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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강해 31] 常識的(상식적)인 계명
운영자 2021-10-27 추천 0 댓글 0 조회 537
[성경본문] 신명기22:1-12 개역개정

1. 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그것들을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2. 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또는 네가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려 줄지니

3. 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형제가 잃어버린 어떤 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고 못 본 체하지 말 것이며

4.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킬지니라

5.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이니라

6. 길을 가다가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의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보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7.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되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8. 네가 새 집을 지을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라

9.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빼앗길까 하노라

10.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11. 양 털과 베 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

12. 너희는 너희가 입는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常識的(상식적)인 계명

 

인간의 성품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겠지요. 예를 들어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맡은 일에 대한 책임, 약속한 말을 지켜야 하는 책임, 책임이 있어야 한다. 그런가하면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죠? 교만한 사람치고 존경받거나 사랑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대부분이 상대를 무시하고 자기밖에 모르기 때문이지요.

 

사람 됨됨이의 기준을 세우는 것은 보통 사회적 전통과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 기준은 이미 세워졌으니 그 기준은 우리 인생의 창조주가 되신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만드실 때에, 사람의 성품은 이러해야 한다 이미 그 기준을 세우셨습니다. 어디에 기준을 두었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즉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람을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 여기에서 그 생기란 하나님의 생기요, 그러기에 생령은,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갖춘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본질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를 신학용어로 ‘Image of God’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란 곧 하나님의 성품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형상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사랑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16)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도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이어 말씀하시기를 사랑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요일4:16)

 

이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사랑은 크게 두 종류의 모습으로 나눌 수 있어요. 첫째는 은혜의 사랑이요, 둘째는 공의의 사랑입니다.

 

은혜의 사랑이란 베푸는 사랑이요, 공의의 사랑이란 를 세우는 사랑입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나를 사랑해주세요하면서, 받는 사랑을 더 원할지 몰라도, 사랑이란 근본적으로 상대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고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공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이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고전13:5,6)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정의가 세워지고, 진리가 드러납니다. 아무리 사랑이 지나쳐도 절대 방종으로 치닫지 않습니다.

 

쉽게 생각하면 우리가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공의를 세우는 사랑이 아닐 경우, 다시 말씀드리면 무조건적인 사랑, 무분별한 사랑일 경우, 아이는 그 사랑으로 인해 오히려 정의롭지 못하고, 악한 존재가 되든지 아니면 나약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이는 잘못된 사랑이요, 엄밀히 말하면 사랑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인간의 성품에 넣어 주신 사랑이 아닙니다. 그저 본능적인 애정일 뿐입니다.

 

사랑얘기가 길어지는데요. 한 가지만 더 나눕니다. 그러면 이 사랑은 사랑의 대상자가 누구여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창조주되신 하나님 사랑이요, 둘째는 창조된 피조물 사랑입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을 품은 자의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에 너무나 잘 드러나 있어요. 그런데 세상의 모든 법은 창조주 되신 하나님 사랑부분은 배제해버리고, 그저 수평적인 인간관계와 피조물세계에 대한 사랑으로 축소시켜버렸습니다. 그게 세상법이에요.

 

그러면 수직적인 하나님 사랑이 없이, 수평적 인간 사랑이 바르게 실천 될까요? 그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아무리 법이 좋아도, 범죄가 그치지 아니하며, 약은 자들은 법망을 피해서라도 자기사랑에 포로가 되어 이웃에게 해악을 끼칩니다.

 

오늘 신명기 22장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하나님의 성품, 즉 사랑에서 수평적인 사랑에 대해 보여주고 있어요. 즉 피조물의 세계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서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첫째는 이웃의 소유물에 관한 것이니, 이웃이 잃은 소유물은 돌려줘라 하는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 시대가 농경사회였으니 가장 귀한 소유물이 무엇이겠어요? 소나 양이 나귀가 길을 잃으면 그 가축을 끌어다가 반드시 주인에게 돌려줘라. 주인이 너무 먼 곳에 있거나 그 주인을 알지 못하면 찾으러 올 때까지 잘 돌봐줘라.

 

가축만 아니었어요. 3절에 말씀합니다. 의복도 그리고 형제가 잃어버린 어떤 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라 오늘날 이 시대에는 어떤 것일까요? 핸드폰이 그렇고 핸드백이 그렇고 심지어는 현금다발을 발견했어도 내 것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인데, 마음에 욕심이 생기면 불로소득으로 여깁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의 입장을 헤아리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사랑입니다.

