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신명기9:1-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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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아 들으라 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니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2. 크고 많은 백성은 네가 아는 아낙 자손이라 그에 대한 말을 네가 들었나니 이르기를 누가 아낙 자손을 능히 당하리요 하거니와
3. 오늘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멸할 것이라
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5.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주의 은혜가 임하는 중보기도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더 먹어 갈수록 제 마음에 더 깊이 깨달아 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 생애에 일어난 모든 선하고 기쁜 일들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 젊었을 때에는 그렇게 느끼지를 못했어요.
젊은 자들의 특징이 있지 않겠습니까? “아직 육신은 튼튼하고, 머리는 명석하고, 마음에는 겁이 없으니, 내가 그저 열심히만 하면 안 될 일이 없다.” 이런 생각이 젊은이다운 생각이기도 하지요. 중년과 노년층에 이른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기백과 용기라고 생각하고 인정해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꺾인 나이가 되고, 인생 후반전에 이르고 보니, 뒤 돌아보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내가 아니었습니다. 내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내 알량한 지식과 얄팍한 경험, 그것으로 이루어질 일이 아니었습니다. 순간마다 때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아니하셨다면, 그 베풀어 주신 은혜가 아니었다면, 그런 선한 일이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며, 여기까지 이렇게 올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오늘 모세는 그것을 압니다. 너무 잘 알지요. 그가 살아온 인생의 날들이 120년입니다. 그야말로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었습니다. 죽을 운명으로 갈대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떠내려가던 때부터, 공주의 눈에 띠어 건짐을 받아, 세계 최강의 나라 애굽의 왕자로 40년, 이후로는 살인자가 되고 도망자가 되고,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는 무명의 목자로 40년, 그리고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어, 반대하는 바로왕과 전쟁을 하였고, 이제 가나안 땅 입성을 눈앞에 두고 지나온 세월이 또 40년, 그렇게 120년을 살아왔으니......, 삶이 뭔지, 인생이 뭔지, 왜 사는지, 그 이유를 너무 잘 압니다. 인생의 시작과 중간과 마지막이 무엇인지를 잘 압니다. 그러므로 그가 살아온 인생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삶의 여정이었다.” 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곧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젊습니다. 그러니 잘 모릅니다. 감이 없어요. 모세와 같은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아니에요. 같은 나이 또래의 사람들은 약속의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열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마음에 두려움이 일고, 믿음에서 떨어져서 광야에서 40년의 세월이 지나는 가운데 다 죽었습니다. 남아 있는 자들은 다음세대들이요, 여호수와와 갈렙뿐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겠습니까? 초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다.” 또 일이 잘되어 가면 “내가 이루었다. 우리가 해내었다.” 앞으로 있을 전쟁도 승리할 것이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진군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생각을 가질 수 있겠지요.
그러므로 모세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교만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그런 마음으로 살게 되면, 하나님을 멀리하고, 자기 멋대로 살아,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인데, 그것이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교만입니다. 성경적 표현으로는 목이 곧은 자의 모습이에요. 오늘 성경본문 말씀 9장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신9:6)
그 모든 놀라운 일들은 스스로 해낸 것이 아니요, 택한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인데, 깨닫지 못하고, “내가 하였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모세가 강조하며 가르치는 것입니다. “절대 교만하지 말아라” 명령하는 것이에요. 함께 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신9:5)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반대로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8:12) 라고 했습니다.
또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이 말씀은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사도 베드로가 된 다음에 고백한 것입니다. 그가 주를 섬김에 교만했어요. 남들은 어쩔지 몰라도 나만큼은 주를 따르겠습니다. 죽기까지 따르겠습니다. 호언장담했던 그였어요. 그러나 그 교만의 족쇄에 걸려, “나는 주님을 모르오” “나는 그와 상관이 없습니다.” 세 번이나 주를 부인하고, 새벽닭이 울 때에, “네가 그리 할 것이다” 말씀하신 예수님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그러한 자신이 미워 심히 통곡했었던 자, 바로 제자 베드로였습니다.
그가 다시금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용서함을 받고, 재사명을 받고, 사도가 되고,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성령 충만하게 되니 완전히 변화되었지요. 제자 베드로가 아닌 사도 베드로가 되어 지나온 인생을 돌이켜 보면서 주시는 말씀이에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겸손하여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교만하면 오던 복도 달아나요. 그러나 겸손하면 부족해도 은혜로 감싸 주십니다.
오늘의 성경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영적교훈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많은 기도,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영적교훈을 오늘 말씀을 통해 배웁니다.
보십시오.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으로 올 때에, 목이 곧은 백성, 불평과 불만이 많았던 백성, 그러므로 불순종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심지어 우상을 만들고 섬겼던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은혜가 뭡니까? 심판을 받았어야 마땅했어요.
7절과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 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
8.호렙 산에서 너희가 여호와를 격노하게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멸하려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자 중에 하나님 마음 못지않게 가슴 아픈 자가 있었으니 모세였습니다. 모세가 어떻게 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여 용서해 주옵소서! 한번만 기회를 주옵소서!” 중보하며 금식으로 기도하던 자가 모세였어요. 그러기에 그가 리더요, 민족적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26절과 2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 간구하여 이르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량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마옵소서
27.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 백성의 완악함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모세가 자기 백성의 죄악을 끌어안고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시내산으로 올라갑니다. 그곳에서 금식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빌며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십니다. 진노대신 심판대신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모습이 바로 중보기도의 모습입니다. 주가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의 모습이지요.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품은 지도자 모세의 기도입니다.
이 새벽에도 성도 여러분 기도하십니다. 믿음에서 멀어져간 자녀를 위한 어머니의 눈물어린 기도가 있어요. 못난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피멍든 가슴으로 기도하는 아내의 기도가 있습니다.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받는 교우와 동료들을 위해 기도하는 장로님과 권사님, 집사님과 구역장님의 기도가 있습니다. 중보기도입니다. 여러분이 간절히 기도할 때에 자녀가 살아나고, 남편이 살아나고, 교우들과 동료들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뭐 잘 나서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간절한 기도때문이에요.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예레미야가 그러했습니다. 다니엘이 그러했고, 에스더가 그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기도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참 중보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죄인 된 우리에게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과 은혜가 부어졌습니다.
제가 담임목사로서 제일 감사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성도가 잘 되는 것입니다. 몇 번이고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복을 빌며 기도하지요. 그러면 가장 힘든 때는 언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성도가 잘 안될 때입니다. 여러 일로 기도제목을 가져옵니다. 실직을 당했을 때에, 사업이 기울 때에, 자녀가 집을 나가서 연락도 없고 돌아오지 않을 때에, 뭔가 일이 잘못되어 재판을 받아야 할 때에, 암병에 걸린 것을 발견하고, 또는 뇌출혈과 뇌경색으로 다양한 육신의 질병의 소식을 가지고 저를 찾아옵니다.
그럴 때에 제 마음이 무겁습니다.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하나님 앞에 죄송합니다. 좀 더 목회를 잘 했어야 했는데...., 더 많이 기도를 해주었어야 했는데...., 제대로 말씀으로 양육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회개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보자로 서있는 지도자인 오늘 성경의 모세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중보자로 서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내려주시는 은혜를 경험합니다. 고치시고,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도하면,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의 긍휼이 임합니다. 은혜가 임합니다. 나에게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도 임합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재대신 화관을 씌어주시는 하나님, 슬픔대신 희락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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