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사무엘하2:24-3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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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요압과 아비새가 아브넬의 뒤를 쫓아 기브온 거친 땅의 길 가 기아 맞은쪽 암마 산에 이를 때에 해가 졌고
25. 베냐민 족속은 함께 모여 아브넬을 따라 한 무리를 이루고 작은 산 꼭대기에 섰더라
26. 아브넬이 요압에게 외쳐 이르되 칼이 영원히 사람을 상하겠느냐 마침내 참혹한 일이 생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언제 무리에게 그의 형제 쫓기를 그치라 명령하겠느냐
27. 요압이 이르되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무리가 아침에 각각 다 돌아갔을 것이요 그의 형제를 쫓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28. 요압이 나팔을 불매 온 무리가 머물러 서고 다시는 이스라엘을 쫓아가지 아니하고 다시는 싸우지도 아니하니라
29. 아브넬과 그의 부하들이 밤새도록 걸어서 아라바를 지나 요단을 건너 비드론 온 땅을 지나 마하나임에 이르니라
30. 요압이 아브넬 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무리를 다 모으니 다윗의 신복 중에 열아홉 명과 아사헬이 없어졌으나
31. 다윗의 신복들이 베냐민과 아브넬에게 속한 자들을 쳐서 삼백육십 명을 죽였더라
32. 무리가 아사헬을 들어올려 베들레헴에 있는 그의 조상 묘에 장사하고 요압과 그의 부하들이 밤새도록 걸어서 헤브론에 이른 때에 날이 밝았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행할 때
어제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시고자 계획하셨습니다. 이제는 사울왕도 세상을 떠났으니 거칠 것 없이 다윗이 바로 왕이 되는가? 그렇지 않았다고 했어요. 여전히 남아 있는 전투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해발 930미터의 요새인 헤브론 성읍에서 유다지파의 왕이 되었으나, 북쪽에는 사울왕의 권력을 차지하고자, 사울왕의 신하였던 아브넬 장군이 야심을 품고, 사울왕의 넷째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옹립하고, 자신이 실제 권력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므로 북에는 열한지파 연합체의 왕으로 이스보셋이 세워졌고, 남쪽지방 유다 한 지파의 왕으로 다윗이 세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실 것인데, 아직 그 때가 안 된 것입니다. 앞으로 7년 6개월 뒤에나 될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원하는 바가 있고, 그것이 하나님보시기에도 아름다운 것이요, 이루기를 위하여, 우리가 고군분투할 때가 있지만, 분명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때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사람이 그 때를 당기거나 또는 미룰 수는 없습니다. 다만 믿음의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주어진 사명과 소임을 다하며, 그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기다리는 때에 하나님은 어디 계실까요? 나의 간절한 마음과 상관이 없이, “네 때가 아니다”라고 어디 먼 곳에 가서 계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 때가 될 때까지 지켜보시면서, 그리고 함께 기다리십니다. 기다릴 때에 무엇을 하실까요? 기다리는 동안도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크게는, 그 때에 응답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환경과 상황을 만들어 가십니다. 이 영역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 노력한다고 해서, 국가 경제가 회복이 되고, 북한이 야욕을 버리고, 주변 국가의 주력 산업이 변하여 내 뜻대로 움직여질까요? 그래서 그 주력산업이 내가 종사하는 사업과 연관이 있으니, 내 사업이 대박을 터뜨리겠습니까? 우리가 할 수 없는 영역이에요.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끌고 가십니다.
그런가 하면 작게는, 그 한 사람, 기도하며 노력하는 한 사람의 생각과, 성품과, 건강과, 믿음도 더 다듬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그 때가 왔을 때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때가 왔을 때에, 그 응답을 감당할만한 존재로 세우셔서 일을 이루십니다. 이 영역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에,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래 됐다. 대충하자.” 그러실까요?
하나님의 때는 하나님의 영역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요셉을 보십시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가 오기 위하여,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모세를 예로 보겠습니다. 모세가 자기 민족을 사랑합니다. 어찌하든 돕고 싶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혈기로 애굽 병사를 때려죽이고 그 시체를 모래로 묻었습니다. 발각이 되어 도망자가 되었지요. 미디안 광야로 피신하여 졸지에 애굽의 왕자가 일개 무명의 양치는 목자가 됩니다. 40년의 세월이 흘러요.