 

4절에는 좀 더 적극적인 사랑실천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킬지니라(22:4)

 

이웃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 가서 도우라 어제도 있었지요. 뉴스를 통해 보았습니다. 교통사고로 대형 트럭이 가드레일을 받고 쓰러지게 되었는데 그 차를 나귀나 소처럼 세울 수는 없지요. 시민 두 사람이 차를 세우고 달려가서 그 안에 갇혀 있는 운전자를 구해내고 나니 곧 바로 ~!” 엄청난 굉음과 함께 불꽃이 하늘로 치솟으며 차가 폭발했어요.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을 잃을 뻔 했어요.

 

5절에는 무엇을 말씀합니까? 남자는 여자 옷을 입지 말고, 여자는 남자 옷을 입지 말고, 의 구별을 확실히 해라. 이 상황은 축제, 잔치와 같은 자리에서 남자가 여장을 하고 여자가 남장을 하고 흥을 돋구는 모습인데요. 자칫 창조의 질서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성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남자 아이가 어릴 적에 여자 아이처럼 너무 예쁘다고 해서, 얼굴에 화장을 해보게도 하고, 여자 옷을 입혀보기고 하면서 어른들은 재미있어 하는 것 주의해야 합니다.

 

일을 함에 있어서는 남녀평등이에요. 그러나 성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 가운데 남자로 그리고 여자로 세우신 것이니 그 모습 자체로 존중해야 합니다. 거스리면 안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창조의 질서가 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6절에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세계를 사랑하고 돌보라는 말씀으로 주십니다. 새들을 그 한 예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무위에 또는 풀섶에 지은 새둥우리에 알이나 새끼들이 있을 때에 새끼와 알은 취해도 되지만, 어미는 취하지 말아라 하는 내용입니다.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창조의 질서지요. 계속해서 종족이 소멸되지 않고 번식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 대하여서도 아버지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8절에는 공사할 때에 난간을 잘 만들어 떨어져 죽거나 다치지 않게 하라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죠. 오늘날에도 이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한 방법은 제대로 만들고 또 지키게 해서 생명이 다치거나 잃지 않도록 철저해야 합니다. 본인도 본인이려니와 남겨둔 가족이 어떻겠어요?

 

9, 10, 11절은 섞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포도원에 두 종자의 씨앗을 함께 섞어 뿌리지 말라 그러면 이것도 저것도 안된다.” 당연하지요. 논에는 벼를 심어야하고, 논두렁에는 콩을 심어야 하고, 녹두밭에 참깨를 같이 심을 사람이 없지요. 같은 이랑에 차나무와 커피나무를 함께 심어서는 아니 되겠지요. 분리를 해서 따로 따로 심어야 합니다.

 

10절에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라고 했습니다. 겨리한다함은 한 쌍을 말합니다. 키도 다르고, 다리 길이도 다르고, 성품도 다른데 같이 묶어서 일을 하게 한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효과적일뿐더러, 동물도 배려 받아야 합니다. 같은 종이 함께 있을 수 있도록...., 그래야 서로 해피하게 일 하지 않겠습니까?

 

11절에는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옷을 입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옷이 있나요? 오늘날에는 없지요. 서로 잘 짜지지도 않겠지요.

 

91011절은 영적인 교훈을 닮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문화와 유흥에 섞이지 말라는 교훈이 담겨져 있습니다. 믿는 자는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동창회 딱 두 번 참여해 보고는 다르구나! 어색하구나! 함께 어울릴 곳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에는 금하고 있는 일이, 세상에는 흔한 모습으로, 그럴 수도 있어!” 라고 생각하여 횡행하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주의해야 합니다.

 

12절에 말씀이 연관이 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입은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구별된 존재요, 성별된 존재를 나타내라. 드러내라. 하는 것입니다. 의도적으로라도, 입는 복장에라도 표를 하므로 상대방이 볼 때에 ! 하나님의 백성이구나!”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렇게 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십자가 목걸이 걸면 다 신앙이 좋은 사람일까요? 차 뒷면에 익투수 라고 하는 붕어모양으로 생긴 초대교회 교인의 상징을 붙이고 다니면, 경건한 신앙인일까요? 얌체 운전을 하지 않을까요? 정말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의 말씀대로 우리가 어찌하든지 믿는 자요, 기독교인임을 알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바른 행실입니다. 사용하는 언어에서도 나타납니다. 일을 처리하는 모습에서는 더 알 수 있지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대사라고 했습니다. 향기라고 했습니다. 삶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 갈 때에 오늘 말씀으로 주신 교훈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또한 은혜로운 사랑, 공의로운 사랑으로 살아가기는 여러분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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