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사무엘하3:6-1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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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있는 동안에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
7. 사울에게 첩이 있었으니 이름은 리스바요 아야의 딸이더라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과 통간하였느냐 하니
8.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하게 여겨 이르되 내가 유다의 개 머리냐 내가 오늘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의 형제와 그의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
9.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루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10. 그 맹세는 곧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겨서 그의 왕위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세우리라 하신 것이니라 하매
11.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두려워하여 감히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니라
12. 아브넬이 자기를 대신하여 전령들을 다윗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 땅이 누구의 것이니이까 또 이르되 당신은 나와 더불어 언약을 맺사이다 내 손이 당신을 도와 온 이스라엘이 당신에게 돌아가게 하리이다 하니
13. 다윗이 이르되 좋다 내가 너와 언약을 맺거니와 내가 네게 한 가지 일을 요구하노니 나를 보러올 때에 우선 사울의 딸 미갈을 데리고 오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고
14. 다윗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전령들을 보내 이르되 내 처 미갈을 내게로 돌리라 그는 내가 전에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로 나와 정혼한 자니라 하니
15. 이스보셋이 사람을 보내 그의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그를 빼앗아 오매
16. 그의 남편이 그와 함께 오되 울며 바후림까지 따라왔더니 아브넬이 그에게 돌아가라 하매 돌아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권력의 마력과 그 마력에 빠진 자의 멸망
오늘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권력자가 억지로 권력을 찬탈하고 누리려고 할 때에 어떻게 멸망해 가는지를 보게 됩니다. 사울왕의 넷째 아들 이스보셋을 허수아비 왕으로 세워놓고 실제 권력을 쥔 아브넬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여러분, 권력에는 신비한 마력이 있습니다. 힘이 없던 자가 힘이 생기면 그 힘을 행사하고 싶어 합니다. 독단적으로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을 추진합니다. 결국 사건이 터지게 되었으니, 아브넬 장군이, 그가 섬기던 왕, 사울왕의 첩이었던 리스바를 취합니다. 이 모습은 “내가 사울왕의 권세를 쥐었다”라는 시위이기도 합니다.
이 모습에 이스보셋 왕이 경악합니다. 이스보셋도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자 합니다. 최고의 권력은 결국 충돌하게 마련이지요. 이스보셋 왕이 불편한 심기를 가지고, 아브넬 장군의 잘못을 직언합니다.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울에게 첩이 있었으니 이름은 리스바요 아야의 딸이더라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과 통간하였느냐 하니”(삼하3:7)
그때에 권력자 아브넬의 속내가 드러납니다. 8절 말씀입니다.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하게 여겨 이르되 내가 유다의 개 머리냐 내가 오늘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의 형제와 그의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삼하3:8)
무슨 뜻입니까? “내가 유다의 개 머리냐?” “나를 그렇게 한 마리 개처럼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여기느냐?” “내가 다윗으로부터 당신의 가문을 지켜주고 있는데, 감히 그 은혜를 알지 못하고, 이미 죽은 사울왕의 첩 중에 한 사람 취한 것을 가지고, 나를 죄인 취급하느냐?” 무섭죠? 이 모습이 바로 권력의 마력에 걸린 자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권력의 마력이란, 권력을 쥔 자가 그 권력을 나누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권력을 넘보는 자가 있으면, 그가 누구일지라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권력은 부모도 죽입니다. 로마의 폭군 네로는 권력을 나누려는 모친을 독살했고, 수나라 양제는 아버지인 문제와 형을 독살했습니다. 권력은 자식도 죽입니다. 당나라 고종의 후비였던 측천무후는 대권을 잡기 위해 자신의 친아들을 포함한 세 아들을 독살했습니다.
이 권력의 마력에서 빠져 나오기란 너무 힘들어서, 언제 풀려나올 수 있는가? 또 다른 권력자에 의해 처절하게 죽을 때에야 비로소 그 마력에서 풀려나고, 기고만장했던 자신의 모습을 보고 후회막급하게 됩니다.
그래서 권력이 마력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견제세력이 필요합니다. 최고의 견제세력은 누구일까요? 민주국가에서는 권력을 행정부와 입법부와 사법부로 나누어 서로를 견제합니다. 특별히 대통령이 있는 행정부의 독단적 결정을 견제합니다.
