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히브리서3:18-19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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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19.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 [성경본문] 히브리서4:1-3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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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안식일을 통해 베푸시는 복을 받으라
우리가 믿고 따르는 기독교 신앙에서 으뜸가는 영적 자질은 첫째, 믿음이요, 둘째 순종입니다. 여기에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요, 순종이란 그 말씀이 진리임을 믿기에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인 영적자질이라면, 순종은 눈에 보이는 외적인 영적자질이 됩니다.
믿음과 순종은 불가분리의 관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질문입니다. 순종이 먼저일까요? 믿음이 먼저 일까요? 예, 믿음이 먼저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순종이 따라오고 신앙생활에 능력이 나타나고, 신앙생활이 재미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일반종교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는 자력구원이기에 순서가 바뀌어서 ‘우선순종’을 강조합니다. 구약의 율법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종하면, 지켜 행하면, 억지로라도, 경전에 기록된 대로 실천하면, 바라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며, 그 결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믿고 따른 기독교는 믿음이 먼저입니다. 순종은 믿음에서 이어지는 다음과정입니다. 지난 주일오전예배 설교 중에도 구원의 여정을 설명하면서 나누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구원하실 자를 택하신다고 했습니다.
둘째, 택하신 죄인을 부르신다고 했어요.
셋째, 부름 받은 자를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시고, 여기에서 ‘응답한다’고 하는 것은 곧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 이라고 했습니다.
넷째, 그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예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약속하시는 하나님과 그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약속이었습니까? “아브라함에게 땅과 자손과 민족을 주길 것이며, 아브라함을 온 세상의 축복의 통로로 세우시겠다”는 약속이었어요. 그 약속을 아브라함이 믿습니다. 믿게 되니 다음은 순종이죠. 아브라함은 자신의 본토, 친척, 아비의 고향을 떠나, 미지의 땅, 가나안 땅을 향해 출발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약속의 말씀을 진리로 믿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심으로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억지로라도 순종하는 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억지로 하는 날이 길어지면, 감사와 기쁨이 없기 때문에, 하다가 결국 지치고 맙니다. 이는 참으로 불행한 신앙생활입니다. 이 자리에 그런 분은 한분도 아니 계시겠지요.
그러나 누군가가 믿음 없이, “교회에서 하라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니까, 그저 억지로라도 순종해야지!”하는 성도가 있다면 포기하지 말도록 하십시오. 왜냐하면 그렇게 순종하는 중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믿음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말 감사하지요. 저는 그러신 모습을 보면서 정말 그러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도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깨달아 알아야 할 중요한 영적진리는 무엇입니까? “믿음과 순종은 불과분리의 관계다. 믿음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이 있는 자는 기쁨으로 순종한다.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러기에 믿음은 기독교 신앙의 으뜸이 된다.”
그러면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3장 18절과 19절 말씀, 안식에 누가 들어가느냐에 관한 말씀인데요. 함께 읽겠습니다.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19.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했습니다. 안식일이 어떤 날입니까? 하나님께서 복되게 하신 날, 거룩하게 만드신 날입니다. 월요일부터 모든 요일이 다 하나님의 날이지만, 제 칠일은 특별한 날이니, 다른 날과 달리 구별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일간의 창조를 마치시고 쉬신 날입니다.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자연만물이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는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6일 동안 무에서 유로 창조를 이루시고, 나까지, 내 자녀들까지, 반려동물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의 그 권능을 찬양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둘째, 그래서 일하기를 멈추고 쉬는 날입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육신이 쉬는 날로만 알고 있어요. 예배 없이 쉰다는 것은, 육신이 쉬는 것 같아도, 그 영혼은 쉼이 없는 것입니다. 그저 육신만 쉬면된다? 그렇지 않아요. 영혼의 안식과 소생이 없이는 육신의 쉼과 회복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본질은 영혼이기 때문이에요. 영혼이 잘되면 육신도 강건해집니다. 행하는 일들에 형통함의 역사가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복을 받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보존하심과 지키심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자들에게,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복,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날입니다. 또 다시 한 주간의 일의 시작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들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으로 내려 주시는 날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에는 이 안식일의 복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고 했어요. 우리가 읽은 대로 18절에 보니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 이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에 대한 불순종입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그러면 왜 불순종하겠습니까? 19절에 말씀합니다. “믿지 아니하므로” 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못하니 순종도 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 “믿음 없어 순종하지 못하면 안된다”는 말씀으로 다시금 4장 2절과 3절에 강조하며 언급합니다. 4장 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히4:2)
똑같이 말씀을 듣고 배웁니다. 그러나 성도마다 차이가 있어요. 어느 누구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삶으로 사는데, 어느 누구는 그러지 못하고 빼빼마른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한단 말입니다. 무엇이 문제라고 했어요? 2절의 마지막 부분이죠.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3절에 보니 안식일의 복을 받는 자는 어떤 자라고 했습니까? “이미 믿은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 도다” “믿은 우리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믿음,’ 하나님의 약속을 철썩 같이 믿는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계속해서 안식일의 복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안된다. 순종해야 한다. 그런 권면의 말씀이에요.
안식일을 왜 이렇게 강조하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내용들 때문입니다. 6일 동안의 일을 멈추고, 사람만 일을 멈추는 것이 아니에요. 종도 가축도 다 일을 멈춥니다. 멈추는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드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어요. 사람만이 아니에요. 모든 자연도 동물도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또 한 주간 건강하게, 승리로운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와 복을 내려주십니다. 그날이 안식일입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쳤던 영성 신학자 중에 마르바 던(Marva Dawn)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저서인 ‘안식’(Keeping the Sabbath Wholly)에 이런 실화를 실었습니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마차 한 무리가 중부 세인트루이스를 떠나 서부의 오리건으로 향했습니다. 일행은 모두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어서 주일에 이동을 멈추고 쉬었어요. 그러나 겨울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어서 일부 사람들은 폭설이 내리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주일에도 계속 달리자고 제안했습니다.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그들은 주일에 쉬는 팀과 달리는 팀으로 나누어 떠났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일에 쉰 팀이 더 일찍 오리건에 도착했습니다. 주일에 충분히 쉰 그 힘으로 엿새 동안 더욱 힘차게 달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르바 던은 이야기의 결론을 이렇게 맺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을 때, 그것은 우리가 안식일을 깨는(break)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우리를 부수게 된다(break). 하나님은 자신의 계명을 존중하는 자들을 존중하신다.”
성도 여러분, 성경은 말씀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출20:8)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구별하신 날에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복을 경험하고, 진정한 쉼과 진정한 회복을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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