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사무엘하2:1-7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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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
2.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3. 또 자기와 함께 한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윗이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하니라
4.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5.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들을 보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그를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6. 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7.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지어다 너희 주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 족속이 내게 기름을 부어 그들의 왕으로 삼았음이니라 하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내 맘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께 여쭈어라
다윗의 피난생활은 끝이 났습니다. 사울 왕이 죽게 되자 더 이상 그를 쫓는 자가 없습니다. 블레셋 왕 아기스의 신세를 지고 살았던 이방 땅 시글락을 떠나 이제 고국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도피하며 살아온 세월이 짧지 아니했으니 10년이었습니다.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려 할 때에 그는 성막이 있는 ‘높’이라는 곳으로 피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국경을 넘어 ‘가드’로 피하고, 그 다음에는 ‘아둘람’으로 피하고, 그 다음에는 ‘유다산골’로, 그 다음에는 ‘십 산골’과 그 다음에는 ‘마온,’ 그 다음에는 ‘엔게디’로 그 다음에는 ‘바란광야’로....., 그렇게 이곳, 저곳, 열 여섯 번씩이나 피난처를 바꾸어가며 사울의 추적을 피해서 살았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날들이었습니다.
그러한 도피생활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고향이 있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살기를 학수고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돌아가게 되었을 때에, 다윗이 먼저 한 일이 있으니, 그것은, 들어가야 하는지, 들어간다면 어느 성읍으로 가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며 여쭙니다.
10년의 도피생활은 다윗을 이처럼 신앙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결코 경거망동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겠습니까? 아니면 사울왕의 궁이 있었던 당시 이스라엘의 수도 기브아로 가겠습니까? 그럴 수 있겠지요. 그렇게 입성을 해야, 왕으로 옹립 받는 위치를 확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너무나 뻔한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로 여쭙고 있는 것이에요.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삼하2:1)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하시는데, 먼저는 “올라가라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라” 말씀하시고, 둘째는 어느 성읍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고향 땅, 베들레헴도 아니요, 사울왕의 궁이 있는 기브아가 아니에요. 헤브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헤브론은 요르단 강 서쪽 지구 남부에 위치한 곳으로,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해발 930m에 높이에 있는 성읍입니다. 천연적인 요새입니다.
해발 930미터의 요새입니다. 무엇을 암시합니까? 전투가 있을 것을 암시합니다. 왕이 되기 위하여, 그곳에서 성을 쌓고, 힘을 키우고, 전력을 보강하고, 그리고 전투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이제 사울왕이 죽었으니 다윗은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다.” 생각할 수 있어요. 백성들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를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기억합니다. 블레셋의 골리앗 장수와 겨루어 이긴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승전하고 입성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여자들이 노래하며 외쳤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삼상18:7). 사울과 비교하여 다윗의 공이 더 뛰어나다는 표현이었어요. 그런가하면 사울은 하나님께서 버리신 사람이요, 다윗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신 사람입니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사울 왕이 그렇게 혈안이 되어 잡아서 죽이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살아남은 존재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왕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드디어 그 날이 왔구나! 내 어릴 적에 주의 종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내 머리에 기름을 부을 때에,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 예언하셨는데, 드디어 그 날이 왔구나!” 그랬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그로 하여금, 더 준비하게 하십니다. 사울 왕이 죽고 나서 이스라엘 전체 통일왕국의 왕으로 세움 받기까지 7년이란 세월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전쟁의 대상은 동족입니다. 사울 왕이 죽었으나 사울 왕에게 충성하던 자들 중에 사울왕의 권력을 갖기를 원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세상 어디에나 그런 모습이 있지요.
사울왕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사울왕의 아들 중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서 여전히 살아 있는, 이스보셋이라는 아들이 있었어요. 그를 왕으로 세우고 실제로는 자신이 권력을 휘두르려고 하는 장수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이 아브넬입니다. 이런 모습은 세상 어디에나 있어요.
요즈음 KBS에서 주말 드라마로 방영되는 태종 이방원이라는 드라마가 인기가 있어요. 조선건국을 한 태조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이 이방원입니다. 그런데 그는 고려의 기운이 다하였다 여겨 아버지 이성계의 편에 서서 새 나라를 건국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고려의 왕이 살아 있습니다. 백성의 신망을 잃은 우왕을 폐위시키고, 이어 그의 어린 아들 창왕까지 폐위시킵니다. 그리고 그 왕의 자리에, 고려의 제20대 국왕인 신종의 7대손인 정창군을 공양왕으로 허수아비 왕으로 옹립시킵니다. 결국 3년을 못 넘기고, 그 왕을 폐위시키고, 유배시키고, 사형시킵니다. 그리고 이성계가 왕으로 세워지고 조선이 시작됩니다.
