위 다수결의 원칙인데, 여러분, 그러므로 강한 믿음의 소유자는 언제고 소수입니다. 많지가 않아요. 사람들은 대세를 따릅니다. 그러나 보세요. 새역사의 물꼬를 트는 자들은 언제고 소수입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는 그런 말을 했어요.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이다. 응전은 언제고 인류의 새역사를 출발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응전에는 언제고 창조적인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여러분은 자신이 이 창조적인 소수 중에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그러시기를 바랍니다. 이 새벽에 잠을 깨고 기도하는 이 일이 보통 일입니까? 결코 아무나 못해요. 그러니 소수 아니겠습니까?

 

시간 관리가 정확하지 못하면 새벽을 못 깨웁니다. 시간을 조절한다고 하는 것은 아주 잘 정돈된 삶의 자세가 없으면 되지 않아요. 누구의 능력입니까? 그렇습니다. 내 의지, 내 능력인 것 같으나....., 아니오!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시고 주관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저는 지난 65개월 동안 새벽 230분에 일어나, 새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하고 성경책을 펼치고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게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합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깨우시는 거예요. 그리고 마치 밤사이 광야 위에 내리는 이슬처럼, 그리고 만나처럼, 이 종에게 생명력 넘치는 영혼의 양식을 심령 가운데 내려 주십니다.

 

오늘 말씀의 여호수아와 갈렙은 왜 다른 열 명과 다른 것입니까? 믿음 때문입니다. 유월절 그 밤에 죽음의 권세가 집집 마다, 짐승의 첫 것과 장남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자녀를 잃은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밤공기의 파장을 일으키고 무섭게 울려 퍼질 때,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라 죽음이 지나가리라죽음이 지나가고, 이후로 더 크고 놀라운 역사, 애굽병사들이 쫓아오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넘실거리는 홍해가 갈라지고 그 바닷길을 건너갈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살아 역사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만난 것이에요.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 앞에 닥쳐오는 어떠한 난공불락도 결국 홍해처럼 갈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침내 약속의 땅에 입성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 믿음의 눈으로 그 땅을 본 것이요, 눈으로 직접 그 땅을 보니 가슴이 터질 듯이 기쁘고 감사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그러므로 그 믿음 없었던 정탐꾼과 그 보고를 들은 믿음 없는 자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 할 때 하나님께서 大怒(대노)하십니다. 심판이 임합니다.

 

출애굽을 할 때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세었으니 20세 이상만 세었어요. 20세 이상의 사람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당시 20세 미만의 사람들과 오늘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비극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은 창조적인 소수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교회 교우들이 천국을 향해 갈 때, 믿음의 사람으로, 하늘 찬송을 부르며, 앞에 서고 뒤에 서서,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을 돋우며, 함께 천국에 입성하시는 여러분의 모습이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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