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요한계시록3:14-1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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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월에 비하여 2월은 어딘가 부족합니다. 우선 숫자에서 그렇습니다. 1월은 31일까지 있는데 2월은 28일까지밖에 없어요. 3일이 부족한 2월은 왠지 열등해 보입니다.
그런가하면 2월이 되면, 새해가 어디로 사라졌나? 싶습니다. 1월에 가졌던 그 희망에 가득했던 새해의 다짐이 점점 시들해져 갑니다. “매일 운동하리라! 독서하리라! 성경을 통독하리라! 주일을 성수하리라! 새벽제단을 쌓으리라!” 그처럼 뜨겁던 다짐과 결단은 2월이 시작될 즈음이면 시들해집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늘 2월 월초새벽기도회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위해 모였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모멘텀이 됩니다. 뜻이 있어요. 왜냐하면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니, 그 식어져 가는 그 결심과 실천에, 성령께서 기름으로 부어주사, 다시금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시간의 창조주가 되십니다. 그 시간을 인간은 발견했을 뿐이에요. 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는구나~!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구나!
그렇게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주기로 끊어 만드셨어요. 지구의 자전을 통해 하루를 24시간으로 끊으셨고, 지구의 공전을 통해 일 년을 365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일 년을 열 두달로 세분하는 지혜를 주셨으니....., 왜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다시금 새로워지게 하신 것입니다. 게으르고 나태한 인간의 심성이, 새날을 맞이할 때에, 새 주간을 맞이하고, 새달을 맞이하고, 새해를 맞이할 때에, 다시금 새로운 다짐으로 출발하게 하신 것입니다.
자~! 주께서 사랑하시는 성도여러분, 오늘 월초새벽기도회를 기하여, 새해의 결심과 다짐이 계속해서 다시금 실천으로 이어지시기를 저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슴이 다시금 뜨거워지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성경본분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식어지지 않기를 바라노라” 함께 1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3:15)
주님은 우리의 심령이 그리고 행위도 다시금 뜨거워지기를 바라십니다. 식어져가는 주를 향한 사랑과 헌신의 열정이 다시금 뜨거워지기를 원하십니다. 안 그러면 어떻게 하신다는 것입니까? 이어지는 말씀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3:16)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상태는 우리의 신앙이 매너리즘에 빠져서, 열정이 식어진 상태입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날카롭던 영적 예민함도, 강인하던 영적 야성도 무디어졌어요. 왜 그렇게 되겠습니까? 세상 풍조에 익숙해지고, 대세의 물결에 떠내려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17절에 지적합니다. 그 모습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영적교만입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신대로, 내 영혼이 “얼마나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먼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의 말씀이 주어지는 성경적 background를 살펴보면,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개 중에 한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양모산업으로 인해 부요한 도시에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교회는 하나님의 칭찬이 하나도 없습니다. 책망만 받아요. 무엇이 문제였습니다. 열정이 식어버린 차갑지도 뜨겁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교회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그런 모습이 되었는가? 자기만족이었습니다. “이정도면 됐어~!” “평균이상은 되쟎여~?”
이 열정이 식어진 모습을 차갑지도 뜨겁지도 아니한 물로 표현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상업 및 전략적 중심지로 만들기에 충분한 구릉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는 물이 부족했어요. 그런데 9km 떨어진 히에라볼리(Pamukkale)라는 곳에 온천수가 풍부하게 쏟아져 나오니, 그 온천수를 끌어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뜨거운 온천수가 수로를 통해 흘러내려오는 동안 식어져버리는 것이었어요. 그러므로 온천수의 기능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라오디게아에서 북동쪽으로는 14km 떨어진 곳에는 골로새가 있었습니다. 골로새 뒤편에는 만년설이 쌓여 있을 정도로 높은 바바산에서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아주 차가운 물이 있는데, 이 차가운 물을 라오디게아로 수로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이 차가운 물도 14km를 지나다 보면 점차 미지근해져 마시기 역겨운 물이 되고 맙니다.
