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민수기10:1-10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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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은 나팔 둘을 만들되 두들겨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영을 출발하게 할 것이라
3. 나팔 두 개를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4.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의 천부장 된 지휘관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5. 너희가 그것을 크게 불 때에는 동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며
6. 두 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행진할 것이라 떠나려 할 때에는 나팔 소리를 크게 불 것이며
7.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크게 내지 말며
8.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지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9.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10.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광야와 같은 인생여정을 걸을 때
우리가 민수기를 읽어나가면서 매시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민수기는 40년간 광야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한 책이요, 그 광야의 여정이란 곧 우리 인생길이라는 것입니다. 그 최종 종착지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이요, 가나안 땅이란 곧 하나님 계신 나라, 곧 천국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광야 길을 걷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나누었습니다. 그러면 광야 길에서, 언제 어느 방향으로 출발하고 또 언제 멈추고 언제 쉬는지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데, 하나님은 성막 위에 머물게 하신 구름으로 그 싸인을 보여주신다고 했습니다. 더불어 그 구름의 기능은 뜨거운 낮에는 햇볕을 가려주고, 추운 밤에는 불의 모습으로 온기를 제공하니, 이 구름은 상징적으로 오늘날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제3위의 하나님이신 성령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름의 인도를 받듯이 우리는 진리의 영이요, 보혜사이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께서는 좀 더 구체적인 의사전달을 위해 모세에게 명하여 나팔을 만들게 하십니다. 은으로 두 개의 나팔을 만들도록 명하셨어요. 스피커가 없었던 그 시대였습니다. 약 200만 명이나 되는 그 수많은 사람에게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도 잘 듣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그 많은 백성에게 어떤 명령을 급히 내려야 할 때, 빠르고 확실하게 알리는 방법은 바로 큰 나팔소리를 통해서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그 두 개의 나팔로 내리는 명령은 크게 다섯 가지였어요. 첫째, 3절에 보니 백성들을 불러 성막으로 오게 할 때는 나팔 두 개를 함께 불었습니다. 둘째, 4절에 보니 각 가문의 지도자인 천부장들을 불러 모을 때는 나팔 하나만 불게 했습니다. 셋째, 5절과 6절에 보니 천막을 걷고 행군할 때 나팔을 부는데, 나팔을 짧게 급히 불면 동쪽 진영이, 두 번째로 짧게 불면 남쪽 진영이 출발을 하고, 총회를 소집할 때는 길게 불었습니다. 넷째 9절에 보니 침략자들이 쳐들어와서 전쟁을 하게 될 때에는 짧게 그리고 급하게 불어야 했습니다. 마지막 다섯째, 경축일과 정기적인 절기와 매달 모이는 초하루에 불러야 했습니다.
이 나팔을 부는 자들은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만이 불 수 있었습니다. 나팔을 어떤 방법으로 부르느냐에 따라 명령의 내용이 달라지니, 착오나 실수가 없도록, 아주 정확하게 불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 사도바울은 나팔을 불되 무슨 뜻인지 백성들이 잘 알지 못하는 소리로 부는 것을 방언으로 말하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광야 길에서 나팔소리는 곧 우리 인생 여정에 선포되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나팔을 부는 자는 정확하게 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만이 불 수 있게 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말씀을 전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전해야 합니다. 엉뚱하게 불다가는 듣는 이들을 곧 성도들을 엉뚱한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누가 그렇게 합니까? 이단의 교주들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전하지 않고 왜곡합니다. 이단의 교주가 아니어도 전하는 자가 말씀을 말씀대로 가감없이 전해야 하는데, 자기 뜻대로 해석하고, 선호하는 내용으로만 전하고, 어떤 경우, 아예 성경 본문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아요. 그러므로 설교가 만담인지, 세상 강연인지 구분이 없어요. 자기 멋대로 전해요. 그러므로 성도들을 약하고 병들게 만들어, 정작 악한 영들과 악한 세상과 전쟁을 치러야 할 때,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패하게 되니, 그 인생이 비참합니다. 참으로 불쌍합니다.