함께 성경본문 2장 8절과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울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 9.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더라” (삼하2:8~9) 그러므로 한 나라에 왕이 둘입니다. 다윗은 유다족속의 왕이요, 또 한 왕은 그 외 열한지파의 왕이니, 사울왕의 아들 이스보셋입니다. 무엇을 암시합니까?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운 아브넬 장수의 군대와 유다지파의 왕이 된 다윗과의 전쟁이 시작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영적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로,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결정해야 합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사울왕이 죽었습니다. 당연히 돌아갈 수 있습니다. 아주 상식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어느 성읍으로 가야 할지, 고향도 아니었습니다. 기브아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헤브론으로 가라하셨습니다. 기도할 때에 주의 뜻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제가 선교지에서 안식년을 가질 때에, 외국에 학위과정으로 유학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지진 이후, 수업의 회복을 위해 가건물 형태라도 교실을 지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또한 학교를 짓지 위해 땅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국에서 목회하라고 청빙할 때에, 들어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당연히 해야지!” 사람들은 생각하기에 너무나 상식적인 일 같지만, 기도하므로, 전심으로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싸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2003년도에는 한국의 한 대형교회에서의 청빙을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기도할 때에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깨닫게 되었지요. “그래 잘 한 것이야!” 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셨기 때문이지요. 그때에 들어왔다면 네팔에 신학교도 리빙스톤학교도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결정합니까? 기도할 때에 주께서 알게 하신 것이지요.
국내에서 목회를 하면서도 경험합니다.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그 일의 해결점을 곰곰이 생각하면 “이렇게 해야 하겠구나!” 경험에 의해서, 지식에 의해서, 상식적이기에, 나름 결정을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새벽에 주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면, “아~! 이런~!” 주께서는 전혀 다른 생각을 주십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더 깊이 기도에 들어가면 깨달음이 옵니다. 그래서 계획수정이에요. 주의 뜻대로 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선을 이루게 됩니다. 어떤 일은 즉시로, 어떤 일은 시간을 두고 결국 최선의 모습으로 맺게 하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도, 여전히 내가 흘려야 할 땀이 있고 내가 드려야 할 헌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종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당연히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보십시오. 아비의 양을 칠 때에 야수들의 와서 양을 물어 가고자 할 때에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나서서 사자의 이빨과 곰의 발톱 앞에서 어린 양들을 건져냅니다. 골리앗 장군의 이마에 물맷돌로 던져 그 돌이 박힐 정도로 맞혀 이기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으나....., 그 때부터 고난이 시작됩니다. 10년간의 피난생활을 해야 했어요. 그리고 사울왕이 죽었으니 이제 바로 왕으로 등극 될 것 같은데 아직 7년 6개월 동안 다시 치러야 할 전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역이 있습니다. 일꾼을 택하시고, 세우셔서, 사명 감당케 하시고, 하나님이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런가하면 사람의 영역이 있습니다.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시고, 신체를 주셨으니, 내 손과 발을 사용하고, 머리를 사용하고, 붙여주신 사람들과 협력하고, 사람편에서 여전히 감당해야 할, 흘려야 할 땀과 수고가 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건강도 지혜도 물질도 주시고 사람도 붙여주시는 것입니다. 주께서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계획하신 그 날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에디슨은 “천재는 1프로의 영감과 99프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라고 표현했어요. “1프로의 영감!” 퍼센테이지로는 작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이 없이는 백날 노력해도 성공은 없으며, 영감을 주셨어도, 내가 땀 흘리고, 수고하지 않으면 그저 꽝이요, 허당인 것입니다.
셋째, 목표를 이루어 갈 때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正道(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다윗의 모습을 보십시오. 사울이 죽었을 때에 적군은 그의 시신을 성벽에 박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위험을 무릅쓰고 성벽에 달린 사울왕의 시신을 거두어, 정성으로 다해 장사를 치룬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향하여 다윗은 선정을 베풉니다. 4절 후반부에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을 장사한 사람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니이다 하매” 그때에 다윗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5절과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령들을 보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주 사울에게 이처럼 은혜를 베풀어 그를 장사하였으니 여호와께 복을 받을지어다 6.너희가 이 일을 하였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삼하2:5~6)
오히려 그들을 칭찬하고, 그들을 격려하며, 그들에게 상을 베풉니다.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설 그 사람들을 향하여 넓은 도량으로 대합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비방할 거리를 찾아서라도 서로를 비방하는 정치권의 모습은 정말 가관입니다. 세상이 그렇지요.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일을 이룸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그것은 성품이요, 인격에서 비롯됩니다. 오랫동안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알아가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즉 수직관계가 똑 바로 설 때에 수평적인 관계도 올바르게 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것이 正道의 기준인 것입니다.
참으로 주의 할 것은,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없이 인간적인 관계가 앞서게 되면 시간이 지나고 나서 후회하게 됩니다. 당장 사람의 마음은 살지 몰라도, 손해 보지 않고 일이 이루어질지 몰라도, 하나님은 아니시기 때문에, 양심에 상처를 받습니다. 正道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와 같은 자의 손을 들어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러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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