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사무엘하14:21-3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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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청년 압살롬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요압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왕을 위하여 복을 빌고 요압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종의 구함을 왕이 허락하시니 종이 왕 앞에서 은혜 입은 줄을 오늘 아나이다 하고
23. 요압이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오니
24.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
25.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26.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27. 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 그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
28. 압살롬이 이태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29. 압살롬이 요압을 왕께 보내려 하여 압살롬이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부르되 그에게 오지 아니하고 또 다시 그에게 보내되 오지 아니하는지라
30.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 하니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더니
31.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 하니
32.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이 사람을 네게 보내 너를 이리로 오라고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 아뢰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
33.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주의 뜻을 거스르는 개인의 뜻과 사사로운 감정의 결과
살다보면 여러 어려운 일을 당면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한 가지는 다 자란 자녀가 성품 적으로 악할 때입니다. 그런 성품으로 세상을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냉정한 이성으로 야단치고 질책하며 똑 바로 잡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왜 그렇겠습니까? 내가 낳은 자식이요, 핏줄이라는 이유로, 언제나 연민의 감정이 부모의 마음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이와 같은 입장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바로 압살롬 때문입니다. 이복형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형이요, 형제 중 장남을 죽인 압살롬 그 포악한 성격에 경악을 합니다. 물론 장남인 암논이 못된 친구의 조언에 넘어가 이복 여동생인 다말을 욕보인 것은 큰 죄악이지만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먼저 아버지인 다윗과 의논을 했더라면 그런 참사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겠지요.
아버지는 분노하였고, 압살롬은 아버지가 두려워, 처갓집이 있는 그술로 도망가서는 그곳에서 3년을 지냅니다.
압살롬은 어떤 자입니까? 그 모습에 대하여 간단한 설명이 25절과 26절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아주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2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삼하14:25)
온 이스라엘 가운데 최고의 미남이요, 훈남이라는 말씀이죠. 세상말로 ‘킹카’라는 말도 맞겠지요. 제가 상상해 볼 때에는 ‘가을의 전설’이라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삼형제 중 두 번째 동생인 ‘트리스턴’이 연상되는데요. 그 멋진 역할을 ‘브래드 핏트’라고 하는, 유명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의 남편이었던, 미남 배우가 연기합니다. 영화 속에서 그 모습이 참 멋지죠. 훤칠한 용모에 긴 금발 머리를 날리며, 아주 용맹하여, 곰과 대결을 하고, 모험심이 많으니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먼 나라 항해를 하며 돈을 많이 벌기도 합니다. 그 매력적이고 카리스마틱한 모습에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반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압살롬의 멋진 면은 거기까지입니다. 얼마나 자신을 치장하고 가꾸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잘난 용모에 사로잡힌 일종의 나르시즘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26절에 소개되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삼하14:26) 멋을 내기 위해 머리를 길게 기른 것입니다. 그래도 년말에 깍으니 다행이에요. 그 무게가 이백세겔 이니 약 2.6킬로그램입니다.
잘 생겼으니 인기가 좋습니다. 대중은 그의 됨됨이 대해서는 잘 몰라요. 이스라엘 백성은 압살롬의 빼어난 외모와 용맹성에 반하여 그가 다윗을 이어 왕이 될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된 다윗은 압니다. 그가 왕이 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고 부족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압니다. 자기중심적이고, 포악한 성격에, 권력에 대한 야심이 가득한 아들 압살롬입니다. 아마도 그 모습이 태종 이방원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의 고민이 더 깊어갑니다.
보통 용모가 뛰어나면 어릴 적부터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지요. 그럴 경우 성격형성에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지나치면 어떻게 됩니까? 자신밖에 모릅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갇혀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면 공주병에 걸리고, 남자면 왕자병에 걸려요. 압살롬이 그러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헤아려보는 넓은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 아버지의 입장도 그리고 최고사령관인 요압의 입장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뜻만을 내세우는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그러나 내가 낳은 자식이요, 핏줄이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처갓집에 피신하여 3년이나 흘렀으니 이제는 궁으로 불러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의 마음이지요. 그런데 명분이 없습니다. 못된 죄인자식을 불러들여야 할 명분이 없습니다. 그 모습을 곁에 있는 요압장군이 눈치 챕니다. 그러므로 모사를 꾀합니다. 다윗과 압살롬을 화해시킬 중재자로 드고아의 한 총명한 여인을 불러 다윗 앞에서 연극을 하게 합니다.