그러나 권력은 권력자 개인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견제세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 위에 더 높은 상전이 있음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늘 인식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 세력을 아시안 사회에서는 백성이라고 하고 또는 국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고대 중국에서는 땅의 권력자를 제어할 수 있는 최고의 권력주체를 天(천), 즉 하늘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이 하늘이 누구인가? 구한 말 동학사상에서는 ‘人乃天(인내천)’이라 하여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여겼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평등사상을 강조했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하고 있으니, 골로새서 4장 1절에 말씀합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골4:1)
권력의 마력에 포로가 되지 않은 자들도 있습니다. 바로 하늘에 상전이 있음을 아는 자들이에요. 미국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조지 워싱턴이 그 중에 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그가 독립전쟁의 총사령관이던 시절, 장교들이 그에게 몰려와 “아메리카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조지 워싱톤은 “그런 헛된 마음을 버리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거절했습니다. 그 후 일부 장교와 병사들이 쿠데타 계획을 꾸미자, 이를 알게 된 그는 진심으로 그들을 설득해 마음을 바꿔놓았습니다. 이 일을 두고 후에, 미국 제3대 대통령이 된 토머스 제퍼슨은, “우리의 독립혁명은 대부분의 다른 혁명과 달리, 단 한 사람의 자제심과 덕성에 힘입어 성공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에 상전이 있음을 아는 자는, 자신이 최고 권력자가 아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로 그 권력을 사용하는 것이지, 그 권력을 결코 독단적으로 휘두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윗을 세웠다는 것을 모르는 아브넬이 아닙니다. 그러나 권력에 마력에 빠졌습니다. 멸망을 자초하는 일이었습니다. 9절에 그의 고백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이루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삼하3:9)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이 말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브넬 자신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뜻을 내가 거스리거나 반대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게 벌을 내리실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이스보셋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협박입니다. 그 다음절에서 드러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그 맹세는 곧 이 나라를 사울의 집에서 다윗에게 옮겨서 그의 왕위를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세우리라 하신 것이니라 하매”(삼하3:10)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사울왕의 후손을 통해서는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협박조의 말입니다. 그럴 때에 심약한 이스보셋이 두려움에 떱니다. 11절에 보니 이스보셋 왕은 이 아브넬 장군을 두려워하여 감히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아브넬 장군의 마음이 바뀌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졌습니다. 이후로 백성들의 마음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스보셋 왕도 아니요, 자신도 아님을 압니다. 백성들은 다윗이 그 나라를 다스리기를 바라고 있음을 본인이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다윗과 화친을 맺어야 하겠지요. 그 길이 살길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계략을 세웁니다.
12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아브넬이 자기를 대신하여 전령들을 다윗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 땅이 누구의 것이니이까 또 이르되 당신은 나와 더불어 언약을 맺사이다 내 손이 당신을 도와 온 이스라엘이 당신에게 돌아가게 하리이다 하니”(삼하3:12)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가 있으니, 다윗왕 아래에서 자신이 2인자의 권력을 갖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북쪽 열한지파의 대표자의 모습으로 장로들과 백성들을 설득하여 다윗에게 넘기겠으니 나를 당신의 수하에 두시되, 그에 해당하는 위치를 보장해 달라는 심산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 제안을 받아드립니다. 동족 간에 피를 부르는 전쟁 없이 그렇게 통일이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 언약의 체결을 위해서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합니다. 우선 사울왕의 딸, 자신과 정혼한 미갈을 데리고 오라고 그에게 조건을 제시합니다.
이 제안은 북쪽의 열한지파의 백성들 앞에서, 바야흐로 이스라엘 전체 왕의 권력이, 사울에게서 그의 딸의 남편인 다윗으로 옮겨졌음을 선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북쪽 열한지파 백성들도, 다윗을 남 왕국 유다족속의 사람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사울왕의 사위다. 남이 아니다. 우리와 족속의 대표이자 왕이었던 사울왕과 연을 맺은 자이다.” 여기게 되고 인정하게 되니 다윗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브넬 장군의 의도, 다윗 바로 아래 권력자로 등극하고자 하는 아브넬의 의도를 누가 파악합니까? 바로 다윗 바로 아래 최고의 권력을 쥐고 있는 요압이 압니다. 권력에 민감한 자들은 그런 쪽으로 셈이 빠르지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 요압장군이 아니에요. 그러한 태도가 어떻게 나타납니까? 24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요압이 왕에게 나아가 이르되 어찌 하심이니이까 아브넬이 왕에게 나아왔거늘 어찌하여 그를 보내 잘 가게 하셨나이까 25.왕도 아시려니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온 것은 왕을 속임이라 그가 왕이 출입하는 것을 알고 왕이 하시는 모든 것을 알려 함이니이다 하고” (삼하3:24~25)
결국 요압은 다윗 몰래 왕궁을 떠나 기브아로 가고 있는 아브넬 장군을 잡아다가 죽입니다.
오늘 말씀의 영적교훈이 있습니다. 권력은 마력이 있습니다. 그 마력에 포로가 되지 않는 길은 하늘에 상전이 있음을 늘 인식하며 그를 늘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권력도 주시고, 또한 거두시고, 주장하심을 깨닫고, 겸손히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내가 아닌데, 자신의 욕심으로 권력을 취하려는 자는 결국 멸망한다는 교훈을 우리의 가슴에 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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