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신명기4:1-14 개역개정
-
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3.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로 말미암아 행하신 바를 너희가 눈으로 보았거니와 바알브올을 따른 모든 사람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에서 멸망시키셨으되
4.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
5.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6.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9.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10.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11.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에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어둠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12.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13.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1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사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를 교훈하게 하셨나니 이는 너희가 거기로 건너가 받을 땅에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하여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렇죠?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사는가?” 라는 삶의 목표를 얘기할 때에 “행복하기 위해서”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얘기한 행복은 헬라어로 ‘유다이모니아’ 인데 그 뜻이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행복, 즉 Happiness하고 다릅니다.
사람들은 행복이란, 어떤 일종의 ‘긍정적인 감정’이라고 여깁니다. 만족함, 편안함, 기쁨과 같은 상태를 행복처럼 여깁니다. “아~! 나 행복해~!” 이런 감정적 상태는 행복감, 즉 행복한 감정이라고 표현해야 더 정확하겠죠?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행복이란 ‘훌륭한 정신적 존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살던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삶의 덕목을 이루어가는 그 과정이 행복이라고 했어요. 그것은 용기와 정의, 우정과 친절과 같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모습을 추구하고 이루어가면서, 삶의 참된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을 행복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틀리지 않아요. 행복감은 행복의 산물입니다.
그의 행복론은 이런 적용점을 제시합니다. 첫째, 사람사이에는 친밀하고 애정어린 관계를 유지하고, 즉 좋은 인간관계죠. 그러기 위해 시간도 나누고, 물질도 나누고, 사랑을 표현해야 하겠지요. 둘째, 자신이 좋아하고 가치있는 일을 추구하라는 것이었어요. 현대어로 ‘자아실현’이라는 말로 표현될 것입니다. 이루어가는 과정이 행복이 된다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좋은 것을 보는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나쁘고 선한 것이 있을 때에, 좋은 것을 선별하여 보는 습관을 갖는 것이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하고 추한 세상에서, 늘 마음을 지켜 고상함과 순수함을 유지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앞에서 언급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추구했던 그 행복을 사람들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그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이 오늘 4장의 주제이고, 신,구약 모든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니, 성경은 행복가이드라인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은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는 ‘幸福’이란 단어를 ‘福’ 이라는 단어로 사용합니다. 히브리 성경원어로 ‘야타브’라는 단어를 사용하니 그 뜻이 ‘좋다’ ‘즐겁다’ ‘훌륭하다’ ‘기쁘다’ 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삶’ 그러면, ‘복된 인생,’ 또는 ‘복 받은 인생,’ 또는 ‘복 있는 사람,’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시편 1편 1절이지요. “복 있는 사람은,” 무슨 뜻이에요. “행복한 사람이란” 그런 뜻이죠. “(행복한 사람이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팔복을 떠 올릴 수가 있어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무슨 뜻입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행복한 자이니” “천국의 그들의 것임이요” 이 시대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4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자, 이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정착하여 살게 될 내가 택한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말씀하시며 그 방법을 제시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오늘 4장에서, Keyword, 중요구절 한 절을 찾는다면 4장 40절 말씀입니다.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4장 전체를 통해 계속해서 반복되며 강조되는 행복한 삶의 조건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네게 명령하는 규례와 명령을 지켜 행하라”입니다. 그러면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복 있는 자가 될 것이며, 복된 인생으로 살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가슴에 새기며, 행함으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이 규례와 법도는 다른 말로 '토라‘라고 하는 ’율법‘으로 말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규례와 법도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셨으니 오늘 성경에는 호렙산이라고 했어요. 시내산입니다. 바로 십계명입니다. 13절과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14.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사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를 교훈하게 하셨나니 이는 너희가 거기로 건너가 받을 땅에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는 너희가 거기로 건너가 받을 땅에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단강을 건넌 택함 받은 백성이, 천국시민의 모습으로 살아갈 때에 응당 지켜나가야 할 규례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에요. 행복가이드라인이라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강조하시는지 몰라요. 1절에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5절에 또 말씀합니다.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가 들어가서 기업으로 차지할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9절에 또 말씀하시면서 “너희뿐만 아니라 네 자손들에게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명하십니다.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이 규례와 법도는 어떤 유익이 있는 것입니까? 지혜와 지식리라고 했어요. 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지혜요, 지식이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린 후에 하나님께서 그 사랑과 정성에 감동이 되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물으실 때에 “내가 지혜를 갖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원하는 바를 아뢰었습니다. 그러한 솔로몬의 모습에 흡족해 하시고 하나님께서 지혜도 주시고 물질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규례와 법도를 주신 이유는, 주의 백성들이 복되게 하시려고, 복 있는 인생으로 살게 하시기 위하여, 행복하기를 바라셔서 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질문을 가질 수 있어요.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인데...., 그리고 은혜를 힘입어 사는 것인데 율법이 뭐 그렇게 중요합니까? 하여 율법을 등한시 여기는 성도도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율법과 은혜와의 관계를 잘 알아야 합니다. 율법은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말씀 드린대로 요단강을 건너 약속에 땅에 들어간 천국백성들의 삶의 자세입니다. 지킴으로 복을 받습니다. 율법의 주제는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입니다. 십계명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제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제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이웃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우리가 이 율법을 생각할 때에 많은 경우 잘못된 생각은 율법을 무거운 멍에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타종교의 자력구원을 생각하여 “억지로라도 지켜야 해! 힘들어도 지켜야 해!” 그런 생각을 갖고 마치 족쇄에 묶인 것처럼 자유함이 없는 그런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이 연상되어 더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키면 의인, 지키지 못하면 죄인! 그런 개념은 버려야 합니다.
율법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감사함으로 지켜야 합니다. 복된 인생으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그러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이 율법을 감사함으로, 능동적으로 지켜 나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성령이 충만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이 규례와 법도를 즐거워함으로 지켜나갑니다. 무겁고 힘들어 지켜야 하는 억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율법의 멍에를 지고 힘들어하다가 지키지 못한 당시 바리새인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정죄당한 자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이세요. “다 내게로 와서 함께 멍에를 메자. 나와 함께 메면 율법이 무겁지 않아. 쉽고 가벼우니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어! 그러므로 참 쉼과 안식을 얻을 수 있단다. 행복한 삶으로 살 수 있단다.” 깨달음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내일부터 이 규례와 법도,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십계명을 깊이 묵상해 갈 것입니다. 오늘도 주안에서 복된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