이는 성도 편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오늘도 복음의 나팔소리는 울려 퍼지고 있는데,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온통 마음이 딴 곳에 가 있어요.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세상으로부터 쫓아온 것들에 눈이 어둡고, 귀가 어둡고, 마음을 빼앗겨, 제대로 듣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가고 세월이 갈수록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 영혼이 빼빼 말라 피골이 상접합니다. 예수 믿는 자인지 안 믿는 자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여러분, 나팔 소리가 들릴 때는 정신을 차리고,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여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승리할 수 있어요. 그래야 영혼의 안식의 없는 전쟁터와 같은 세상에서 쉴 수도 있고, 재충전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어 10장 11절부터 28절까지는 준비된 이스라엘 백성이 출발하고 행진하는 모습이 소개됩니다. 11절과 12절, 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오르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 광야에서 출발하여 자기 길을 가더니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무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따라 행진하기를 시작하였는데”(민10:11~13)
구름이 증거의 성막에서 떠 올라 이동하니 하나님의 싸인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하여 이동을 시작합니다. 이백만 명이 움직이는 거에요. 떠서 움직이던 구름이 바란 광야에 구름이 머물렀다고 했어요. 그러면 그곳까지 행진해 가야 하고 그곳에 도착하면 행진을 멈추어서서 진을 치는 것입니다. 쉬어야 하고, 먹어야 하고, 재 충전을 하고, 다시 행진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여줍니까? 바로 교회의 역할입니다. 인생길은 척박한 길입니다. 한 주간 생업의 현장에서 수고하고 애씁니다. 지방으로 외국으로 출장도 있습니다.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 협상을 해야 하고, 또 새로운 거래처도 열어야 합니다. 그러다가 마음 상하는 일도 있고, 지치기도 합니다. 하던 일 멈추고 쉬어가야 합니다. 위로도 필요하고, 웃음도 필요하고, 재충전이 필요합니다. 바로 교회의 역할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힘을 얻고, 안식을 하며, 말씀과 기도를 통해 재충전을 합니다. 성도 간의 교제를 통하여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먹고, 함께 울고, 함께 웃습니다.
교회가 이 역할을 하지 못하면 성도는 갈 곳이 없습니다. 제대로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같이 병들고 같이 죽습니다. 이 새벽기도회는 하루를 깨우는 시간입니다. 적어도 성도들의 대표자가 나와서 기도합니다. 교회의 대표자, 가정의 대표자, 직장과 사업의 대표자, 구역과 기관의 대표자..., 우리가 11장에서 나누겠습니다만,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기도하게 하시므로 이 한날이 평안히 가게 하십니다. 새 역사를 이루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동쪽을 향하여, 약속의 땅을 향하여, 출발을 한 이스라엘의 진영 맨 앞에 선봉지파는 유다지파였습니다. 그리고 유다지파 좌우로는 잇사갈과 스불론 지파가 호위하는 모습으로 함께 전진합니다. 그 뒤에 성막과 성물을 실은 수레가 움직입니다. 제사장 그룹이 그 수레의 앞과 옆과 뒤에 서서 움직입니다. 그리고 성막을 둘러싸고 남은 아홉지파가 앞으로 전진해 나갑니다. 무엇을 보여 줍니까? 그 행진의 중심에는 언제고 성막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에서 일을 합니다. 수고하고 힘씁니다. 일을 마치면 가정에서 쉬고 안식을 하며 내일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언제고 매일 매일 삶의 중심, 그 한복판에는 교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신앙 따로 세상 따로가 아니라는 것이에요. 아니면 교회는 저기 한쪽 구석에 있어 내가 필요할 때만 찾아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제고 성막이, 교회가, 신앙이, 삶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서, 함께 약속의 땅을 향해 전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천국을 향한 순례자의 모습이 그러해야 하는 것이에요. 이 그림을 늘 마음에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다지파 맨 앞에 서서 전진해 가는 선봉지파인 유다지파보다 더 앞에서 앞서 가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33절과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그들이 진영을 떠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민10:33~34)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가며” 라고 말씀합니다. 언약궤는 십계명이 들어있는 궤 이기에 언약! 즉 말씀하신 약속이 들어있는 궤로써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상징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걷는 인생여정, 오늘 이 하루도 앞장 서서 가시는 분이 계시니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어떤 일을 하십니까? 모세의 기도입니다. 35절을 읽겠습니다.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민10:35)
주의 사랑하시는 백성의 앞길에서 우리를 해하려 하는 악한 세력을 물리쳐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행진을 멈추고 안식의 시간이 되면 이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십니까? 그 다음절 36절을 읽겠습니다. 역시 모세의 기도입니다. “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민10:36)
백성이 행진을 멈추게 되니 다시 조립되어 완성되어진 성막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시는 것입니다. 왜 돌아오십니까? 주의 자녀들을 만나기 위해서 오십니다.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또한 안식을 취하도록 그 진영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광야길은 곧 우리인생여정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약속의 땅으로 전진 해 갈 때 혼자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와 함께 전진해 갑니다. 그리고 맨 앞에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길을 인도해 가십니다. 이 한날도 그 예비된 길을 걷는 우리 모두이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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