이 환경적 배경, 특히 식어져버린 온천수와 차가움을 잃은 만년설의 물과 너무나 닮은 그들의 영적상태를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2월을 맞이하는 우리의 영적상태가 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새해의 그 뜨거운 결심과 다짐이....., 1개월을 흘러오다 식어져버린 모습이 있다면, 다시금 뜨거워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연약해지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주시는 주님의 처방전이 있어요. 함께 말씀 18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8)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첫째,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가난하고 피폐해진 영혼을 부유하게 하라” 이는 곧 연단을 통한 회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어 “흰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흰옷이라고 했어요. 이는 곧 “심령의 회개를 통해 정결한 마음으로 회복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 영적으로 어두워져서 볼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심령의 눈, 즉 영안이 밝아지게 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징계가 임할 것이니,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랑의 징계를 통해, 다시금 뜨거운 열정을 회복하라 영적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어떻게 회복하겠습니까? 그것은 세속적 도전이 다가올 때에, 그래서 나태함으로 매너리즘에 빠질 때에 정신 차려야 합니다. 다시금 하나님의 강력한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인도하심에 철저히 순종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영성이 회복되고, 열정이 회복되니, 다시금 믿음이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믿음의 선배가 있습니다. 에릭 리델! 그는 1902년 중국 천진에서, 스코틀랜드 선교사 가정에서 출생하였어요. 중국 선교사의 자제로서 먼 거리를 걷고 달리던 습관이 있어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육상 재능을 보였습니다.
영국의 에든버러 대학에 입학한 뒤 본격적인 육상선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그는 당시 수년 간에 걸쳐 스코틀랜드는 물론이거니와 전 영국 단거리 육상대회를 모조리 휩쓸었습니다.
그러므로 에릭 리델은 영국 대표로서 1924년 제 8회 파리 올림픽 경기의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출전할 100m 경기, 첫 예선일자가 7월 6일 주일 오후 3시와 5시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일정표를 보자마자, “저는 주일에는 안 뜁니다.” 라고 단호한 결정을 했습니다. 그의 그와같은 결정은 주일 성수를 위한, 자기희생적 결정이었습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를 위해 예배하며 봉사해야 한다는 신앙의 표현이었어요.
에릭 리델의 100m 경기 출전 포기결정을 들은 영국 전체의 반응은 냉소적이었습니다. 그를 가리켜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신앙심 깊은 척하는 위선자” “조국의 명예를 버린 위선자” 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여러분, 세상이 그렇지 않습니까? 도전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아니했습니다. 에릴 리델은 예선 경기를 하던 7월 6일 주일에, 스콧츠 커크(Scats Kirk) 장로교회에서 간증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날 에릭 리델은 경기장에 나가지 않고,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주일 성수를 하였습니다.
그런 에릭 리델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셨어요. 에릭 리델은 자신의 주 종목인 100미터가 아니었던, 200m 경기에 나가게 되었고, 그 경기에서 동메달을 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가 꿈에도 없었던 400m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400m 경기는 다른 유명한 선수들의 들러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예선전을 통해서, 스위스의 '임바흐', 미국의 '피치'같은 선수들은 세계 신기록을 세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드디어 400미터 결승의 날이 왔고, 에릭 리델은 신들린 사람처럼 빠른 속도로 첫 코너를 돌았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던 전문가들은 불안했습니다. “에릭이 저런 속도를 유지하다가는 도중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에릭 리델은 예견된 우승 후보들을 제치고, 47초 6이라는 세계 신기록까지 세우면서 우승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놀랍지요?
그가 결승전에 출전할 때 담당 안마사가 쥐어 준 쪽지가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나도 존중하리라.” “최선의 영광이 있기를 빌면서!”
그는 400m 경기의 우승 비결을 묻는 몰려드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처음 200m는 제 힘으로 최선을 다했고, 나머지 200m는 주께서 도우심으로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세속적인 도전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믿음이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습니다.
2월이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은 유혹합니다. “뭘 그렇게까지 해! 천천히 해도 될텐 데!”
그래서 주를 향한 사랑과 헌신과 순종의 열정이 식어졌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잠재우는 유혹이요, 도전입니다.
이제 새달을 시작하며, 찬송하고, 기도하시는 중에,
새해에 주님 앞에 서원하고, 약속하고, 다짐했었던, 가슴 벅찬 계획들로,
다시금 여러분의 가슴이 뜨거워지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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