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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 17] 하나님의 결재 없는 야욕
운영자 2022-02-01 추천 1 댓글 0 조회 727
[성경본문] 사무엘하15:13-23 개역개정

13.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14.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15. 왕의 신하들이 왕께 이르되 우리 주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더라

16. 왕이 나갈 때에 그의 가족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왕이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하니라

17.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멈추어 서니

18.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

19.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20.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21.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22. 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 건너가라 하매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수행자들과 그와 함께 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23.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의 결재 없는 야욕

 

때는 기원전 984,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된지 27년이 되고, 다윗의 나이가 57세가 되었을 때에, 나라의 최고 권력을 갖고자 하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왕권을 찬탈하고자 모반을 꾸밉니다. 그때에 그의 나이가 26세였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고자 압살롬이 계획한 첫 번째 방법은 백성들의 마음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서서 재판을 받고자 송사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소원을 듣고, 그들의 편에 서서 동의하고,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러한 송사를 신속하게 처리해 주어야 할 나라님인 다윗 왕이 그런 많은 송사를 들어줄 사람을 세우지 아니하였다고 왕을 폄하하는 말로 전하며, 그러나 자기가 대신 그 일을 해 주겠다고 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샀습니다. 문제는 정확한 조사를 통해 양쪽의 말을 듣고 상황을 판단하여 옳고 그름을 판결해야 할 재판이, 송사하는 자들의 편에만 서서 처리를 하게 되니 이는 옳은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오늘날도 선거철만 되면 국민들의 마음을 사기위해, 자기 몸을 바치며 헌신할 것처럼 행동하는 정치인들을 연상시킵니다. 국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자신을 낮추며 종인 것처럼 행동하고,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다 들어 줄 것처럼 공약을 남발하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에요. 소위 포퓰리즘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우선 국민들의 인기를 끌고자 하여 공약을 남발하는 것이니, 정치란 것이, 모든 사람들의 입맛을 다 맞출 수는 없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하고자하면 국고가 바닥나게 마련이니, 증세가 불가피합니다. 결국 세금의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니, 포퓰리즘은 국가에 해악한 것입니다.

 

한 가지 의문이 이는 것은 4년 동안 그러한 일이 진행되는 동안 다윗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입니다. 왕과 백성의 중간에서 그런 잘못된 일을 행사하는 자가 있다면 엄중한 심판이 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행정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그 자가 자신의 아들이라서 대충 넘어간 것인지 의문이 입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지도자로써 자식에 대한 우유부단한 모습은 결국 문제를 야기 시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 간에, 또한 아버지와 아들 간에 분쟁이 일어나고, 나아가서, 동족상쟁의 전쟁이 일어나는 결과로 귀결됩니다.

 

왕권을 향한 압살롬의 계획은 치밀했습니다. 아버지의 눈길을 피해 헤브론으로 내려가서 거점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 년 만에 압살롬이 왕께 아뢰되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하건대 내가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삼하15:7) 그 이유에 대하여 아버지 다윗의 마음을 안심시키고자 거짓말을 합니다. 다음절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당신의 종이 아람 그술에 있을 때에 서원하기를 만일 여호와께서 반드시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가 여호와를 섬기리이다 하였나이다(삼하15:8)

 

이 말씀에서 당신의 종이란 바로 압살롬 자신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술에 있을 때에 서원을 하였다고 했어요. 만일 여호와께서 다윗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장남인 암논을 죽인 자신을 용서하고 예루살렘으로 다시금 돌아오게 허락해 주신다면 그런 뜻입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서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서원을 이루기 위해서 헤브론에 내려가고자 하오니 허락해 주옵소서 압살롬이 다윗에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말을 하여 아버지의 눈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하나님 앞에 큰 잘못을 한 것입니다. 십계명 제3계명이 명령하시기를 너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라고 하셨는데, 여호와를 섬기고자 헤브론에 간다고 하니 이는 자신의 야욕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나요? 어림도 없지요.

