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신명기24:10-2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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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네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줄 때에 너는 그의 집에 들어가서 전당물을 취하지 말고
11. 너는 밖에 서 있고 네게 꾸는 자가 전당물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12. 그가 가난한 자이면 너는 그의 전당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13. 해 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
14.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15.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16.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18.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22.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常識的(상식적)인 계명 III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24장에도 십계명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중에, 이 수평적인 사랑, 이웃사랑에 관한 상식적인 계명들이 계속 소개되고 있습니다.
10절부터 13절까지는 이웃에게 돈을 꾸어 줄때에 지켜야 할 자세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돈을 꾸어주면서 담보로 잡아 두어야 할 물건을, 꾸어주는 자가 그 집안에 들어가서 임의로 선택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집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세요. 돈을 꾸는 자가 무엇으로 전당물로 잡히든지, 꾸어주는 자가 결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본인이 많이 아끼는 물건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저당 잡히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라는 것일까요? 돈을 빌려주는 자의 입장에 서서, 그 어려운 마음을 헤아려주라는 것입니다. 돈을 빌리는 어려운 자를 위한 배려입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무시하거나 인격을 모독하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무시할 수 있어요.
그러나 가진 자가 늘 가진 자로 살아갑니까? 보장할 수 없어요. 가지지 못한 자가 회생하여 더 가진 자의 모습이 될 수 도 있어요. 그러므로 “가진 물질의 많고 적음으로 인하여 사람의 귀천을 따지지 말라”고 하시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참으로 귀한 가르침이에요.
그런데 돈을 꾸는 자가 너무 가난해서, 밤에 잘 때에 추위를 피해 입고 자야 할 겉옷으로 저당 잡히거든, 밤이 올 때에 반드시 돌려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에는 겉옷이 이불처럼 사용되었어요. 중동지역의 밤은 꽤 썰렁합니다. 추워요. 그런데 겉옷을 저당 잡혀서 밤에도 추위에 떨고 잠을 자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밤이 되면 그 겉옷을 잠시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이 모습도 약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뭐라고 했어요? 13절 후반부에,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복을 빌 것이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 아멘! 베푸는 사랑이니 은혜로운 사랑이요, 동시에 가난한 자를 세우는 것이니, 사회에 필요한 공의로운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을 통해 배우는 질서있는 천국백성의 삶의 모습은, 앞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행하는 것이니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 원천, 기초, 그 바탕은 언제고 사랑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은 첫째, 베푸는 사랑, 즉 은혜로운 사랑이요, 둘째는 의를 세우는 사랑, 즉 공의로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삶의 질서가 잡힙니다. 특별히 “가난하고, 병들고, 삶이 곤고한 자들에 대하여서는 긍휼히 여겨라!” 늘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마음이 바로 하늘 아버지의 마음인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지요.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 모두가 행복하게 평안하게 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바라 볼 때에 갖는 마음이에요.
자녀 중에 똑똑한 자녀가 있어요. 그래서 잘 살아요. 그러면 기쁨으로 사랑합니다. 자녀 중에 좀 쳐지고, 모자란 듯한 자녀가 있어요. 그러면 부모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그런 자녀를 볼 때에 부모는 가슴 아파하면서 사랑합니다. 그런데 좀 더 잘 사는 형이나 누나가 동생을 도와주면, 또는 동생이 형이나 누나를 도와주면, 그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기쁜 것입니다. 효도가 그런 것이지요. 부모의 마음에 있는 염려를 없애고 평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며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당시에 크리스챤이면서, 로마의 군인인 마틴(Martin of Tours)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어느 추운 겨울 날, 그가 한 시가지로 들어가고 있을 때, 거지 하나가 그를 잡고 한 푼 동정을 구했습니다. 마틴은 가진 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지는 추위 때문에 시퍼렇게 되어 떨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 마틴의 마음에 동정심이 솟구쳐 올라왔어요.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낡고 헤어진 군인 외투를 벗어서 그것을 둘로 나누어 반을 거지에게 주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한 꿈을 꾸었어요. 꿈에서 그가 하늘 보좌와 천사들과 그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로마 군복의 반쪽을 입고 계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향해 한 천사가 물었어요. “주여, 왜 주님은 낡아 헤어진 군복 반쪽을 입고 계십니까? 누가 그것을 주님께 드렸습니까?” 그 때 예수께서 미소를 띠시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답하시기를, “나의, 사랑하는 종 마틴이 나에게 준 것이니라!”
성도 여러분, 코로나19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립니다. 그리고 날은 더 추워져 갑니다. 우리교회가 오는 11월 20일에 사랑의 연탄으로 어려운 이웃을 섬기고자 합니다. 가까운 안양천 건너편 광명시에 여전히 연탄으로 겨울을 지내야 하는 분들이 있어요. 여러분 모두가 함께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물질로 드려 연탄을 사실 수 있고, 또 그날에 노력봉사로 섬길 수 있겠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의 내용도 같은 맥락의 가르침입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14절, 1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15.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오늘날에도 선진국이라 하는 우리나라에도 여전히 그날 벌어 그 날을 살아가는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가난한 선교지에는 그런 사람들이 말할 것도 없이 많지요. 네팔 카투만두에 겨울이면 매일 이른 아침 안개가 자욱하여 많이 추운데, 인력시장이 섭니다. 그야말로 삶의 무게가 버거운 가장들이 누군가에게 불려가기를 바라며 기다립니다.