2절과 3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드고아에 사람을 보내 거기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상주가 된 것처럼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오래 슬퍼하는 여인 같이 하고 3.왕께 들어가서 그에게 이러이러하게 말하라고 요압이 그의 입에 할 말을 넣어 주니라”(삼하14:2~3)
이 여인의 송사는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아들 둘이 있는 과부인데, 형제가 서로 싸우다 한 아들이 죽었다. 이 내용을 알게 된 주민들이 그 악한 아들을 내어 놓으라 죽은 동생의 죄를 원수를 갚고 상속받을 것까지 다 끊어버리겠다 하니 어미 된 제 마음이 너무 슬픕니다. 이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때에 그 어미의 슬픔을 안 다윗이 말합니다.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왕이 이르되 누구든지 네게 말하는 자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가 다시는 너를 건드리지도 못하리라 하니라”(삼하14:10) 11절 후반부에 재차 약속합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아니하리라”(삼하 14:11)
이 여인이 그 아들이란 누구를 두고 말한 것입니까? 도망가 있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두고 그렇게 연기하며 말한 것이었어요. 요압이 그렇게 시킨 것입니다. 13절에 그 내용을 보여줍니다. “여인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왕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하여 이같은 생각을 하셨나이까 이 말씀을 하심으로 왕께서 죄 있는 사람 같이 되심은 그 내쫓긴 자를 왕께서 집으로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심이니이다”(삼하14:13)
이미 과부의 송사의 해결을 위해 결정으로 하고 말을 뱉어버린 다윗왕은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압살롬을 궁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그런데 그런 과부의 지략을 눈치 챈 다윗이 묻습니다. “누가 너에게 이런 일을 시키더냐? 그가 요압이더냐?” 이 내용이 19절에 담겨있습니다. “왕이 이르되 이 모든 일에 요압이 너와 함께 하였느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내 주 왕의 말씀을 좌로나 우로나 옮길 자가 없으리이다 왕의 종 요압이 내게 명령하였고 그가 이 모든 말을 왕의 여종의 입에 넣어 주었사오니”(삼하14:19) 이어 왕께 고백합니다. “이는 왕의 종 요압이 이 일의 형편을 바꾸려 하여 이렇게 함이니이다”(삼하14:20)
결국 다윗은 도망가 있는 압살롬을 불러들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어떤 아들인지를 잘 아는 다윗은 여전히 심기가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내 그 녀석 보기 싫으니 그의 집으로 가게 하라” 아들을 보기 싫어하는 다윗의 모습이 2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삼하14:24)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모의 마음, 못나고 성품이 악한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과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2년 동안 다윗은 압살롬을 대하지 아니합니다. 어그러진 가정의 모습, 슬픈 가정의 모습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영적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중요한 일을 할 때에는 먼저 기도하므로 하나님께 뜻을 구해야 합니다.
다윗의 신하 요압장군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물었어야 했습니다. 압살롬을 용서하고, 궁안으로 들여오는 것이, 이스라엘 전체를 위해 맞는 것인지, 자신의 책략으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여쭙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십니다. 묻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왜 요압이 그렇게 했겠습니까? 요압은 처음부터 정치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장남인 암논은 압살롬에 의해 죽었습니다. 세자의 자리는 끝났어요. 그 잘생긴 압살롬은 백성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습니다. 요압의 생각에, 앞으로 왕의 자리는 압살롬이 될 것이라는 자신의 예측이 맞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요압은 압살롬의 편에 섰습니다. 그 모습은 동시에 압살롬이 백성들의 마음을 사는 일이었습니다. 압살롬이 왕이 될 때에 그 공로로 인해 자신은 계속해서 제2인자의 자리에 설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권모술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아니었어요. 결과는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다. 권력에 마음을 빼앗긴 압살롬이 아버지를 배반하고 반란을 일으킵니다.
오늘날에도 자신의 유익을 기준으로 상황을 만들어가기 위해, 상관이든 동료든 주변 사람들을 조종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보통 자신의 머리가 좋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일을 그렇게 몰아갑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대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겠는가? 말씀에 비추어 행하지 않고 인간의 계획으로 행하려하면 결국 무너지는 것입니다. 자기도 죽고, 남도 죽고, 가정도, 단체도, 국가도, 심지어는 교회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일로 하나님은 정말 기뻐하실까? 말씀에 비추어보고 또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알려 주십니다. 아니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인간적인 감정에 끌려가서는 아니됩니다.
이 모습은 바로 다윗이 다윗답지 못한 모습입니다. 아들이기 때문에, 핏줄이기 때문에, 압살롬이 어떤 성품의 소유자인 줄 알면서도 압살롬을 받아 들입니다. 어떤 처벌도 없이 들이게 되니, 아들은 잘못을 깨달을 기회도 없었습니다. 방종으로 치닫습니다. 여전히 자신만이 최고인 줄 압니다.
오늘 말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요압장군이 계속해서 아버지 다윗과 자신 사이에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하지 못한다 생각하니, 압살롬이 어떤 일을 벌입니까? 30절과 3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 하니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더니 31.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 하니”(삼하14:30~31)
왜 불을 질렀겠습니까? 아버지인 다윗 왕이 자신을 용납하고 세자의 자리에 앉히는 일에 요압장군이 중간 역할을 제대로 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압장군을 신뢰하는 다윗은 요압의 제안을 받아드리고 압살롬과 화해를 하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 일로 이어지는 일은, 기가 오를 대로 오른 압살롬의 반역입니다.
이제 이 새벽에 주시는 말씀이 교훈을 가슴에 담고 우리가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첫째, 중요한 일을 할 때에는 먼저 기도하므로 하나님께 뜻을 구하게 하옵소서!
내게 유익한 것 같으니 책략으로 권모술수로, 내 뜻대로 일을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 중에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소서!
둘째,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인간적이고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리지 말게 하옵소서!
기도하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분별력을 잃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사로운 감정을 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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