 

오늘날에도, 그러면 안 되는데, 자신의 비즈니스를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작은 규모의 교회보다는 성도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그럴 듯하게 하지만, 목적은 자신의 비즈니스에요. 하나님의 수직적인 관계가 우선순위가 아니라, 수직적인 인간관계를 넓히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 수직적인 관계가 바르게 설정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복을 더 해 주십니다.

 

헤브론에 반역의 거점을 마련한 압살롬은 군사들을 모읍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다윗의 모사였던 길로 사람 아히도벨입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삼하15:12)

 

아히도벨은 다윗의 모사인데 왜 반역을 꾀하는 압살롬 편으로 갔을까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으니 아히도벨은 다윗이 우리아를 죽이고 취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친조부였습니다. 아히도벨 입장에서 볼 때는 다윗은 가정 파괴범이었어요. 자신의 손녀의 남편인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취한 다윗을 원수처럼 여겼을 것입니다. 압살롬의 쿠데타를 빌미삼아 다윗을 제거하려고 한 것이에요.

 

심지어는 압살롬에게 다윗의 후궁들과 백주대낮에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동침하도록 부추기기도 하였습니다. 이 내용이 다음 장인 162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찾아가서 읽겠습니다.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아버지가 미워하는 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지리이다 하니라(삼하16:21)

 

성도 여러분, 이 모습이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이러한 아히도벨의 가담과 모략은 죄를 지은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진실로 참회하고 회개할 때에 생명을 유지시켜주시고, 그 대로 왕조가 이어지게 하셨으나, 공의의 하나님은 징계를 통해 다윗의 성품을 변화시키시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세우신 것입니다.

 

이처럼 백성의 마음을 사고 다윗의 반대편에 서 있는 전략가인 아히도벨까지 자기편에 세운 압살롬은 자신의 야욕을 만천하에 드러냅니다. 자신이 이스라엘의 새 왕이 될 것을 공포하고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받은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아들과 전쟁을 치러야 합니까? 아니면 자신이 물러남으로 동족간의 상쟁을 피해야 하겠습니까? 다윗은 압니다. 왜 이러한 상황에 이르렀는지를 잘 알아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죄를 범한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자신으로 인해 죄 없는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전쟁을 피하고자 예루살렘 성을 떠납니다. 신하들이 줄을 이어 함께 피난합니다.

 

그때에 다윗 왕과 함께 피난을 하고자 당시 제사장이었던 사독과 아비아달의 지도하에 레위 사람들이 언약궤를 메고 따라나섰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다윗의 마음은 양심의 찔림을 받습니다. 나 때문인데, 내 죄 때문인데, 하나님의 언약궤가 예루살렘을 떠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러므로 그가 제사장들을 향하여 뭐라고 말을 합니까? 2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삼하15:25) 무슨 뜻이겠습니까? 자신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으니,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를 살려 주시면, 내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그 하나님의 언약궤를 보게 하실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봅니까? 다윗의 우선순위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한 때 자신의 눈이 어두워 범죄 하였으나, 철저한 회개를 통해, 또한 징계를 받는 가운데, 그의 본래의 신앙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평생에 함께 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 자세를 잃지 아니했습니다. 자신을 택하셔서 기름으로 부으시고, 골리앗을 이기고, 왕의 자리에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어지지 않기를 바랐고, 또한 자기로 인해 자신에게 맡겨주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하지 않기를 바랐던 다윗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압살롬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선순위가 아닌, 자신의 야욕을 이루기 위해 시작된 압살롬의 반역 사건은 그 동기부터 잘못된 것이니, 하나님께서 그 손을 들어주실 리가 없습니다. 결국 어려움을 겪었던 다윗이 다시금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왕좌에 앉게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이 새벽에도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할 것은, 내가 어려움당할 때에 주를 보게 하소서! 내 마음도 내 시선도 흐트러지지 않게 하소서! 주는 나의 모든 것입니다. 내가 주로 말미암아 오늘도 삽니다.”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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