이 때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을까요? 말씀드렸습니다. 상황, 환경, 여건, 조건, 만들고 계시며, 그 때를 준비하시죠. 또한 동시에 모세를 준비시키십니다. 성품을 온유한 자로 만들고, 그리고 양들을 치며 미디안 광야의 지형지세를 잘 파악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에 그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지역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는 길에 아말렉 족속과 전쟁도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그 준비가 되었을 때에, 즉 우리의 눈에는,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모세 앞에 출현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4장 19절의 말씀이에요.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출4:19)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제 때가 되었다.” 는 것이지요. 무엇을 보여줍니까? 그 때까지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며, 환경, 상황, 여건, 조건 만드셨으며,
또 한편으로 그의 사랑하는 종, 모세를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 부강한 나라 애굽의 왕자에서 졸지에 살인자가 되고 도망자가 되어, 그 드넓은 미디안 광야에서 한 점 무명의 양치는 목자로, 고생하며 수고하는 모세를, 한 해, 두 해, 세 해, 4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언제나 그를 바라보시며, 함께 기다리시며, 그의 성품을 그의 인격을 다듬어 가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때는 저도 여러분도 경험하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경험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날이 오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요. 매일 새벽을 깨우며 기도의 제단을 쌓으며, 간절한 염원을 기도로 아뢰는 주의 자녀들을, 우리 하늘 아버지는 결코 그냥 내 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그 때가 옵니다.
다윗의 군대와 이스보셋의 군대가 드디어 충돌합니다. 전투가 시작되었어요. 이 과정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3장 1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삼하3:1)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다윗의 편에서는 요압 장군이 등장하고 이스보셋 편에서는 아브넬 장군이 등장합니다. 사무엘 하에 요압장군의 이름이 계속 나올 것입니다. 요압이 누구인가 하면, 13절에 말씀대로,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조카지요. 아주 용맹합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야심이 가득 찬 인물입니다. 후에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죽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사무엘하를 읽어나가면서 우리가 그런 그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양 진영이 대치한 상황에서 북왕국의 아브넬 장군이 유다왕국의 요압 장군에게 제안합니다. “젊은 청년 용사 열 두명씩을 선발하여 대결하게 하자” 요압장군이 이 제안을 받아드립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무승부입니다. 15절과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일어나 그 수대로 나아가니 베냐민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편에 열두 명이요 다윗의 신복 중에 열두 명이라 16.각기 상대방의 머리를 잡고 칼로 상대방의 옆구리를 찌르매 일제히 쓰러진지라 그러므로 그 곳을 헬갓 핫수림이라 일컬었으며 기브온에 있더라”(삼하2:15~16) 양쪽 24명의 젊은 용사들이 다 죽었습니다. 무승부입니다. 그래서 전쟁은 전면전으로 이어집니다.
이스보셋의 장군 아브넬의 군대가 밀립니다. 도망칩니다. 그때에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셋째 아들 아사헬이 아브넬 장군을 쫓다가, 실력이 출중한 아브넬 장군의 창에 찔려 전사합니다. 그러므로 죽은 아사헬의 형인 요압장군에게 북왕국의 아브넬 장군은 철천지원수가 됩니다.
요압 장군과 그의 또 다른 동생 아비새가 아브넬 장군을 쫒습니다. 시간이 흘러 서산에는 해가 지고 있는 때에, 작은 산꼭대기로 피한 북왕국의 아브넬 장군은 자신의 군대를 쫓아오는 요압장군을 향하여 휴전을 제의합니다. 2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브넬이 요압에게 외쳐 이르되 칼이 영원히 사람을 상하겠느냐 마침내 참혹한 일이 생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언제 무리에게 그의 형제 쫓기를 그치라 명령하겠느냐”(삼하2:26)
상황이 불리한 아브넬 장군은 “그의 형제 쫓기를 그치라 명하라”고 제안합니다. “같은 동족아니냐? 다 같이 죽으려고 하느냐?” 그때에 요압장군이 응대합니다. 2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압이 이르되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무리가 아침에 각각 다 돌아갔을 것이요 그의 형제를 쫓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삼하2:27) 무슨 말이겠습니까? “네가 먼저 싸움을 걸어오지 아니했으면, 아침에 돌아갔을 것이요, 이렇게 쫓을 일도 없었을 것이 아니냐?”
더 이상 쫓지 않고 요압장군과 그의 군대는 돌아옵니다. 이 날의 전투에서 다윗의 군대가 승리하였습니다. 30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군대는 열아홉명이 죽었는데 아브넬의 군대는 삼백육십명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요압장군은 자신의 동생 아사헬을 잃었습니다. 요압이 복수를 다짐합니다. 그러므로 나중에 그럴 기회를 노리다가 다윗이 말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를 죽이고 맙니다. 다음 장 3장 27절에 가서 보시겠습니다.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더불어 조용히 말하려는 듯이 그를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 거기서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말미암음이더라”(삼하3:27) 전쟁은 이러한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영적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거슬러 행한 자는 반드시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동족간의 전쟁은 모두에게 피해를 주었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다윗이 왕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고 권력을 갖고자 이스보셀을 왕으로 세운 북왕국의 아브넬 때문이었습니다. 본인도 비참하게 삶을 마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말씀을 통해 그 뜻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내 삶에 그 뜻이 이루어지는 날을 믿음과 소망 중에 바라보며 주어진 사명과 소임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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