저는 리빙스톤학교에서 또 신학교에서 하수도를 뚫거나 또는 담장을 보수하는 허드렛일로 필요한 일꾼을 구하러 그 곳에 갑니다. 가서 사람들을 살피지요. 체구가 건장하면 제일 먼저 불려 갑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 건강해 뵈지 않으면 9시에 되어도 불러가는 사람이 없어요. 그렇게 불림을 받지 못하여 하루 공치면 그날 가장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가족들에게 면목이 없지요. 저는 일부러 천천히 갑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자들 중에서, 한명이면 될 것을 두 명을 불러서 일감을 줍니다. 그럴 때에 늦게라고 부름을 받으니, 마음이 놓인 그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교회가 서울시 스물다섯개 구 중에 금천구에 위치해 있음은 여러 의미를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제가 정보를 받았어요. 금천구 보건소에 제가 아침마다 산돌새벽강단 말씀으로 보내주고 있는 분이 계신데, 매년 각 서울시 각 구별 자살 통계치를 보내줍니다. 작년도 통계가 이제 나왔다고......, 그 분 말씀이 감사하게도 금천구가 그 전년도 자살율 1위에서, 작년에는 2위에 자리하게 되었다고, 자살율이 좀 떨어졌다고 감사하다고 전해왔습니다.
우리교회가 할 일이 많습니다. 물론 금천구의 200여 교회와 함께 일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은 기도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코로나가 끝나면 이러한 일로 우리교회가 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이어 17절에 말씀합니다.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객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코리언 드림을 꿈꾸며 들어와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무자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면 안됩니다.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굉장히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합니다. 백인들에게는 잘 대해 주고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더욱이 교회는 그러면 안 됩니다.
서울을 벗어나 지방에 가 보면 식당에도, 농사짓는 곳에도, 또 바다에서 조업하는 사람들 중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참 많습니다. 객입니다. 나그네로 와 있습니다. 지난 여름휴가를 보내던 중에 포항에 있었습니다. 밤바다에 갈치 잡이 조업을 하는 배들이 밤새 불이 켜 있어요. 고용된 외국인 노무자들이 밤 새워 일합니다. 제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모두가 곤하여 잠든 밤에도/ 잠을 이룰 수 없는 사람들/ 家長(가장)들의 불빛이 바다를 밝힌다/ 강한 바람 폭우가 한 차례 지나고/ 별도 달도 구름 덮고 잠이 든 까만 밤/ 물결 따라 흔들리는 것은 몸만이 아니니/ 바다 건너 저편에는 내 나라 있겠지/ 오늘도 남편과 아빠 그리워하며/ 無事歸還(무사귀환)을 기도하는 가족 생각에/ 밤을 벗 삼아 새운 날들이 더는 셀 수 없구나/ 고향이 그리우면 다시금 부르는 나만의 노래/ 레썸 피리리~! 레썸 피리리~!/ 그 날이 올 거야! 바빠지는 손놀림, 꿈을 낚는다/ 삶의 애환은 밤바람에 날리고/ 레썸 피리리~! 레썸 피리리~!
“레썸 피리리” 라는 말은 네팔사람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장 즐겨 부르는 흥겨운 가락의 노래 가사입니다. 가족들이 먼 나라 한국에 가서 돈벌기 위해 일하는 아버지 또는 아들의 무사귀향을 기다리겠지요. 우리가 잘 해 주어야 합니다.
이어 나오는 말씀 중에는 어려운 자들 중에서 특별히 고아와 과부에 대한 배려와 도움에 대한 내용이 반복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17절에는 “고아나 과부의 옷은 전당잡지 말라.” 무슨 말입니까? “그냥 도와주어라” 그 말씀이지요. 19절에는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악착같이 다 베어 가지고 가지 말고, 좀 남겨 두어라.” 20절에는 감람나무 열매 딸 때에도 그리하고, 또 21절도 마찬가지에요. “포도원에서 포도를 딸 때에도 좀 남겨두어라” 같은 맥락의 가르침입니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도우라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당회에서는 지난 5월 가정의 달에는 남편대신 가장의 자리에서 자녀 양육을 위해 수고하시는 엄마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그들의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가을 하반기 장학금을 수여할 때에도, 박해범 장로님과 제가 활석장학회에 건의하여 중단되었던 고등학교 학생들, 같은 처지에 있는 가정,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자고 건의하여 집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연합권사회의 섬김과 수고의 손길을 통해서 김장을 해 두었던 묵은 김치, 코로나로 인해 먹지 않고 있으니 돼지 뼈를 넣고 김치찜을 만들어 홀로되신 어르신들과 또 혼자된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오늘 말씀의 가르침대로지요.
그런데 그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장학금을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주고....., 공평성에 어긋난다.” 일리가 있어요. 그러나 오늘의 말씀처럼 우리가 나그네 된 자와 고아와 과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약한 자를 향하신 하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9절 후반부에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이 시간 우리가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새롭게 시작하는 한국교회가 그리고 우리 산돌중앙교회가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이처럼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어려운 자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모습으로 성장 변화되어 가도록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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