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호세아3:1-5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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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
2.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3.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4.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죄인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돌이키시는 하나님
호세아서 3장은 굉장히 짧습니다. 불과 5절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서 3장은 호세아 선지서의 주제가 무엇인가를 한 눈에 보여줍니다. 그 주제는 “죄인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돌이키시는 하나님”입니다.
지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호세아는 그 이름의 뜻이 “구원”이요, 같은 어원의 단어가 ‘여호수아’요, 그 발음은 ‘예수아’라고 했습니다. 이는 곧 우리말로 ‘예수’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세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장차 구원자로 임하게 되실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그 삶의 모습에 있어서는 구원받을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음란합니다.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하였어요. 이와 같은 모습으로 ‘고멜’이란 여자를 등장시켰습니다. 그 신분이 우상을 섬기는 바알 신전에 창기입니다. 비록 호세아와 결혼을 하였고, 세 명의 자녀의 어머니였으나, 과거의 음란했던 삶의 모습을 온전히 끊어내지 못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도덕적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깝게는 오늘날 21세기 초, 하나님을 떠나 세상 죄악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을 빗대어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악한 자들로 인해 손해를 보고 아픔을 경험한 선한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모습이 싫겠지요. 미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서 속히 예수님 심판주로 재림하셔서 저들을 심판하시고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뜨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마치 못난 자녀를 둔 어머니의 마음이요, 아버지의 마음처럼, 저들을 대하십니다. 그 길에서 돌이켜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성경말씀 베드로후서 3장9절에 말씀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십니다. 이 모습이 호세아서에 흘러가고 있는 주제입니다. “오래 참으사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으로 들어가겠습니다.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어떠한 사랑인가? 하는 것을 실제 한 개인의 삶을 통해 보여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일에 주의 종, 선지자, 호세아의 삶에 실천으로 나타나게 하십니다. 제가 호세아의 입장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그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싫어서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헌신이기 때문입니다. 손해보는 일이요, 내가 희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죄인들을 끌어안고, 그 죄값을 치루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이 사랑은 정말 헤아릴 수 없이 깊고도, 심오해서, 죄인의 마음에 성령으로 깨달음을 주시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깨닫는 순간 감동과 감격이 임합니다. “이렇게까지 날 사랑하셨구나! 날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구나!”
이 사랑에 감격하여 회개하는 자에게 ‘改過遷善’(개과천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형수로 북해도 탄광에서 일을 하다가 어머니가 유물로 준 성경을 읽다가 주를 만나고 변하여 일본 교육대상, 사회봉사상을 받은 일본인 ‘도모다까 시모지’가 그렇고, 영국 노예선의 선장이었다가 폭풍 속에서 흔들리는 선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어 주의 종이 된 ‘죤 뉴톤’이 그와 같은 모습입니다. 포악한 성격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요, 선교사에게 돌을 던져 이마에 피를 흘리게 했던 안악골 김익두가 그런 모습이요, 예수 믿는다고 핍박을 하고 감옥에 가두는 일에 혈안이 되었다가 다멕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위대한 역사를 이룬 바울이 그러한 모습입니다.
2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십니다. “은 열다섯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돈으로 값을 치루고, 고멜을 다시금 집으로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이 상황은 어떤 연유인지, 빚을 진 고멜이, 다른 남자의 종이 되어, 빚을 다 갚지 않는 한, 풀려 나올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제 발로 찾아갔을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서 또는 구습을 끊지 못해 찾아갔다가 결국 그 올무에 묶여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게 된 상황입니다. 오늘날, 예를 들어, 도박이나 마약에 중독되었거나, 또는 신천지와 같은 이단의 가르침에 빠져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에 이른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만약에 내 자녀의 모습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건져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호세아는 아내인 고멜을 소유하고 있는 주인에게서 그 값을 치루고 다시 사와야만 했습니다. 그 값을 치르고 다시 사오는 것을 한자로 “속”(贖)이라고 합니다. 자기 물건이나 사람을 다시 얻기 위하여 돈을 주고 되사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돈을 주고 되사서 그 신분을 회복시켜주는 것을 “구속”(救贖 redemption)이라고 합니다.
호세아가 치루어야 할 비용이 은 열다섯 조각(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리 한 호멜 반의 가치는 은 열다섯 조각과 같은 가격이었어요. 결국 이 둘을 합하면 그 가치가 은 30조각, 즉 은 30세겔이 되는 것입니다. 은 30세켈은 노예 한 사람을 살 때에 지불해야 하는 값어치의 돈입니다. 은 30세켈! 호세아에게 이마만한 돈이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큰돈입니다. 호세아의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큰 희생이 있어야 고멜을 구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은 30세켈! 누가 기억이 나십니까? 예, 예수님이시죠. 가룟 유다가 은 30세켈을 받고 산헤드린 공회원들, 즉 대제사장 그룹에게 넘겼었던 한 사람, 바로 예수 그리스도셨습니다. 호세아의 이 모습은 곧 30세켈에 팔려서 그 생명을 기꺼이 십자가의 제물로 드리므로 죄와 사망과 지옥의 노예였던 우리를 구속하신 우리 주, 예수님의 모습을 예표하는 내용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호세아가 그 값을 치루고 고멜을 데려오면서 그녀에게 말합니다.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호세아가 참으로 큰 관용을 베풉니다. 다시금 아내로 현숙한 아내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구습을 끊을 때에 받아 드리겠다는 약속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안에 거하라” (요15:7;9)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 하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사단의 모든 굴레와 속박에서 피값으로 치루시고 우리의 영혼을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복 있는 자의 삶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우리가 주 안에 거하고, 주가 우리 안에 거하게 거하실 때에” 가능합니다. 주의 사랑 안에 거할 때에 비로소 참 평안이 임하고, 복된 인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4절에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 장차 일어날 역사적인 사건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빼앗깁니다. 적국의 포로가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바알 신전에서 행하던 제사도 못 드리고, 우상인 주상도 없고 제사장이 입어야 할 에봇도 없고 그리고 드라빔도 없습니다. 드라빔은 몸에 지니고 다니는 작은 우상입니다. 오늘날 액땜을 한다고 사람들이 무지하게 몸에 지니고 다니는 부적과 같은 것입니다. 이 나라를 빼앗기는 역사가 주전 722년에 일어납니다. 앗시리아에 의해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합니다.
고멜이 바로 그와 같은 삶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언제요? 노예로 살 때에, 주인에게 속박되어, 영적으로 패역하여,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관계도 사라지고, 불쌍한 인생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호세아가 구원한 것입니다. 값을 치루고 구속하여 자유를 찾게 해 주었으며 그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도록 고멜을 건져낸 것입니다. 이후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날 것을 마지막 절, 5절에 예언으로 말씀하십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장차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게 되는 나라! 크신 여호와의 은총을 입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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